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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서예·한문 이야기] ⑮원교 이광사의 글씨(2)

추사로부터 혹평을 받다

對酒當歌, 人生幾何. 譬如朝露, 去日苦多. 何以解憂, 惟有杜康.

 

대주당가 인생기하 비여조로 거일고다 하이해우 유유두강

 

술을 대하거든 응당 노래를 불러야지, 우리네 인생 얼마나 된다고. 비유컨대 아침 이슬과 같은 것, 지나쳐 버린 날들이 안타깝게도 많구나. 무엇으로 근심을 풀거나? 오직 술밖에는 없도다.

 

對:대할 대/ 酒:술 주/ 當:마땅 당/ 歌:노래 가/ 幾:몇 기/ 何: 어찌 하, 얼마 하/ 譬:비유할 비/ 朝:아침 조/ 露:이슬 로/ 去:갈 거/ 苦:괴로울 고/ 多:많을 다/ 解:풀 해/ 憂:근심 우/ 惟:오직 유/ 杜:막을 두/ 康:편안 강

 

소설《삼국지》의 핵심인물인 조조(曹操)가 지은〈단가행(短歌行)〉이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조조는 흔히 난세의 간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소설 삼국지에 그렇게 묘사되었기 때문일 뿐, 실지 역사 인물로서 조조는 천하의 인재를 구하여 어지러운 시대를 바로잡고자 하는 영웅적 포부가 강하였고 또 탁월한 지도력도 갖춘 사람이었다. 문학적 소양 역시 대단하여 그의 두 아들 조비(曹丕), 조식(曹植)과 더불어 '조씨 3부자'라는 이름 아래 한 시대를 풍미한 시인이었다. 이 시〈단가행(短歌行)〉은 조조의 시재(詩才)와 포부와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잘 표현한 조조의 대표작이다. 시에 나오는 '두강(杜康)'은 중국 고대에 술을 처음 발명했다는 인물인데 후에 그의 이름 자체가 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두강'이라는 이름의 술을 개발하였는데 명주로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따라서, 중국 사람들은 술을 마실 때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조조의 이〈단가행(短歌行)〉시 처음 두 서너 구절을 읊조리곤 한다. 술맛을 돋우는 시임에 분명하다.

 

원교 이광사가 쓴 이 작품은 중국서예와는 다른 조선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중국 서예사를 통관해 보면 해서(楷書:정자체)의 대가들이 많다. 왕희지는 물론, 당나라 초기의 구양순(歐陽詢), 중기의 안진경(顔眞卿), 원나라 때의 조맹부(趙孟?), 명나라 때의 문징명(文徵明) 등이 다 해서의 대가들이다. 그런데 이들 대가들이 쓴 해서는 하나같이 그 규구(規矩)가 엄정하여 마치 자로 잰 듯이 어떤 틀에 딱 들어맞는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그런데 이광사의 해서는 그렇게 자나 컴퍼스로 잰 것 같은 규구성(規矩性)이 거의 없다. 중국의 해서가 대부분 벽돌을 빈틈없이 쌓거나 곧은 나무를 잘 맞추어서 지은 집과 같다면 이광사의 해서는 곧은 나무는 곧은 대로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삐뚤빼뚤 얽어지은 우리의 건축과 너무나 닮았다. 이게 바로 동국진체의 매력이다. 원교 이광사가 시작한 이 동국진체의 바람은 창암 이삼만에 이르러 보다 더 조선적인 모습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동국진체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있다. 바로 추가 김정희이다. 추사의 문집인《완당선생전집》을 읽다보면 곳곳에서 원교의 글씨를 호되게 비판한 글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추사의 그런 비판이 합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비판을 위한 비판도 적지 않다. 왜 그랬을까? 24살의 젊은 나이에 청나라의 수도 연경에 가서 한 달 여 동안 머물며 중국의 대가들을 두루 만나 당시 청나라에 일던 새로운 서예 풍조를 느끼고 돌아온 추사의 눈에는 조선의 글씨가 너무 고루하게 보였기 때문일까? 그래도 그렇지. 비록 다소 촌스럽기는 해도 그 안에 우리의 민족 미감이 자리하고 있다면 그것을 잘 가꾸려는 노력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추사는 조선의 자생적인 그런 서예 조류에 대해 너무 비판적이고 배타적이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 그가 일으킨 이른 바 '완당바람'은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광복 후 50, 60년대 우리나라에 미국 열풍이 불 때 미국에 잠시 다녀오기만 하여도 으레 미국문화에 도취되어 미국은 추켜세우고 한국은 비하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24살의 젊은 나이에 청나라에 다녀온 추사는 청나라의 서예에 너무 일찍 그리고 많이 도취되어 버렸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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