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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26) 12장 무신(武神) 2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오후 신시(4시) 무렵, 쿠로기(黑木) 성 동문 앞 1백보 거리에 긴 장대가 하나 꽂혔다. 20자(6m)가 넘는 대나무 장대다. 장대 위에 투구를 쓴 채로 아리아케의 머리가 꽂혔는데 눈 사이에 화살이 박힌 채다. 눈을 치켜뜬 아리아케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딱 벌리고 있다. 놀란 표정 같기도 하다. 성벽에서는 아리아케의 얼굴까지 다 보였기 때문에 군사들의 시선이 모이지 않을 리가 없다. 군사들 사이에 낀 주민들도 보인다. 백제군은 5백보쯤 떨어진 거리에 정연하게 늘어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말은 옆에 세워놓아서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는 되었다. 계백도 나무 걸상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갑옷을 입은 채다. 그때 옆에 선 윤진이 말했다.

“장군, 성에서 누가 나옵니다.”

윤진은 계백한테 ‘장군’이라고도 불렀다가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주군’이라고도 부른다. 계백은 이곳 영주이며 윤진은 그의 신하가 된다. 계백은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머리를 든 계백이 성에서 나오는 3인의 기마인을 보았다. 앞장 선 기마군이 든 창에 백기가 달려져 있다. 사자다. 오래전부터 ‘백기’는 ‘사자’나 ‘투항자’의 표시가 되어있다. 윤진이 웃음 띤 얼굴로 계백에게 말했다.

“노무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기마인은 아리아케의 머리 밑을 지나 군사들의 안내를 받고 계백 앞에서, 말에서 내렸다. 앞장선 장수는 노무라다. 노무라가 계백의 다섯 걸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아리아케의 가신 노무라가 계백 영주님을 뵙습니다.”

노무라는 52세, 대를 이어서 아리아케의 가신을 지내고 있다. 마른 체격, 그러나 붉은 기운이 도는 눈빛이 강하다. 노무라의 목소리가 이어서 울렸다.

“영주께 아리아케 영지를 바치려고 왔습니다.”

계백은 시선만 주었고 노무라가 다시 외친다.

“지금 입성하시면 가신들을 모두 만나실 수 있습니다. 처분을 맡기겠습니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투항자는 살려주겠다. 장졸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소집할 때까지 해산해라.”

“해산하란 말씀입니까?”

눈을 크게 뜬 노무라가 다시 물었다.

“집으로 돌려보냅니까?”

“그렇다. 집에서 쉬도록. 내가 다시 부르면 새 영주를 모시려고 모이는 것이다.”

“예, 대감. 모두 감복할 것입니다.”

이마를 땅바닥에 붙였다가 뗀 노무라가 다시 계백을 보았다.

“대감, 가신들은 모두 청에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아리아케의 처첩, 자식들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처첩으로 삼겠다.”

바로 대답한 계백이 어깨를 펴고 노무라를 보았다.

“아리아케를 모신 것이 무슨 죄란 말이냐? 내가 다시 처첩으로 삼을 테니 그리 알라고 해라.”

“예, 대감.”

당황한 노무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러면, 아리아케의 자식들은…….”

“제 애비의 복수를 할까?”

“감히…….”

“나하고 같은 내실에 살기 거북할 테니 떠날 사람은 떠나도록 해라.”

“예, 대감.”

그때 계백이 윤진을 돌아보았다.

“그대가 노무라를 따라가 수습하도록.”

윤진이 기마군 1백기를 거느리고 먼저 노무라와 함께 쿠로기 성에 입성했다. 새 영주 계백을 맞을 준비를 시킨 것이다. 이제 타카모리의 거성까지의 모든 성을 장악했다. 앞으로 타카모리의 거성이 남아있었지만 하세가와는 이미 전 가신의 서약서를 써서 백용문에게 건네주었다. 타카모리의 영지 25만석이 평정된 것이다. 그것도 기마군 5백도 안 되는 병력으로 정벌했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왜국은 새로운 땅이다. 새로운 백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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