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5시께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접(旗接)놀이가 곁들어진 길놀이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용(龍)이 그려진 깃발을 단 7m가 넘는 대나무를 천으로 감아 한 손에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 줄을 당겨 깃대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에 젊은 관광객들은 연신 “대박”을 외쳤다. 기수는 깃대를 휘두르며 관광객의 머리 바로 위까지 깃발을 스치듯 돌리는가 하면 손바닥이나 어깨에 올려 기가 쓰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았다.
이날 진행된 합굿마을문화생산자협동조합의 전통풍물 활성화 사업에서 길놀이의 용기(龍旗) 기수를 맡은 여현수 씨(33)는 풍물, 탈춤, 기접놀이를 모두 할 수 있는 ‘굿쟁이’다. 여 씨는 용기 기수이기도 하지만 전주의 강령탈춤전승회와 진안 중평굿보존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강령 탈춤은 원래 이북 춤인데 단조롭고 투박한 게 특징입니다. 진안 풍물가락도 이와 비슷하게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20살 이후 풍물과 탈춤을 거친 뒤 5년 전 기접놀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북과 연고가 없었지만 ‘노는 판’의 신명과 굿쟁이들이 좋아 도내에서 전통놀이의 맥을 잇고 있다.
특히 기접놀이는 전주만의 문화 아이콘으로 애정을 쏟게 됐다. 농경문화의 산물이었지만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맥이 끊겼다 지난 1974년 풍남제 때 재현돼 그 의미가 더욱 크다는 설명이다.
“다른 지역에도 기접놀이나 기세배 등이 있었지만 전주같이 발달되지는 않았습니다. 한옥마을처럼 이곳에서만 보여줄 수 있습니다. 무게감에 연희까지 더해 풍물판의 시각적인 효과를 증폭하고 극대화하는 효과를 거둡니다.”
한겨울 허허벌판에서 기접놀이를 연습한다는 그는 “바람을 읽고 균형을 잡아야 하지만 연습하는 날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한 번 하고 나고 나면 2~3일간 아프기도 한다”며 “기받이를 허리에 차 중간중간 기를 살짝 걸치기도 하지만 공연을 길게 하거나 격렬하게 하면 허벅지 안쪽에 기가 닿아 멍이 들곤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힘보다는 지렛대의 원리를 최대한 이용하고 접시돌리기처럼 용기를 활용한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공연자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관객도 힘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 출신이지만 호원대 건축학과에 진학한 뒤 동아리에서 전통놀이를 처음 접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취업하려 했지만 부모님의 열망으로 대학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이후 풍물을 배우면서 난생 처음 무엇인가 몰입해서 실력이 느는 경험을 했습니다. 계속 또래들과 그 분야의 선생님들을 찾아 배우다 보니 점점 더 빠져 들었습니다.”
그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판이 벌어지면 숨은 끼를 발산한다. 탈을 쓰고 사자춤을 출 때는 관객에게 “어흥!”하고 먼저 다가가거나 탈을 던지기도 한다. 손에 기가 있을 때는 깃발 천을 관람객의 머리 위로 덮을 만큼 낮게 내리거나 관람객에게 기를 맡기고 목을 축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통놀이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설 무대가 부족한 점은 늘 아쉽다.
그는 “한옥마을에 길거리 공연이 적고 점점 한 시간 넘게 노는 큰 ‘판굿’이 줄었다”면서도 “탈춤에서도 기량을 올려 다양한 역할을 하고, 기접놀이도 기술을 좀더 쌓아 전통놀이가 공연계에 자리잡는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사물놀이, 상모돌리기, 버나, 살판 등 다른 전통 아이템에 비해 아직 기접놀이는 그 가치가 널리 알려지지 못해 같이할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지역 고유의 전통놀이가 좀 더 인정받도록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의 대통령상을 목표로 출전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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