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 씨, 국립전주박물관 특강
청바지 차림의 한 남성이 무대에 나왔다. 전직 유도선수라고 해도 믿을 만큼 덩치가 좋았다. 지난 9일 국립전주박물관의'명사와 함께하는 특별한 만남'에 초대된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61)의 첫인상은 예술가라기 보다는 노동자 같았다.
스스로도 사진가는 '걸어다니는 노동자', '(얼굴이 까맣게 탄) 야외 노동자'라고 했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그는 몇 편의 동영상을 보여줬다. 카메라라는 '붓'으로 그린 소나무 수묵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혼자 떠들면 재미 없을 것"이라던 그는 객석에서 질문을 받아 답변하겠다고 제안했다. "왜 소나무만을 찍느냐"부터 "팝가수 엘튼 존이 작품을 샀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소나무와 카메라를 벗 삼은 지 30년을 훌쩍 넘긴 세월. 그는 소나무처럼 우직함으로, 바다처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강연을 이어갔다.
"본격적인 사진 인생은 33세부터죠. 고향이 전남 여수이다 보니까 바다를 십 년 정도 찍었습니다. 2년간 마라도에서 사진 찍고 다닐 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 뭘까'하다 소나무를 봤죠. 불타버린 낙산사를 지나가다가 '바로 저거구나'하고 확신을 얻었습니다."
'배병우'를 널리 알린 것은 2005년 팝가수 엘튼 존이 런던에서 그의 소나무 사진을 2700만원에 산 게 계기가 됐다. 200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소나무 사진 두 점 시리즈가 13만8000달러(약 1억3000만원)에 낙찰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가 잊을 수 없는 컬렉터로 꼽은 이는 세계 부호가 아닌 벨기에의 한 건축가. 그는 "내 작품을 사기 위해 3년간 저축했다는 집에 초대 돼 환대를 받은 적이 있다"며 "안목이 높은 사람이 사진을 사주는 것은 영광"이라고 했다.
물론 그의 사진이 외면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자연 재해로 자연에 대한 태도가 바뀐 데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그의 사진도 재조명 받게 됐다며 "이제는 평생 찍을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웃었다.
"어떤 외국 전문가가 그랬어요. 당신 작품은 동양화 같다고. 바로 그겁니다. 한국적인 느낌이 나니까 외국에서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있는 그대로의 소나무를 찍어 아무 가공 없이 내놓거든요. 그런 면에서 실경산수화 같기도 합니다."
그는 자욱한 새벽안개가 끼거나 어스름한 소나무 숲을 흑백 단색(모노크롬)으로 찍은 사진이 많다. "하루가 시작되고 빛이 출발하고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창덕궁, 스페인의 알함브라궁 외에도 바다와 섬으로도 시선이 확대됐다. 하지만 소나무는 늘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그는 "가장 자신있는 주제로 무조건 꾸준히, 많이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소나무가 아름다운 건 오랜 시간 시련을 견뎌낸 나무의 색감 그대로를 살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로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김연아와 같은 스포츠 스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처럼 모차르트와 같은 스타 예술가가 나오면 도시가 먹고 살 수 있다는 것. "사진을 찍다 죽는 예술가로 남고 싶다"는 그는 디지털이 아닌 필름을 쓰는 마지막 작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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