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끊긴 전주·남원장 복원 / 각종 기능대회 수상 화려 / 일반인에도 공방 문 활짝 / 최고작품 모아 전시 계획
“저는 500년은 살아야 해요. 마음 같아서는 전북 지역 고유의 장(欌)뿐만 아니라 이북 지역 장까지 재현해 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500년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천철석(55) 소목장은 40여 년을 죽은 나무를 깎으면서 살아왔다. 그 사이 조선이 멸망하면서 맥이 끊어진 전주 지역의 전주장과 남원 지역의 남원장을 복원해 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전주장 재현에 성공했다는 기쁨보다 모든 전주장을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어려 있다.
완주군 구이면에서 2남 6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전주 서라벌 공예사에 취직해 목가구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면서 장롱이나 화장대, 문갑 등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던 시기였다. 20명 규모의 안방 가구 전문 공장에서 김춘태 선생에게 대패질과 끌질, 톱질 등 수공구를 다루는 기초적인 기술을 연마하면서 가난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신의의 징표(?)라 할 수 있는 수금을 맡을 정도로 성실히 자리를 잡아갔다.
“옛날에는 배가 고파야 예술 작품이 나왔지만, 이제는 배가 불러야 예술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열세 살의 나이에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죠. 배고픔으로 시작한 이 일이 이제는 직업이 아닌 취미가 됐어요.”
그는 1980년 조석진 선생이 운영하는 전주시 팔복동 명장 공예사를 찾아가 전통 짜맞춤 가구의 정수를 전수받았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 20년. 그 사이 그는 1980년 전북기능경기대회 은상을 시작으로 1981년 전국기능대회 은상, 1983년 전북기능대회 금상, 제22·2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등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선보였다.
2001년 고향으로 내려와 장인 공방을 열고 전주애기장, 전주삼층문갑장, 이층장 등을 차근히 복원해 나갔다. 동시에 목가구에 관심을 두는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전통 가구 기능을 익히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장인 공방의 문을 열어 놨다.
또 2009년부터 시작한 전주교도소 가구 기능공 기술 지도와 전주공업고등학교 건축과 강의, 초등학교·중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위한 목가구 만들기 체험 교실 등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전주장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달에는 그의 소망 가운데 하나가 이뤄졌다. 전북무형문화재 제19호 목가구 소목장(小木匠) 보유자로 지정된 것. 큰 능선을 하나 넘으니 이제 그는 다른 산이 보인다.
“개인 공방을 차리기 전인 2000년, 10년 안에 개인전을 열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직까지 못했어요. 몇 작품을 더 만들어 오랜 숙원이었던 개인전을 열고 싶어요. 지금도 다른 건 다 믿어도 나무는 못 믿어요. 늘 최고의 작품을 제작하겠다고 시작하지만 만들고 나면 저에겐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요. 그래서 완성된 작품 하나 만드는 게 제 꿈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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