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고구려는 5부(部), 3경(京)제로 되어 있었으니 동, 서, 남, 북, 내(內)의 5부에 평양성, 국내성, 한성의 3경(京)이었다. 전국의 성이 176개, 호구가 69만7천호여서 백제의 5부(部), 37군(郡), 200성, 76만호에 620만 인구에 비하면 면적에 비해서 인구가 적은편이다.
의자왕 2년 10월, 영류왕 25년, 평양성. 오늘은 평양성에 5부(部)의 수장들이 다 모였다. 부족의 이름을 따서 내부(內部)는 계루부로도 불렸고 서부(西部)는 연노부, 북부(北部)는 절노부, 동부(東部)는 순노부이며 남부(南部)는 관노부이다. 오늘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감독했던 장성투입 병력의 열병식을 한 것이다. 천리장성은 대륙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세워졌다. 곧 영류왕의 북수남진(北守南進) 정책의 산물로써 16년간의 공사로 완공이 된 것이다. 천리장성은 서부(西部)로 뻗어있었기 때문에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공사를 맡아야 했으니 인력과 물자의 손실이 대단했다. 5부대인은 모두가 부족의 장으로 대부분 대를 이어서 대인직을 물려받았다. 따라서 제각기 사병(私兵)을 길러 국경을 지켰는데 연개소문의 서부가 영토도 가장 큰데다 사병의 수도 많았으므로 대인(大人)중의 수장(首長) 노릇을 한다. 5부대인이 청에 좌정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영류왕이 들어섰다. 영류왕 건무는 26대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6척 장신에 수염이 길었고 눈빛이 맑았다. 영양왕때 수의 대군을 을지문덕과 함께 몰사시킨 용장이었으나 왕이 되자 북수남진 정책을 펴왔다. 영류왕이 용상에 앉아 백관을 둘러보았다. 5부대인과 그들의 중신(重臣)들, 그리고 조정의 고관이 모두 모였으므로 대왕진에 모인 관리는 2백인이 넘는다.
“모두 앉으라.”
영류왕이 말하자 모두 자리에 다시 앉는다. 각자의 앞에 술상이 차려져 있어서 왕이 먼저 술잔을 들었다. 시녀가 다가와 잔에 술을 채운다.
“이제 북쪽 국경은 그것으로 되었어.”
잔을 들어 올리면서 영류왕이 말하자 대신들도 모두 잔을 들었다. 그 때 영류왕의 시선이 연개소문에게 옮겨졌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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