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주군, 저쪽 산 너머가 고노 영지입니다.”
슈토가 손으로 왼쪽 산을 가리켰다. 오후 미시(2시) 무렵, 계백은 슈토가 이끄는 기마군 1천기와 함께 기동훈련 중이다. 슈토가 말을 이었다.
“3년 전에 영주 고노가 병으로 죽고 지금은 미망인인 아스나 부인이 6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중신(重臣)들이 서로 영지를 차지하려고 칼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내란 중이지요.”
의외의 말이어서 계백은 듣기만 했고 위사장 하도리는 빤히 슈토를 보았다. 슈토가 몸이 가벼워져서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네 다리를 움직이는 말 배를 무릎으로 조였다. 억센 힘이어서 놀란 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바람에 백성들이 3년째 고생을 합니다. 중신들이 서로 세금을 뜯어가는 바람에 굶어 죽는 백성이 늘어났습니다.”
“이런.”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지그시 슈토를 보았다.
“그래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냐?”
“아니올시다, 주군.”
슈토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쓰와 성을 떠난지 사흘째, 이곳은 이쓰와 성에서 7백여 리 거리인 것이다. 하루에 2백5십리를 전진했으니 왜군(倭軍) 기마군으로는 꿈도 못 꿀 전진 속도다. 중무장한 왜군 기마군은 하루에 5, 60리 전진이 고작인 것이다. 앞쪽의 고노 영지는 계백령 서북쪽 변두리에 위치한 소국(小國)이다. 3만8천석 넓이에다 영주가 병사하고 내분이 일어난 영지인 것이다. 그때 슈토가 말했다.
“이곳의 가신(家臣) 중 우에노라는 자가 있습니다. 소신과 친분이 있는 자인데 지난번에 저에게 서신을 보내어 차라리 타카모리 님이 이 영지를 병합하는 것이 백성을 위해서 낫겠다고 했습니다.”
슈토의 얼굴에서 땀이 배어나오고 있다. 계백의 지시대로 슈토도 투구는 썼지만 어깨와 가슴만 가죽 갑옷으로 감싼 경장 차림이고 말도 가슴 가리개만 했다. 허리에는 장검을 찼고 손에 단창을 쥐었다. 간편한 무장이다. 슈토가 말을 이었다.
“아스나 부인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유자 히지 님과 아스나 님은 국경 근처의 절에서 살게만 해주면 영지를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슈토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제가 타카모리 님께 그 말씀을 전하기도 전에 영지 문제가 일어난 것입니다.”
“슈토 님이 전해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오?”
듣고 있던 하도리가 불쑥 묻자 슈토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렇습니다.”
슈토가 계백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타카모리 님은 아스나 님 모자를 살려두시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오.”
그때 계백이 물었다.
“이곳 내란을 일으키는 중신(重臣) 놈들은 몇이냐?”
“예, 넷입니다.”
슈토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모두 2백에서 5백 정도의 군사를 거느리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데 모두 물욕에만 눈이 먼 놈들입니다.”
슈토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그리고 제각기 소가 전(前) 대감과 현(現) 대감께 청을 넣어 영지를 장악하면 심복이 되겠노라고 서약서를 넣었다는 것입니다. 뇌물도 바쳤는데 두 대감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백성만 죽어나는구나.”
입맛을 다신 계백이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정찰을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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