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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고창초 - 군 단위 학급수 전국 최다…'농촌학교의 희망' 우뚝

1960년 전교생 3000명 육박 / 정·행정·교육계 두터운 인맥 / 수업 분석 통한 창의력 향상 / 오고 싶은 학교 만들기 박차

전북의 농촌학교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한창 일할 젊은 세대들이 농촌을 떠나고 70~80대 노인들만 남았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농촌 위기의 중심에는 고령화에 따른 농촌 공동화가 자리잡고 있다. 고창초등학교(교장 유병회)는 이 위기의 중심에서 유일하게 비껴나 있다. 개교 101주년을 맞은 고창초는 46학급 1179명으로 전국 군 단위 초등학교 중 거의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유병회 교장은 김용택 시인의 ‘촌아 울지마’를 소개하면서 “‘사람들이/다들 도시로/이사를 가니까/촌은 쓸쓸하다/그러면 촌은 운다/촌아 울지마’라는 내용을 ‘사람들이/다들 농촌으로/돌아오니까/촌은 외롭지 않다/그러면 촌은 행복하다/촌이 웃는다’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고창초의 희망은 이 시에 응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전국 군 단위 ‘최다’ 학급수

 

고창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유별나기로 소문났다. 이 일대 서당은 근대 초등교육을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초대 김도의 훈장이 이끈 스무재서당은 고창은 물론 전남 영광까지 유명세를 떨쳤다. 전북문화재 29호로 지정된 도산서당(서뜸서당)은 고창초와 통폐합된 도산초 개교를 도와 일부 수업을 대신했다. 그럼에도 고창초 졸업생들은 일본의 황국식민화 정책의 영향으로 우리말 사용 금지와 창씨개명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졸업생 오종문씨(36회)는 “여섯 살에 처음 학교 갔을 때 일본어 이름을 쓰도록 해 친구 이름 외우기가 무척 힘들었다”면서 “일본 군가를 부르며 두 줄로 맞춰 등교했고, 매일 아침 조회 때마다 신사 참배하는 건 특히 괴로웠다”고 전했다.

 

학생수만 놓고 볼 때 고창초 전성기는 1960년대다. 1960년 전교생이 무려 2863명이나 됐다. 1960년 월산분교를 고창동국민학교로 분리시켰고, 1961년 고창남국민학교를 신설했던 것도 고창초 역할이 컸다. 졸업생 류택주씨(37회)는 “1949년 화재로 교실이 무너지면서 돌과 흙을 나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리창도 없는 교실에서 흙바닥에 헌 가마니를 깔고 교과서도 부족한 상황에서 몽당연필로 공부하던 생각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창초가 학생수 감축이란 농촌학교의 아픔을 아예 겪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80년 38개 학급에서 1994년 32개 학급으로 학생수가 급감한 반면 이후 2004년 51개 학급으로 정점을 찍었다. 귀촌귀향단지인 월곡택지가 구축되고 내고향 학교 보내기 운동이 확대되면서 학생수가 급증했다고 보는 분석도 있지만, 유병회 교장은 “도시로 나와 아파트에서 살면서 출퇴근하며 농사짓는 게 보편화됐다”면서 “학부모들이 더 큰 학교로 보내고자 하는 열망이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다르게 분석했다.

 

△ 총동문회 없었어도 분야별 파워인맥 자랑

2010년이 되어서야 총동문회가 결성된 고창초는 그럼에도 정계에서 파워인맥을 자랑해왔다. 조병채 총동문회 회장(37회)은 그런 시각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군계일학(群鷄一鶴) 아니겠느냐”고 했다. “워낙 학생수가 많다 보니 지도자가 더 배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 실제로 정계 외에도 행정계·교육계 등 두각을 보인 인재들이 배출 돼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설명이다.

 

총동문회가 파악한 정계 졸업생은 무려 6명. 국회의원 뱃지를 단 유 진(2회), 홍순희(5회)에 이어 배상기 도의회 의장(18회)이 바통을 넘겨 받았다. 국회의원을 지냈던 임종인(54회)과 현역 국회의원인 홍영표(55회) 안규백(56회)도 고창초에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주역들이다. 전북교육감을 맡았던 염규윤(31회)을 필두로 전남대병원장을 지낸 장인원(26회)과 조선대 부총장을 했던 조병엽(34회)은 교육계 인사로 꼽힌다.

 

행정·언론 쪽도 두터운 인맥을 자랑한다. 김경태 전 관세청장(36회), 조강환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39회), 정학수 전 농림부차관(52회), 졸업연도를 확인할 수 없는 진진영 전 조달청장은 두각을 보인 선·후배다. 지난해 ‘고창백년사’ 출간을 이끈 박우정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 집행위원장(44회)은 “동기회 활동이 미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원로 선배의 자녀들이 학교의 행사를 위해 선뜻 기부하는 경우를 보면서 모교사랑, 동문사랑이 고향사랑이고 지역사랑임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 창의력 인성 교육 방점

유 교장이 생각하는 “창의력이란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힘”이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 창의력이 발휘된다고 본 유 교장의 철학으로 학생들은 음악·무용·체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을 휩쓰는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33회 전북교육감배 태권도대회에서 학년·체급별 1~2위 등, 제16회 전북교육감배 수영대회에서 1위(100m) 등, 제6회 전북교육감기 에어로빅 체조대회 힙합단체 1위 등 분야별 수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고창초의 특별함은 전북에서 유일하게 자기수업분석실이 있다는 데 있다. 자기수업분석실이란 수업을 녹화해 관찰·분석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 결과 교사·학생들과 수업을 개선하기 위한 의견을 교환하고 노력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정착 되면서 수준높은 공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유 교장은 “학교 오는 것이 즐겁고 다니고픈 학교가 되려면 질 높은 수업을 통해 배움과 성장이 일어나야 한다”면서 “학부모에게 참여와 소통의 길을 열어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서산대사의 싯구를 인용한 유 교장은 “앞으로도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옳은 길을 향해 걸어가는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관심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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