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교육공간 양사재로 출발 3만4600여명 졸업 / 정동영·김명곤 전 장관 등 정계 화려한 인맥 자랑
"우리 학교요? 과거엔 전북 신교육의 1번지였죠."
지난 14일 만난 송경오 전주초등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명문학교로 군림했던 전주초의 위상은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잔뜩 움츠러들었다. 학생수 급감으로 교가의 가사를 바꿔 부를 정도로 졸업생들이 느끼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은 커 보인다.
다행스럽게 2006년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학생수가 늘고 있는 데다 올해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학교가 활력을 되찾는 분위기다.
교내 곳곳에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잔재와 삐걱거리는 낡은 건물은 학교의 오랜 흥망성쇠를 가늠케 한다.
△ 전북 신교육의 1번지
전주초의 전신(前身)은 교동 58번지의 양사재(養士齋)였다. 양사재는 향교의 부속 건물로 서당 공부를 마친 특출난 유생들이 생원·진사 공부를 하던 곳이다.
양사재는 1896년 전북공립소학교 인가를 받아 이듬해 7월 개교했다. 당시 교사가 3명, 학생이 37명에 불과했다. 서당을 다닌 8~16세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중도 탈락자들이 많았다. 1906년 현재 위치에 전주초가 지어지면서 비로소 졸업생 배출이 안착됐다. 지난 2월까지 공식 집계된 졸업생은 3만4600여 명. 송경오 교장은 "당시 전주여자공립보통학교, 전주공립공업보수학교, 전주공립상업보수학교 등이 전주초와 한 몸이었다"면서 "전주초가 전북 신교육의 1번지라 불리는 이유"라고 했다.
청산되어야 할 일제의 잔재도 있다. 교정에 일본 천황을 사진을 보관하던 '봉안전'의 흔적이 그것이다. 봉안전 주변엔 병풍처럼 두른 정원과 작은 폭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학생들이 이 앞을 지날 때마다 억지로 경례를 해야 했던 치욕스런 장소다. 학교 측은 해방 뒤 봉안전을 철거하고 시멘트로 조악하게 만든 기단 위에 대한독립을 기념하는 비를 대신 세웠다. 이 일대 흩어져 있던 일제 정원석(지성원·대화원·인애원·충효원)은 현재 전주역사박물관에 기증 돼 있다. 1930년대 초반에 지어진 강당은 낡을대로 낡아 한쪽 바닥이 아예 무너져 내년 신축을 앞두고 있다.
△ 정동영·김명곤 정계·문화계 동문 두각
오랜 역사가 무색할 만큼 총동창회 활동은 뜨뜻미지근하다. 지난 100주년 때 만든 기념문집'양사재의 그 뒤'가 거의 유일한 사료. 이를 참고하면 졸업생 중 정계 진출자가 두드러진다.
네 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낸 유 청(21회)은 기념문집을 통해 당시 반 학생 32명 중 31명이 전주보통(북중) 전원 합격했을 만큼 전주초가 명문 예비학교였다고 소개했다. 전 청와대 대변인(34회)를 지낸 임방현, 전 완주군수를 했던 임명환(36회)도 넓은 운동장에서 찰밤 도시락 잔치로 어우러진 모교 운동회의 추억담을 전했다. 임병찬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36회)는 전주초에 다니면서 신문 배달을 하며 공납금을 힘겹게 댔던 시절의 일화를 소개했다. 56회 졸업생 중에는 이례적으로 장관이 두 명이나 배출됐다.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다. 정 전 장관은 "학생이 5000명이나 되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학교였다"면서 "크고 넓은 운동장, 야외 수영장, 동물원까지 갖춘 명문 중 명문이었다"고 기억했다. '특종왕 기자' 출신이었던 최규식 전 국회의원(57회)도 전주초의 졸업생이다.
△ 자기주도적 학습권 위한 혁신학교 첫 발
지난 3월에 선정된 혁신학교는 걸음마 단계다. 송 교장이 1년 간 교사들을 설득한 끝에 이뤄낸 결과. 송 교장은 "무너지는 공교육을 바로잡는 첫 단추는 수업에 있다"고 봤다.
한희정 전주초 교사는 "대개 교사들은 서로의 수업을 공개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면서 "그래서 수업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동료 간 벽을 허무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구속 받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이 수업의 주최자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은 교사의 몫. 교사들은 아이들의 정서 순화를 위해 자연에 관심을 갖는 창의체험을 내놨다. 전주의제21과 같은 NGO단체와의 협조로 교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생태교육은 아이들의 감성을 깨우는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7년 태권도 창단식을 기점으로 전주초 학생들이 전국 태권도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면서 태권도 꿈나무 양성에도 기대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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