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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안 죽막동 유적 출토품 - 고대 해양제사 가장 확실한 증거

 

변산반도의 서쪽 끝 해안 절벽 위에 있는 부안 죽막동 유적. 전라북도의 서해안 지역에서 발굴조사 된 최초의 유적이다. 이 곳이 국립전주박물관의 조사를 통해 학계에 알려진 지도 벌써 21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고대 해양제사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서 그 입지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바다의 두 가지 얼굴에 대해 우리는 무척 잘 알고 있다. 생명을 잉태하고 풍요를 안겨주는 고마운 존재이지만 때로는 무자비하고 사나운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 삶의 터전과 인명을 무로 돌린다.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늘 무력함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들도 예외가 아니거늘, 고대인들은 거대한 바다 앞에서 어떻게 용기와 희망을 복 돋을 수 있었을까?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었다. 항해의 안전을 위해 정성스레 기원을 올렸던 것이다. 그 근거는 죽막동 유적에 남아있었던 유물들이다. 서해 바다로 돌출된 절벽 위에 위치하여 바다를 조망하기 가장 좋은 위치이지만 사람이 상시 거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이곳에 무수한 그릇 조각들이 겹겹이 퇴적되어 있었다. 쇠로 만든 칼과 거울, 흙을 빚어 만든 사람과 말 인형, 갑옷이나 칼의 석제 모조품과 같은 특별한 유물들도 빼놓을 수 없다. 유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삼국시대인 4세기~7세기에 걸쳐 이곳에서 제사행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의 유물들도 적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유적을 둘러싼 신앙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유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출토된 그릇들 중에는 백제산이 많지만 암자색의 표면에 빗 모양의 도구로 파도 무늬를 시원하게 그린 긴목항아리는 이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이다. 옛 죽막동 주민들의 솜씨일 것이다. 쇠창들은 커다란 항아리에 담긴 채로 발견되었다. 무기는 제물의 품목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석제 모조품은 일본 후쿠오카현 오키노시마섬, 오카야마현 오오히시마섬 등 일본의 해양제사유적에서 더욱 많이 발견되고 있어, 고대 한일 교류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유물이다. 중국 남조에서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약을 입힌 항아리들 역시 죽막동 유적의 국제성을 여실히 알려준다.

 

죽막동 유적의 고대 제사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바람을 항해에 활용해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육지와 섬을 이정표 삼아 노를 저어 연안을 도는 항해술이 고작이었다. 노를 젓는 수부들에게 죽막동은 소중한 휴식처이자 피난처였다. 좋은 계절이 되자 죽막동의 항구는 각국에서 온 배로 북적였다. 상인들이 즉석에서 흥정을 벌이고 정보도 교환했다.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죽막동을 찾아온 내륙 사람들이 적당한 배를 찾아 부두를 기웃거리는 사이, 지체 높은 관리들은 일꾼들에게 제물로 쓸 물품의 하역을 재촉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절벽 위에서 성대한 제사가 시작됐다. 백제인, 가야인, 왜인 등 다국적으로 구성된 참가자들이 각자 가지고 오거나 현지에서 장만한 물품들을 차례대로 헌공했다. 출신지나 언어는 다양했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소망하는 바가 다르지 않았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제사에 쓰인 기물들을 깨뜨렸다. 이미 신에게 바쳐진 물건인 만큼 사람의 손을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항해가 시작됐다. 어떤 배는 백제의 수도를 향해 북쪽으로, 어떤 배는 왜인이 산다는 땅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다.

 

고대의 역사서에 남아 있는 수 많은 국제교섭 기록의 숨은 공로자는, 어쩌면 죽막동을 거쳐 위험한 바다와 맞서며 길고 고된 항해를 이겨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최경환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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