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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쿠 "희망의 메시지 전하고 싶어요"

에릭 쿠(46)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싱가포르 감독 중에서는 유일하게 자신의 영화를 네번이나 칸 영화제 경쟁 및 비경쟁부문에 진출시켰다.

 

한국과의 인연은 유별나다. 장편 데뷔작인 '면로'(1995)와 두 번째 장편 '12층'(1997)은 1996년과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됐으며 2007년 제작을 맡은 영화 '881'(감독 로이스턴 탄)도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았다.

 

2006년엔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3인3색' 프로젝트에 참여해 '휴일 없는 삶'을 만들었다.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그의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게다가 호주 유학시절 만나 결혼한 그의 아내도 한국인이다.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CINDI) 경쟁부문인 레드카멜레온 심사위원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를 17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만났다.

 

2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한국은 밝은 햇살이 항상 인상적이었는데, 이렇게 눅눅하고 흐린 날씨는 처음"이라며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를 실감한다"고 운을 뗐다.

 

 

에릭 쿠 감독은 원래 만화가 출신이다. 1980년대 만화가로 활동한 그는 90년대 들어 TV 드라마의 콘티를 그리다가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 단편영화를 제출하면서 영화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며 재능을 감지한 그는 각종 국제영화제를 통해 인지도를 넓혀가다가 칸 영화제에 진출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주목할 만한 '작가'로 떠올랐다.

 

"머리가 멍할 정도의 큰 충격이었죠. 행복했습니다. 물론 칸영화제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부산영화제도 저에게 큰 의미가 있죠. 제가 만든 모든 영화를 상영해주었습니다. 제10회때는 심사위원도 했고요."(웃음)

 

그는 '내 곁에 있어줘'(2005)나 '휴일 없는 삶'(2006) 등 냉철한 현실을 딛고 서 있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영화들을 주로 만들어왔다. 그가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궁극의 메시지는 "희망"이다.

 

"몇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때였어요. 어느 커플이 '내곁에 있어줘'의 영화 포스터만 보고 영화를 관람했죠. 그분들은 영화가 끝난 후 '최고의 허니문 선물'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너무 좋아서 울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요. 현실이란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그가 만든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타츠미'(2011)도 이 같은 작업관의 연장선상에 있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이 작품은 일본 만화가 타츠미 요시히로의 작품과 그의 자서전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인에게 스민 불행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대체로 매우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인물들 면면도 우울하고 내면은 꼬여 있죠. 그래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한 가닥 따뜻한 기운이 어려 있어요. 작가는 그런 캐릭터들을 토닥이죠.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그는 원작에 깃든 암울함이 절망으로 치달을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타츠미의 자서전을 참고한 이유다.

 

"타츠미 씨는 메마른 유머가 있는 독특한 사람이에요.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고 제안했을 때 그분은 '관객들이 극장을 나가면 자살하는 거 아니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밸런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서전 내용을 담은 거죠. 관객들에게 어둡지만 희망의 감정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 었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실험도 했다. 실화부분에는 밝은 색조를, 허구부분에서는 어두운 푸른 색조를 주로 사용했다. 색에 변화를 줘 내용이 헷갈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흑백에서 컬러영화로 바꿀 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보여줬던 채도변화를 참조해 작품에도 적용했다.

 

한국영화에 대해 물어보자, 열변을 토했다. 그는 아이폰으로 찍은 박찬욱ㆍ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은 "천재적"이라고 평했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힘은 "코미디부터 예술영화까지 아우르는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인들은 모든 걸 잘하는 것 같아요.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죠. TV 쇼, K팝으로 대변되는 한국문화는 이미 동남아를 장악했어요. 마치 20여년전 J팝을 앞세운 일본문화가 그랬던 것처럼요. 최근에는 한국문화가 대세죠. 무엇보다 대단한 건 이 모든 일이 최근에, 그것도 삽시간에 벌어졌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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