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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익산 금마초 - '나'보다 '우리'…아이들 공동체 의식 키우기 주력

다문화 학생 껴안는 페스티벌 개최 교장이 교문서 등굣길 학생들 마중 / 김용익 국회의원 등 인재 다수 배출 총동문회 힘 모아 학교 숙원 해결도

정만일 익산 금마초등학교 교장의 별칭은 ‘문지기 선생님’이다. 한파가 몰아닥치는 날에도 중무장을 한 뒤 교문 앞을 서성인다.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들은 없는지, 골이 잔뜩 난 학생들은 없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정 교장은 “그 상태로 수업에 들어가면 집중할 수 없지 않겠느냐”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200여 명 남짓하는 전교생들의 이름은 물론 가족사까지 꿸 수 있었던 것은 교사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와서 귤이라고 하나 주고 가면 그렇게 행복하고 재미가 날 수가 없어요.” 그는 화창하게 웃었다.

 

△나 아닌 우리가 되자

 

“내 철학은 딱 하나예요. ‘나’가 아니라 ‘우리’가 되자는 것입니다.”

 

정 교장의 철학은 간명했다. 일본에서 13년 간 파견교사로 근무한 특이한 경력도 한 몫 했다. 그러나 ‘절대 튀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초등교육과정은 나만 잘 살면 되는 사회가 아닌, 우리가 어울려 사는 사회를 위한 기본 소양을 갖추자는 것. 각 분야에서 학생들의 수상 소식 등을 세간에 알리는 대신 학교에서 소개하고 격려하는 데 그친 것도 교장의 확고한 철학 덕분이다.

 

체육에 일가견이 있었던 정 교장은 생활체육의 대중화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 살면서 정부와 자치단체가 생활체육인 양성을 눈여겨봤다. 3년 전 정 교장이 학년별로 특화된 생활체육을 가르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하지만 의욕만큼 성과는 따라주지 않았다. “성공 보다는 실패 사례가 더 많아요.” 이번엔 멋쩍게 웃었다.

 

유일한 성공 사례는 다문화 페스티벌이다. 전교생 200여 명 중 다문화 학생은 10명. 3년 째 학부모 등을 초청해 학생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물해왔다. 다국적 의상 입어보기, 전통음식 만들기 등을 통해 중국·러시아·필리핀·미국 문화를 접해볼 수 있도록 한 것.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정 교장은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다. 쓰레기 함부로 버리기, 실내화 신고 학교 밖에 나가기 등은 그러나 그의 미간을 유일하게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그를 보며 홍성훈 총동문회장(건양대 교수·55회)은 “정만일 교장은 인성교육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이런 철학에 적극 응원하고 싶다”면서도 “모교 사랑을 잊지 말고 졸업생들이 더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목적 체육관 건립 눈앞

 

총동문회를 귀찮게 하는 전화가 여러 번 오고간 끝에 금마초등학교를 오랫동안 재직했던 퇴직교사를 만날수 있었다. 1960년대 금마초에서 교편을 잡았던 소병도씨다. 증조부, 조부, 아들까지 4대가 금마초를 졸업한 뼛속까지 금마초 예찬론자다. 그는 “금마초의 전신으로 사립학교인 익창학교와 기영학교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지금으로 말하면 행정중심도시였습니다. 반상(班常)의 구분이 심한 지역이었다는 말입니다. 익창학교는 양반들이 다니는 학교였고, 기영학교는 평민들이 다니는 학교였어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인들이 두 학교를 없애고 익산공립학교로 세웠습니다. 이 역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죠.”

1950년대 소씨가 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학년별로 세 학급씩 존재했다. “큰 아버지가 금마초 교장이었다”는 소씨는 “당시 보기 드물게 여자 농구팀을 육성해 소년체전까지 출전했지만, 전 농구선수인 박찬숙씨가 뛰던 숭의초에게 대패를 당했다”고도 했다.

 

1911년 개교 당시 금마초는 금마시장 터에 위치했다. 6·25 전쟁 때 빨치산이 습격해 참사가 일어났던 데다, 도시개발이 이뤄지면서 금마로 이사오게 된 것. 홍성훈 회장의 부친 역시 금마초 교장을 지냈다. 부자지간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홍 회장은 변변한 체육관이 없었던 금마초의 숙원인 다목적체육관 건립을 성사시키며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일조했다.

 

△교육계·학계 인맥 두각

총동문회의 활동은 최근에서야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과거 이름을 날린 동문들의 면면은 몇몇 동문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 존재할 뿐이다. 총동문회 등을 통해 금마초를 빛낸 동문들은 다음과 같다. 금마초 동창들은 유독 학계에 많이 포진해 있다.

 

졸업 연도가 뚜렷하지 않은 지태순 선생은 자수성가해 모은 돈으로 1948년 익산중을 설립하고 1964년 익산초, 1966년 익산고를 차례로 세웠다. ‘사람이 재산’이라는 그의 신념은 익성학원의 설립으로 이어져 아들·손자 등 3대에 걸쳐 지역 인재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국 독립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독립투사 김학곤·홍순갑씨와 1980년대 청와대 안전처장까지 지낸 최윤수씨도 금마초를 거쳤다.

 

한국은 물론 세계 물리학계에서도 정평이 난 소광섭 서울대 명예교수(46회) 역시 금마초 출신이다. 소 교수는 2002년부터 한의학에서 침을 놓는 경혈과 경혈을 따라 흐르는 경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작업으로 남다른 이력을 추가하며 암 등 난치성 질환 치료를 임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해오고 있다. 의사 출신인 민주당 김용익 국회의원(53회)과 그의 형인 김용태 전 김안과병원장(45회), 이기수 경희대 치대 학장(45회) 등도 의료계 인맥이다.

 

유기태 도의회 교육위원(48회)을 비롯해 소금숙 한림대 수학과 교수(55회), 전북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임기영 반도체과학기술학과 교수(54회), 최진규 지역건설공학과 교수(54회), 최원규 사회복지학과 교수(60회) 등은 물론 이기학 원광대 생명나노화학부 교수(55회) 등이 뒤따른다.

 

새누리당의 의료영리화 방침에 대해 민주당 의료영리화저지특위 위원장을 맡은 김용익 의원은 최근 소신있는 발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이성원씨(43회)와 SBS로 활동한 이승주씨(57회), 장기간 총동창회장을 맡았던 강덕원(38회)·송정규(43회) 전 익산시의원도 금마초 총동문회의 얼굴이다.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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