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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지 '초록'으로 표현

올해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 박복영 시집 〈낙타와 밥그릇〉

‘쏘내기가 금시 그쳤는디 박씨 논에 왠 노인이 맨발로 우두커니 서 있드만 물꼬 트라고 항거여?//노인의 흰 적삼이 젖어 있다’

 

논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왜가리’의 시적 형상이다.

 

‘달팽이’는 ‘때 절은 배낭을 제집인 듯/등에 지고 바닥에 달라붙은 사내’다. 힘겨운 삶의 무게를 이고 오래도록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는 그는 ‘쪼그린 무릎에 떠나온 길이 감겨 있는 듯/빠져나온 맨발이 몰고 있는 가쁜 숨’을 내쉰다. ‘갈라진 발뒤꿈치에서 먹구름냄새가 새어 나오고/발가락에서 빗방울소리’가 흐르는 고단한 여정은 시지프스의 돌과 동행해야 하는 숙명이다.

 

박복영 시인(53)이 시집 <낙타와 밥그릇> (시산맥사)을 냈다. 모두 4부로 나눠 56편의 시를 담았다.

 

그는 머리말을 통해 시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그림자에 묻힌 내 정신의 뼈를 캐고 싶었다. 그 뼈에 실패한 내 시를 새기고 싶었다’며 무릎뼈에까지 새기 허기를 풀어 놓는다 두개골에 마지막 점을 찍는 날 나는 봉인 될 것이다’며 시작에 대한 마음가짐과 열망을 함축했다.

 

이런 태도는 ‘독살’에서 잘 나타난다. ‘자두의 심장은 제 몸을 안고 단단해졌다/햇살이 부러진 자리마다/넘어져 쓰러진 그림자들은 안고/바람의 지느러미가 꿈틀거렸다’에 이어 ‘침묵은/푸르디푸른 열매들을 껴안느라 분주했다/거기, 그림자에 갇힌 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내가 보였다/머지않아 나는/나를 잃고 봉인될 것이다’며 시를 대하는 저자의 모습을 비춘다.

 

작가는 가난하고 낮은 생으로 눈길을 옮긴다. 시집 제목과 같은 작품에서는 ‘늙은 남자가 지게를 지고 모퉁이를 돈다/남자가 끌고 오는 길은 밥그릇이다/걸어온 만큼 밥그릇에 밥이 찼어야’하지만 ‘공복의 밥그릇’에는 ‘놀빛’만 잠길 뿐이다. 결국 ‘어둠 속에/지게를 내려놓으려/몸을 숙이자 숟가락 소리가 났다/숟가락은 이제 밥그릇을 믿지 않는다’며 노동의 대가가 사라져 버린 현실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인식한다. 여기서 낙타는 나오지 않지만 삶의 비루함을 나타낸다는 해석이다.

 

이런 가운데 작가가 발견한 희망은 생명력이다. 이번 시집에서 ‘초록’이라는 단어는 13편의 시에 등장한다. 생을 향한 꺾이지 않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죽은 가지가 끝내 마른 잎을 놓지 않는 것/죽은 나무가 그늘을 끝끝내 지우지 않는 것/하여, 바람이 죽은 나무를 쉬게 하는 것/둥근 나이가/초록을 놓지 않으려 깨문 어금니가 완강하다’며 사랑이 곧 삶이라는 등식을 제시한다.

 

박완호 시인은 해설에서 이 시집을 두고 ‘시를 향한 열망이 피워낸 번뜩이는 수사(修辭)’라고 압축했다. 그는 “사물 및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애착을 바탕으로 시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편, 부조리한 현실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본질을 찾아내고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박복영 시인은 군산 출신으로 1997년 <월간문학> 에 시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고 천강문학사 시조 부문 대상을 받았다. 올 초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시집 <구겨진 편지> , <햇살의 등뼈는 휘어지지 않는다> , <거짓말처럼> , <눈물의 멀미> 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빈터 동인이다.

이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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