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알았다.”
소가 에미시의 편지를 읽은 풍이 시선을 들고 말했다. 앞에는 에미시의 중신(重臣) 오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백제계인 소가 가문에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공합니다. 왕자 전하.”
오다 또한 백제 유민으로 둘은 백제어로 말하고 있다. 50대의 오다가 머리를 들고 풍을 보았다.
“전하, 왜국의 부리는 백제계입니다. 소가 가문이 왜국에서 이만큼 기반을 굳힐 수 있었던 것도 백제방 덕분입니다. 백제방을 습격하려는 발상을 낸 것은 우리 백제계의 의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족속들의 소행입니다.”
“네 말이 맞다.”
머리를 끄덕인 풍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덕솔 진겸 이하 12명의 수행원이 몰사를 했다. 놈들은 내가 궁에서 나오는 줄 알고 나를 노렸던 것인데 진겸이 대신 죽었다.”
오후 술시(8시) 무렵, 백제방의 청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비장한 표정이다. 풍의 말이 청을 울렸다.
“어젯밤 본국에서 쾌선을 타고 온 전령의 서신을 읽었다. 신라왕 덕만이 비담의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단이 이번에 우리를 습격한 것과 유사하구나. 암살을 하고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수단이 말이다.”
오다는 눈만 치켜떴다. 바다 건너 소식은 백제방이 훨씬 빠를 것이다. 풍의 말이 이어졌다.
“신라는 비담의 반란을 겨우 진압하고 새 여왕 승만이 즉위했다. 김춘추는 승만의 뒤에서 조종하는 섭정 역할이 되어서 권력을 장악했다.”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김춘추의 계략대로 된 것이지만 백제와 신라와의 합병은 멀어진 대신 신라는 당의 신하국으로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예, 전하.”
“이럴 때일수록 왜국은 하나가 되어서 신라의 모략에 대비해야 될 것이라고 소가 대신에게 전하라.”
“예, 전하.”
풍이 머리를 끄덕이자 오다가 절을 하고 청을 나갔다. 그때 청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위사장이 보고했다.
“전하, 예인 동복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무엇이?”
놀란 풍이 상반신을 세우더니 물었다.
“서문사에서 실종되었던 동복이 말이냐?”
“예, 전하.”
“불러라.”
청 안이 술렁거렸고 곧 위사장이 초췌한 모습의 관리 하나를 대동하고 청에 올랐다. 예인 동복이다. 동복은 지난밤에 진겸과 함께 백제방으로 돌아오다가 기습을 받았던 것이다. 일행은 몰사했지만 동복 한명만 실종되었었다. 청에 엎드린 동복은 40대의 예식 관리다. 풍이 정색하고 물었다.
“어떻게 살았느냐?”
“덕솔이 서문사 안으로 피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습격자는 보았느냐?”
“모두 검은 옷에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눈만 보았지만 목소리는 들었습니다.”
“누구 목소리냐?”
“신라인이었습니다.”
동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풍을 보았다.
“덕솔이 하나라도 살아남아서 습격자가 신라인이었다는 것을 전하께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청 안에 살기가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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