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가야금 배운지 5년 / 박칼린 위원장이 한국생활 도와
한국인 보다 한국적이었다. 지난 9월13일 전주한옥마을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외모만 외국인이었다.
지성자 선생(전북도 무형문화재)에게서 함께 가르침을 받는 동료의 가야금 연주회를 보기 위해 전주를 찾은 그는 음식점 자리에 앉자마자 도가니탕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잔에 부으면서 막걸 리가 손에 묻자 손을 쏙 빠는 게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화이락'무대에 서는 조세린 클락 배제대 교수(Jocelyn Clark·44). 그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기 싫다고 했다. 외국인치고 잘하는 연주자로 구경거리나 되는 그런 연주자가 아닌, 진짜 실력을 갖춘 전문 연주자로 당당히 서고 싶다는 의미다.
그가 한국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과 중국 유학을 통해서다. 태평양 전쟁에 참여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 일본어를 공부했고, 일본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3살때부터 바이올린·피아노·오보에 등 다양한 악기를 접했던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 남경 예술대학에서 서예와 아쟁·오쟁을 공부했다. 중국의 오쟁과 비슷한 한국의 가야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90년대 초 국립국악원에서 공부할 기회를 만들면서 한국에 둥지를 틀게 됐다.
"당시 국악원에 외국인 프로그램이 없어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국말을 못해 하숙집 구하기도 어려웠던 그에게 서울대 국악과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현 박칼린 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이 한국생활에 길잡이 역할을 하며 많은 도움을 줬단다. 박칼린 위원장을 지금도 언니로 생각하며 당시의 도움을 무척 고맙게 여겼다.
가야금을 접한 지는 오래됐지만,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5년 정도. 강은경 선생에게 가야금병창을, 지성자 선생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우면서다.
동서양의 여러 악기를 다뤄온 그는 '소리는 하나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대금이나 아쟁 등 악기 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방법은 달라도 '소리'라는 하나로 향한다는 것이다.
1주일에 한 번씩 배워 절대적으로 배움이 시간이 짧지만,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대전에서 전주로 오가는 차 안에서도 창을 연습한다. 차 안은 그에게 '21세기형 폭포'란다(폭포 앞에서 명창들이 연습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외국인으로 한국음악 무대에 서는 것이 영광이죠. 아직 공부중이고 첫 무대이지만 잘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 스스로도 어디까지 왔나 점검 해보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현대 음악에도 관심 많다며, 21세기 국악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고민하고, 계속해서 소리축제하고도 같이 하고 싶단다. 그는 '국악이 시어머니 같다'고도 했다. 국악을 통해 한국과 한국사회를 배우는 것을 두고서다.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와 춘향전에 나오는 '사랑가'가 연계성을 찾아 논문으로 정리한 것처럼 그의 국악사랑은 이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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