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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혜원 시인 - 정양 산문집 ‘백수광부의 꿈’

백수광부의 꿈과 노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알려져 있는 정양은 판소리나 한시에도 정통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문학 연구자이다. 정양이 판소리에 애정을 가졌던 것은 판소리가 민중의 전통 구비 장르로 이름 없는 민중의 창작물이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듯하지만 이면으로는 그 지배층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공역이긴 하지만 한시 번역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정양의 한시에 대한 애착이 언뜻 수긍이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판소리와 달리 한시는 한자로 쓰인 기록 장르로 주로 양반들이 향유했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공무도하 公無渡河 저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공경도하 公竟渡河 임은 그예 그 물을 건너셨네.

타하이사 墮河而死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당내공하 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이할꼬. (정병욱 번역)

 

공무도하 公無渡河 물 건너가지 말라니까

공경도하 公竟渡河 끝내 건너가더니

타하이사 墮河而死 저렇게 빠져 죽었네

공장내하 公將奈何 이 노릇을 어쩌면 좋아 (정양 번역)

 

그러나 ‘백수광부의 꿈’ 실린 한역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번역을 보면, 한시 번역 작업을 통해 추구한 정양의 문학관을 짐작할 수 있다. 정양의 번역을 그 유명한 정병욱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정병욱의 번역에는, 백수광부의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임”이라는 존칭어와 “건너지 마오”, “건너셨네”, “돌아가시니”의 높임법이 사용되었다. 정양의 번역에는 존칭어도 높임법도 보이지 않는다. 뱃사공일로 먹고사는 이 시의 주인공 내외는 분명 일반 하층민이다. 더구나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격식 있는 언어가 사용될 리 없다. “건너가지 말라니까/끝내 건너가더니”, “저렇게 빠져 죽었네”, “이 노릇을 어쩌면 좋아”에는 민중의 언어가 육성처럼 옮겨져 고스란히 살아 있다.

민중의 삶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번역한 ‘공무도하가’처럼, 정양은 산문집 ‘백수광부의 꿈’에서 여인을 뿌리치고 강물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소시민 가장 ‘백수광부’의 현실적 고통을 통해 사회사적 감동을 복원해 내고 있다. 몸조심 하느라 건너려 하지 않는 강물을 목숨 걸고 건넜던 ‘백수광부’를 권력자들이 금기시한 저항 정신을 실천한 비극적 영웅으로 보고 그 ‘백수광부’를 우리 역사 속에서 소환하여 ‘백수광부’의 ‘꿈’이 모든 지배와 억압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인간을 회복하기 위한 ‘꿈’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될 ‘물 건너 마을’을 인간 해방의 공간으로 보았다. 물론 인간 해방의 실현이라는 이 유토피아적 시공간이야말로 정양이 그의 산문집 전편을 통해 보여준 정양의 ‘꿈’과 ‘노래’였다.

 

* 김혜원 시인은 문학과 사진을 전공했다. 지난 201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먼지’가 당선됐고, 지형과 환경에 대한 사진 작업과 함께 시와 사진의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 명지대 한국이미지언어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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