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설은 지금껏 못보던 생명체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신기하기도 하고 관심도 가고…. 차지헌과 차무원에게도, 또 제게도, 시청자에게도 그런 것 같아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고, 소위 '스펙'은 별로지만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으며, 차봉만 회장의 표현에 따르면 '속물근성이 없어 거리낄 것이 없는' 밝고 건강한 여성 캐릭터가 요즘 안방극장에서 사랑받고 있다.
흔한 '캔디형'과도 다르다. 미래가 불안정한 88만원 세대의 비애를 온몸으로 겪었고 여전히 불안한 현실을 살고 있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는 아니다. '깡'으로 똘똘 뭉쳐 때론 깡패같기도 하고 뱃심이 두둑해 재벌 회장과 '거래'도 서슴없이 한다.
최강희(34)가 SBS 수목극 '보스를 지켜라'의 여주인공 노은설을 통해 코미디와 멜로, 액션 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물오른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최근 인기에 힘입어 2회가 연장됐다. 최근 그를 인터뷰했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 이번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굉장히 복잡하고 섬세한 연기가 필요해요. 저희 드라마 자체가 '복합장르'거든요. 코미디와 멜로, 기업 드라마가 다 들어가 있어 배우 입장에서는 되게 피곤해요. 한가지 장르가 아니다보니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표정하나, 눈빛 하나로 상황이나 표현이 확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고도로 집중해야해요."
실제로 최강희뿐만 아니라 지성과 박영규도 이 드라마에서 같은 경험을 하면서 섬세한 연기로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복합적인 상황이 잇따르기 때문에 장면마다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것도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심각한 상황인데도 배꼽 빠질 듯 웃기고, 웃기면서도 눈물이 나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최강희는 "그래서 시청자 게시판 등의 드라마에 대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새가 없다. 복잡한 상황에서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둘릴까봐 늘 걱정"이라며 "설명이 배제돼 있으니 배우가 순간적으로 추측하고 표현해야하는 게 아주 많다"고 말했다.
초반 폭발적인 코믹함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보스를 지켜라'는 최근 노은설과 차지헌(지성 분)의 사랑이 본격화되면서 다소 톤이 다운된 느낌이다.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다 겨우 취직한 88만원 세대 대표 주자 노은설의 한심한 재벌 2세 차지헌 길들이기가 둘의 사랑으로 너무 쉽게 끝나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강희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드라마가 노은설의 입장을 따라가다보니 톤 다운은 불가피했던 것 같다"며 "그래도 이제 기업 드라마로 다시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가며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저도 88만원 세대의 비애를 좀더 그리길 바랐는데 노은설이가 요즘 상황이 많이 좋아졌죠?(웃음) 그래도 그런 노은설의 변화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요. 이 드라마, 저희 라디오 청취자들 때문에 하게 됐어요.(그는 현재 KBS쿨FM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를 진행하고 있다) 청취자들 사연 중에 '면접 봤는데 떨어졌다'는 등 취업의 힘겨움을 토로하는 글이 굉장히 많아요. 그들의 한숨 소리가 라디오 부스에 그대로 전달돼요. 처음에 공감이 안 돼 거절했다가 청취자들 때문에 다시 검토하려고 했을 때 대본 수정본이 손에 들어왔어요. 노은설의 캐릭터는 그분들의 사연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오로지 '간접경험'만으로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 최강희에게도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빚이 많았어요. 그 빚을 다 갚고 드디어 돈을 벌기 시작한 게 2008년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할 때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버는 만큼 그대로 다 빚 갚는 데 빠져나갔어요. 취업의 비애는 없었지만 돈 버는 어려움은 너무 잘 알죠. 그나마 일으로는 운은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일부러 쉬지 않는 한 일은 계속 들어왔으니 운이 좋았죠."
그는 "빚을 다 갚은 순간부터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홀가분해졌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가끔 어려웠던 예전이 그리울 때가 있다. 뭔가 간절할 때 가졌던 에너지가 대단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영화계나 드라마계에서 최강희에 거는 기대는 '4차원적 매력의 발산'이다. 데뷔 초만 해도 모범소녀 이미지가 강했던 그는 어느새 정상적이지 않은, 뭔가 특별한 역할 전문 배우가 됐다. 그 시점은 아마도 2006년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때부터인 듯싶다.
이후 그는 '내 사랑' '애자' '쩨쩨한 로맨스' 등의 영화와 '달콤한 나의 도시' 등의 드라마를 통해 최강희만이 할 수 있는 4차원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제가 극과 극의 캐릭터만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조용하고 바른 역만 하더니 지금은 특이한 역만 들어와요.(웃음) 다들 그런 역을 주면서 '걱정말고 해'라고 하세요. 그럼 전 매번 미션을 수행하듯 연기하고, 끝내고 나면 '내가 해냈다'는 생각을 하죠. 제 얼굴이 아무래도 '노멀(normal)' 하게 생기지 않아서 그런가봐요.(웃음) 4차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래서 다양한 기회가 들어오는 것 같고 제 안에 있는 여러 면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번 노은설은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의협심 때문에도, 순간적으로 '욱'해서도 주먹이 곧잘 나간다.
"무술은 이번에 처음 해봤는데 만화 같은 설정이라 재미있다. 실제로는 주먹을 쓸 줄은 모른다"며 웃은 그는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는데 드디어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날 알아보셔서 너무 좋다"며 웃었다.
영화만 하면 주변 어른들이 제가 누군지 모르세요. 그런데 드라마에 나오면 주변에서 반응이 달라지니 엄마가 특히 좋아하세요. 그래서 드라마 많이 하려고요.(웃음)"
'최강 동안'이라는 별명이 붙어다니는 그는 "이제 '동안'이 슬슬 무너지고 있다"며 "오랜만에 TV에 나오면 '너무 늙었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니까 앞으로는 드라마에 자주 나와 '동안'이 무너지는 게 잘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아직 열심히 물을 길어올리는 중"이라며 "이 드라마 다 끝난 후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내 연기를 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