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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 비평의 한 시대가 장막 뒤로 사라지다

하남 천이두(1929.9∼2017. 7) 선생이 8일 아침에 영면(永眠)하셨습니다. 슬펐는지 하늘도 이 날 굵은 빗줄기를 뿌렸습니다.

 

이 날 우리는 한국비평계의 큰 별로 빛나던 선생의 모습을 그리며 애통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한 잔 술에 북채를 잡고 ‘쑥대머리’를 부르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의 가슴 속을 아련히 파고들던 그 소리의 기억 속에서 해방 후 한국문학 연구의 책임을 떠안고 노심초사했던 선생의 고뇌와 열정을 되새겨 봅니다.

 

식민지시대 비평의 잔재를 청산하면서 한글세대 비평의 비전을 열었던 선생은, 명실상부 한국문학 비평의 초석을 다지신 분입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문학의 가치를 추구했던 선생의 비평에는, 문학예술의 본질에 관한 물음을 항상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예술적 표현과 시대상황의 문제를 조화시켜 특유의 직관과 감성으로 소설문학의 변화사(變化史)를 엮어나간 <한국현대소설론> (1969)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저서는 개별 작가의 작품 속에 내재한 한국문학 전체의 숨은 주제를 탐색하는 작업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선생의 비평은 개별 작품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여, 그것을 한국문학의 거시적 주제로 부각시키는 문제에 초점이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문학의 이면에 잠재된 주제들을 접근한 ‘토속적 상황설정과 한국 소설’, ‘분단현실과 한국문학’을 비롯하여 사실주의 소설의 전개를 다룬 ‘한국소설의 정통과 이단’ 등이 이러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선생의 비평은 서구의 과학적-이성적 논리만이 참된 비평으로 추앙받으며 한 예술가의 작품세계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도그마적 비평의 편견을 뛰어 넘어 또 다른 형태의 예술적 글쓰기를 지향했습니다. 그것은 문학이론의 감옥을 벗어나 상상력의 세계로 비상(飛翔)하는 문학예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선생의 미학적 글쓰기는 작품의 예술성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감성과 직관의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비평 본연의 임무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문학내적 조화를 중시하는 비평을 통해 선생은 한국문학의 주요 국면을 형성해온 작가들의 밑그림을 성공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선생은 한글세대 비평의 올바른 방향을 정립했고, 식민지시대 비평의 반민족적-친일적 성향을 해소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문학비평이라는 글쓰기를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영역으로 받아들일 것을 한국문단에 암묵적으로 요구한 것입니다.

 

<종합에의 의지> (1974), <한국소설의 관점> (1980), <문학과 시대> (1982), <한국문학과 한> (1985), <한의 구조 연구> (1993), <한국소설의 흐름> (1998), <우리 시대의 문학> (1998) 등 한국문학에 관한 중요한 저서들을 펴낸 강단의 연구가이자 문단의 비평가가 천이두 선생이었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평생에 걸쳐 탐구했던 연구 테마가 ‘한의 문제’였고 그것이 결실을 맺은 저서가 <한의 구조 연구> 라는 사실입니다.

 

‘평생 한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에 골몰하며’ 험난한 굴곡의 현대사를 견뎌오며 선생은, 한이란 무엇인가에 천착(穿鑿)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 자신의 삶의 역정(歷程)을 반영한 힘든 여로(旅路)이기도 했습니다. 송곳 하나로 바위 구멍을 뚫는 그 집요한 끈기로 ‘한국적 한의 본질’을 해명한 <한의 구조 연구> 라는 이 한 권의 책이 그 결산입니다. 한에 관한 연구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는 학계(學界)의 평판을 듣고 선생은 흡족해하셨습니다.

 

공적 생활을 교육계의 사표(師表)로서, 비평계의 원로로서 ‘한스런 생’을 곰삭혀내신 선생의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사무친 그리움의 절절한 목소리’로 ‘쑥대머리’ 한 자락 부르면서 선생이시여, 하늘에 먼저 가 계신 사모님과 복락(福樂)을 영원히 누리소서.

▲ 전정구 문학평론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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