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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탄생 100주년, 문학적 자산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⑨ 등단 10년 안팎 문인들이 말하다

"미당은 한국문학사서 외면할 수 없는 거목"

▲ 미당과 서지월 시인이 청룡알과 주작알을 귀에 대고 흔드는 모습.

“요즘 미당 서정주의 문학에 대해 모르는 문인도 꽤 많습니다”

 

최석화 서울문학 출판사 대표에게 등단한 지 얼마 안 된 문인들의 미당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지 물어봤을 때 나온 말이다. 이들이 무지해서가 아니다. 최근 들어 산문시를 쓰는 문인이 많기 때문에 미당 같은 서정 시인을 공부할 기회가 적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 등단한지 얼마 안 된 문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미당에 대해 무지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시인도 상당수였다. 이들 중 인터뷰에 응해준 문인들은 자신의 인생관과 경험에 빗대어 서정주를 바라봤다. 이들은“미당이 한국문학사에서 외면할 수 없는 거목”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 ‘미당 문학상’거절했던 오은 시인 = “저는 미당을 교과서 시인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스무 살을 갓 넘어서 데뷔했다는 오은 시인(33). 등단한 지 올해로 14년째를 맞았다. 오 시인은 교과서로만 미당을 만난 세대다. 서정주의 친일행적과 독재권력 옹호도 지난 2002년 등단한 이후 알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도 수능에 나오지도 않는 서정주의 정치적 과오에 대해 짚어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미당 서정주는 오은 시인에게 공교로운 문인이다. 오 시인은 서정주를 어린 아이에 빗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어린 아이들은 순수할 수도 있지만 무지몽매할 수도 있는데, 아이들의 실수는 몰라서 하는 것이 대부분” 이라고 하면서 “미당의 시 중 일부는 너무 투명해서 어린 아이의 마음이 아니면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당의 그런 부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그 나이에 걸맞은 삶이 존재한다. 미당이 그런 부분에서 무지몽매했기 때문에 친일행각을 벌이고 독재 권력을 옹호했던 것” 이라고 말했다.

 

오은 시인은 미당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한 글을 여러 매체에 남긴 행동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 시인은 “미당이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서 그랬다. 후회한다’고 했다고 실토했는데, 뒤늦은 후회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서정주의 과오에 대해선 덮어줄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시단에 입문한 뒤 안 사실이지만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미당문학상 후보를 거절한 사실도 얘기했다. 그는 “미당의 정치적 과오와 문학적 성과를 분리해서 볼 수 없다고 생각했고, 굳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상을 받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인간의 삶 속에서 문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둘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며 “아름다운 노래를 한 사람이 독재를 찬양했을 때, 삶 속에 의식적인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은 시인은 198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2002년 봄 월간 <현대시> 를 통해 등단했고, 2009년에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을 냈다. 이밖에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 로봇과 서사를 다룬 책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를 썼다. 2014년 제15회 박인환 문학상을 받았으며 현재 ‘작란(作亂)’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미당 제자의 제자 김밝은 시인 = 김밝은 시인(53·여)은 서정주의 마지막 제자인 정숙자 시인과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게서 수학했다.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이자 문학잡지 미네르바 편집위원이다. 이력만 보면 등단한 지 꽤 오래된 시인 같지만 지난 2013년에 데뷔했다. 그는 “다른 일을 하다가 뒤늦게 문단에 입문한 소위 ‘후문학파’다”고 했다.

 

김 시인은 미당의 문학과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문효치 선생님과 정숙자 선생님으로부터 미당 선생님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많이 듣다보니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며 “두 선생님께서는 일제 강점기와 독재정권 시기의 상황과 미당이 처한 현실에 대한 얘기를 상세하게 해주셨다” 고 말했다.

 

미당의 친일행각과 독재정권 옹호를 비판하는 입장에 대해서 “나도 미당을 책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서만 접했다면 같은 입장이었을 수도 있다” 면서도 “실제 미당과 가까이 있었던 분들이 해준 얘기는 기존에 알려졌던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 ‘일제 강점기 경찰에 끌려가서 고문도 당하고, 한국 전쟁 때 몇 번이고 죽을 뻔 한 위기를 넘기면서 체제순응형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김밝은 시인은 스승들과 마찬가지로 미당 시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 시단에서 유행하는 산문시보다 서정시를 쓴다. 그가 등단할 때 발표한 ‘술의 미학’과 지난 해 발표한 ‘애월을 그리다 1·2’를 통해 알 수 있다. 짧은 문장으로 시인의 감흥과 정서를 표현한다.

 

김 시인은 “서정주 시인의 시는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타지 않는다” 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 명작이고 그 시대에 맞는 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 했다. 그는 “서정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미당 선생님처럼 한 번 써보는 게 내 꿈이다”고 말했다.

 

△이국에서 미당 시 그리워하는 박인애 시인=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박인애 시인(53·여)에게 미당 서정주의 존재는 특별하다. 문학소녀였던 학창시절, 미당은 그의 우상이었다. 미당의 시를 필사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다가 지난 2006년 42세의 나이에 등단한 후, 서정주의 시를 다시 찾았다. 그는 “머나먼 타지에서 우리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경희사이버대학교에 2012년에 입학했고, 대학에서 미당의 삶과 문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웠다”고 말했다.

 

박인애 시인은 대학수업을 통해 알게 된 미당의 친일행각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친일한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친일행각으로 수많은 비판에 직면한 미당과 타향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 서정주는 이방인의 땅에서 굴곡진 삶을 살아온 나의 삶보다 더 힘든 삶을 산 분이다” 며 “ ‘자화상’이라는 시에 드러난 것처럼 내면은 외롭고, 가난하고, 죄의식에 시달리고, 세상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서 있는 곳이 다 편치 않았던 고독한 시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고 말했다.

 

앞으로 대중이 미당을 어떻게 봐야 하는 지에 대해선 최근에 흥행한 영화 ‘암살’에 빗대서 설명했다. “영화를 통해 여러 부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조국를 위해 싸운 저격수 안옥윤, 이쪽에도 붙고 저쪽에도 붙어서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쁜 밀정 염석진, 자식도 아내도 죽일 만큼 독한 친일파 강인국, 시국이 어떠하든, 어떻게 생긴 돈이든 간에 친일파 아버지 밑에서 아무 걱정 없이 부를 누리고 산 미츠코… 누구의 삶이 옳고 누구의 삶이 옳지 않았는지는 역사가 판단 할 것입니다.”

 

박인애 시인은 달라스한인문학회 고문,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본격수필가협회 미주지부 지부장. 중앙일보 문화센터 문학교실 강사. 뉴스코리아 칼럼니스트 등을 맡고 있다.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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