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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영화 '더 이 클립스(The Eclipse)'] 인생에 너무 휘둘리지 마세요

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고 우리는 모두 환자다 / 고통 없는 곳 어디란 말인가

성장이 멈춰버린 사람이 있다. 삶의 궤적이 끊긴 자리에서 울다 지쳐 잠들어버린 한 중년 남자가 있다.

 

아일랜드 남쪽 해변도시인 ‘코브’(Cobh)에서 고등학교 목공예 교사로 일하고 있는 ‘마이클’(시아란 힌즈 분)이란 사람 이야기다.

 

아내가 암으로 타계한 지 2년, 마이클의 인생 시계는 그 시점에 멈추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여러 가지 신체 변화가 그를 죄어온다. 죄책감이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고,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장인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자꾸만 꿈에 나타나고, 알 수 없는 환영의 출현으로 혼절하듯 넘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14살 된 딸, 11살 난 아들과 함께 살면서 아픔을 삭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외출에서 돌아와 아이들 재워놓고 설거지에다 청소를 마치고 방에 들어서는데, 아래층에서 검은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한다. 곧바로 요양병원에 전화하니 장인어른은 외출한 적도 없고 잘 주무신다고 한다. ‘오늘 행사에 모시고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다음 날 그는 장인어른을 찾는다.

 

“아내를 잃은 아픔이 너무 커요.”

 

울먹이는 그에게 장인이 말한다.

 

“나도 아내를 잃어봤지만, 자식을 잃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야.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묶여 살지는 말게.”

 

어디로 봐도 장인의 아픔이 더 커 보이는데….

 

이 지역에서는 매년 책 축제인 ‘Cobh Literary Festival’이 열린다. 회색 하늘, 희뿌연 바다, 격조 높은 리셉션, 유명 소설가들이 풀어놓는 감동적 이야기 등이 어우러진 축제는 많은 사람을 한껏 들뜨게 한다. 혼령에 대한 이야기 『The Eclipse』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리나 모렐’(이븐 야일리 분)도 참가하게 되어있다.

 

마이클은 이 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그는 리나로부터 혼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설렘으로 기다려왔다. 처음 본 리나는 생각보다 매력적 이다. 예쁘고, 다정하고, 싹싹하다. 숙소까지 운전하는 데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을 감싼다.

 

다음 날 장인이 혈관을 끊고 자진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혈이 낭자한 병실에서 탈출하듯 뛰어 나온 마이클은 차를 몰고 리나에게 달려간다. 무슨 말이든 하며 위로받을 생각이었던 것. 그러나 그녀의 숙소는 다른 유명 작가가 선점하고 있다. 혼돈이다. 실망하며 돌아서는 그에게 리나가 다가선다. 그녀는 마이클에게 공동묘지에 가자고 제안한다. 마을 어귀에 공원처럼 조성된 고즈넉한 곳. 리나는 마이클을 향해 “본인 이름이 적힌 비석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주문한다. 그러자 마이클은 “아내를 잊어가는 게 고통스러워요. 잃을까 봐 두렵죠.”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내는 다른 묘지에 잠들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사람이여! 알량하기 짝이 없는 내면이여.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란 영화가 떠오른다. 영화는 ‘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고 우리는 모두 환자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신병원에서 뛰쳐나갈 생각도 없이 마냥 눌러앉아 있으려고 만 하는 인간의 나태함을 꼬집었다. 체제에 무작정 순응하는 군상에게 저항의 용기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다그쳤다. 제 둥지가 없어도 뻐꾸기는 잘 날아오르지 않느냐며….

 

리나는 진한 키스와 포옹으로 마이클을 달래준다. 다음에 런던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축제가 끝나고 모처럼 한가롭게 잠을 청하는 마이클의 침대에 아내의 환영이 나타난다. 그윽한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던 아내가 마이클에게 안긴다. 둘은 얼싸안고 떨어질 줄을 모른다.

 

마이클은 아내의 영혼을 그렇게 떠나보낸다. 자신도 이제 어디로든 날아야 한다. 휘둘리지 않을 곳이면 되겠지. 검은 말뚝이 즐비하게 박힌 바닷가 모래사장을 보여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화는 상처한 한 중년 남자의 하룻밤 꿈을 영상에 옮겨놓고 그 아픔을 함께 직면하자고 제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통 직면! “많이 힘드세요? 너무 힘들면 그냥 나오세요.”라는 듯.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고 노래한 이성복 시인의 ‘그날’이란 시가 자꾸만 떠오른다.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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