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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동학농민군 최후 항전지 대둔산, 원형 잘 보전…역사적 가치 크다

▲ 대둔산 최후 항전지.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항전지인 완주 대둔산 유적지는 험한 산세에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또 극적 여건까지 갖춰 예술적 형상화에 대한 예술인들의 관심도 높다. 동학농민민혁명에서 대둔산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현재 모습을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부장이 담아 왔다.

 

1999년 어느 날 필자의 은사이신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전 원광대 사학과 교수)은 연구실에서 필자에게 대둔산에 있는 동학농민군 최후항전지를 찾으러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문헌에서만 대둔산 항전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현장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조사단을 꾸려 대둔산으로 향하였다. 대둔산 형제바위 근처를 맴돌던 우리는 현장을 찾지 못하고 막 하산하려고 하였다. 그때 은사께서 “여기다”라고 소리치셨다. 3m가 넘는 절벽을 겨우 겨우 올라갔다. 그곳에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상당한 넓이의 평지가 있었다. 바로 동학농민군들이 3개월간 항전을 벌였던 현장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흔적이 그때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894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여지는 탄피도 수습하였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역사의 현장과 직면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때의 대둔산 항전지 발굴이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동학농민혁명을 공부하고 있다.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곳에서의 항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 해발 715m의 거대한 암반의 상단에 자리한 최후 항전지는 동학농민군이 1894년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1월 24일까지 관군·일본군에 맞서 싸우던 곳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최대 전투였던 공주 우금치 전투 이후 전라도로 후퇴한 동학농민군을 포함한 고산, 진산 일대의 접주 이상의 동학농민군들은 대둔산 정상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초막 3개 동을 구축하고 관군과 민보군, 일본군과 대치하였다. 결국 1895년 1월 24일(양력 2월 18일)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으로 소년 1명을 제외한 25명의 동학농민군들이 관군과 일본군의 총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중에는 임산부도 있었으며, 접주 김석순은 일본군에 항복하지 않고 한 살 쯤 되는 여자 아이를 끌어안고 150m 되는 절벽으로 뛰어내려 최후를 맞이하였다.

▲ 조사단이 대둔산 항전지를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이 대둔산항쟁 이야기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내용 중 가장 극적인 면이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를 형상화하고자 하였다. 이에 필자는 이들과 함께 역사적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필자는 지난 1월 4일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 김정호 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판화가 박홍규 씨등 10여명과 함께 대둔산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에 다녀왔다.

 

가는 길은 몹시 험했다. 자욱한 안개로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60~70cm 정도의 눈길을 헤치며 어렵게 대둔산 항전지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그때 돌아가신 동학농민군들을 위해 막걸리와 큰절을 올렸다. 눈덮인 대둔산 최후항전지는 우리들에게 120년 전 동학농민군의 심정을 헤아려보게 하였다.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은 “대둔산 최후 항전지는 다른 지역의 동학농민군이 대부분 사라진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저항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 이곳 유적지는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자리잡아 당시 원형이 상당부분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하였다.

 

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정호 회장(변호사)은“대둔산항전지가 빨리 문화재로 지정되고,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화가 박홍규는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 현장에 직접 와보니, 불과 2~3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학농민군이 꿈꾼 세상을 이곳에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동학농민군의 모습을 되새겨 보았다.

▲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필자는 대둔산 최후항전지를 20여 차례 다녀왔다. 다녀올 때마다 남다른 느낌이 든다. 특히 눈 덮인 대둔산항전지에서 술 한 잔 올리며 큰절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울며 다짐하고 빌었다. ‘동학농민군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노라’고, ‘가식과 위선으로 점철된 세상은 사라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아마도 120년 전 동학농민군은 비록 3개월에 짧은 기간이지만 대둔산 꼭대기에 그들의 이상세계를 만들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춥고 배고프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기쁘고 즐거운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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