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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39) 2장 대야성 18

“나리, 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장들이 돌아가고 계백 혼자 마룻방에 남았을 때 먼저 나갔던 남용이 문앞에서 말했다.

 

“뭐냐?”

 

다가온 남용이 품에서 접혀진 편지를 두 통 꺼내더니 내밀었다.

 

“하나는 대아찬이 나리께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딸에게 주는 편지지만 나리께 먼저 드리라고 하더구만요.”

 

20대쯤의 남용은 농사꾼에서 병사로, 병사에서 15품 진무까지 출신을 했다. 군 경력이 8년, 수많은 전장(戰場)에서 살아남은 터라 생존본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편지를 받아든 계백이 남용에게 물었다.

 

“진무, 대아찬의 기색이 어떻더냐?”

 

남용은 그동안 진궁과 함께 생활해왔던 것이다. 백제 측에서는 연락역 겸 감시역이다.

 

“가야 호족으로 신라 왕족들에게 무시당해온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남용이 바로 대답했다.

 

“백제군을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려 신라에 충성할 위인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딸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고 진심 같습니다. 딸이 잘 살면 된다는 말만 여러번 했습니다.”

 

“진무, 수고했다.”

 

“나리.”

 

계백을 부른 남용이 시선이 마주치자 쓴웃음을 지었다.

 

“저와 하성은 이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번 공격이 성공하면 너희들 둘은 12품 문독이 된다. 그것이 자손에게도 전해질 게다.”

 

“그만하면 죽을 보람이 있지요.”

 

어깨를 부풀린 남용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죽더라도 자식에게 직위가 넘겨진다는 말이다. 남용이 몸을 돌렸을 때 계백은 먼저 자신에게로 온 편지부터 보았다. 이제는 눈에 익은 진궁의 필체다.

 

“나솔, 다시 뵙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런 말을 할 기회가 없을 터라 먼저 말씀드리오. 내 딸 고화가 여러모로 부족하나 나솔이 상처하셨다고 들었기 때문에 배필로 맞아주시면 마음놓고 세상을 뜰 수 있겠소. 이것도 인연이니 고화를 받아주시기 바라오. 고화에게도 따로 편지를 쓸 것인데 고화는 아비의 뜻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승낙해주신다면 백제와 나솔을 위해 대야성 공략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소. 진궁.”

 

한동안 편지를 보던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편지는 자신의 딸을 배필로 맞으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내용은 당당했고 딸과 대야성을 바꾸겠다는 분위기까지 풍겼다. 이윽고 계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내용 속에 박힌 진궁의 아픔과 분노, 그리고 진심까지 몸속으로 배어드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당으로 나간 계백이 종을 불러 고화를 불렀다. 고화는 이제 종이 아니라 손님이다. 방에서 나온 고화가 앞에 섰을 때 계백이 편지를 내밀었다.

 

“부친과 함께 있는 무장이 여기 오면서 그대 부친의 편지를 가져왔어.”

 

편지를 내민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한테도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것도 함께 읽는 것이 낫겠군.”

 

계백이 다시 편지 한 통을 꺼내 고화에게 건네주고는 돌아섰다. 밤이 깊어서 칠봉산 이쪽저쪽의 부엉이가 울기 시작했다. 방으로 돌아온 계백이 그때서야 옷을 갈아입었을 때 덕조가 술상을 든 종과 함께 들어섰다.

 

“주인, 무슨 편지를 주신 겁니까?”

 

종이 나갔을 때 술상 옆에 앉은 덕조가 물었다.

 

“얼핏 들었더니 부친이 보낸 편지라면서요?”

 

“고화 부친이 나한테 고화를 처로 맞아 달라는구나.”

 

순간 숨을 들이켠 덕조가 몸까지 굳히더니 이윽고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소인이 보기에는 마님으로 적당하십니다. 얼른 받아들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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