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복주머니…문학 발전 헌신 기억해야" / 수필·시 등으로 고인과 추억 그려
1982년 문단에 데뷔해 수필가 소설가 동화작가로 활동했던 신곡 라대곤(1940~2013) 선생. 고인은 특히 <수필과 비평> 을 이끌고, 신곡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수필문학발전에 헌신했다. 문학적 업적뿐 아니라 선후배 문인을 두루 살피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였다. 수필과>
동료·후배들이 이달초 김제 청운사에 추모비를 건립한데 이어 추모문집 <어서오소서> (수필과비평사)를 엮었다. ‘라대곤추모문집발간위원회’가 엮은 문집에는 70여명의 문인이 참여했다. 어서오소서>
문인들은 시와 수필, 소설, 평론 등 다양한 글쓰기 방법으로 고인과의 추억을 들췄다. 특히 고인의 인간애와 포옹력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김남곤 시인은 “라 회장은 자신의 인화력과 포옹력의 결과였겠지만 언제나 사람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지 샘이 날 정도였다”며 고인의 인간애를 추억했다. 김제김영 시인도 “권위적이지 않았고, 높임 받기를 좋아하지 않아 문단의 후배들과 자주 어울렸다”면서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기억했다.
김용옥 시인은 “선생은 문단의 복주머니이자 딴주머니였다”면서 “ <수필과 비평> 이 상당한 숫자의 수필가를 생산한 수필잡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사람 라대곤이 시간과 재물, 인간성을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필과>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도 동료 문인들에게 귀감이 됐다. 정종명 <계간문예> 발행인은 “그의 소설은 힘있는 문장으로 막히지 않고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구수한 입담이 독자의 마을을 사로잡는 마력을 발휘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해학소설의 묘미와 익살을 잘 보여주는 작가였다”고 했다. 김년균 시인도 “선배님은 문장에서도 높다란 성을 쌓았다”면서 “걸쭉하고 구성진 입담은 절창이자 명품이었고, 내일을 꿈꾸는 자의 가슴에 오롯이 남아있다”고 추모시 ‘별처럼’에서 밝혔다. 계간문예>
추모문집에는 문효치 서재균 소재호 이운룡 정군수 조기호 시인 등 문단의 원로와 중견작가가 두루 참여했다. 특히 <수필과 비평> 을 통해 등단한 작가와 신곡문학상 수상자들이 회고하는 고인의 모습은 더욱 살뜰하다. 수필과>
서정환 <수필과 비평> 발행인은 “신곡 선생은 많은 문인들에게 잊을수 없는 강렬한 흔적과 한 없이 그리운 이미지를 만들어놓았다”면서 “그의 문학이 담보하고 있는 깊이와 의의에 대해 문학사에서 다시 평가되고 자리매김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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