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인정예고
수궁가 김수연 명창, 국악원을 놀이터로… 소리와의 운명
적벽가 김일구 명창, 어린시절 가난이 연결해준 소리의 길
문화재청이 최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김수연(72) 명창을, 적벽가 보유자로 김일구(80) 명창을 인정 예고하면서 소리 고장 전북이 자존심을 높게 세웠다.
김수연 명창과 김일구 명창은 “기쁘고 영광스럽지만, 너무 늦은 나이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돼 시간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후계자 양성 등 자신들의 문화재를 전수할 시간이 부족해서다. 평생 소리 외길을 걸어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판소리와의 운명적인 만남’ 김수연 명창
이번에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인정예고 된 김수연 명창은 군산 출신이다. 어린 시절 김 명창의 놀이터는 국악원이었다. 마을에 놀이터가 없어 뛰어놀 공간이 부족했던 그는 국악원 연습실을 헤집고 다녔다. 그곳에서 매일 같이 소리를 듣다 보니 소리에 귀가 트기 시작했고, 어깨너머로 본 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당시 군산국악원장이었던 김재경 명창은 어린 김수연 명창의 소리에 빠져들었다. 김재경 명창은 김수연 명창의 어머니를 찾아가 “수연이가 소리에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전공할 수 있도록 직접 가르쳐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주변에서 “어린 나이에 한이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최고의 칭찬이었다.
김재경 명창이 떠난 후 김수연 명창은 이리(현재 익산)에서 배움을 이어나갔고, 21살 무렵 박초월 명창을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박 명창은 소리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 명창은 돈도 없고, 연고지도 없던 그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등 큰 힘이 됐다. 김 명창은 “정말 어려웠던 시절 선생님(박초월 명창)께서 베풀어 주신 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박 명창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배운 그는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우기 위해 성우향 전 보유자를 찾아가 전수받았다.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아서일까. 김 명창은 현재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스승의 가르침대로 어려운 제자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박초월 선생님 밑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의 가족이 ‘우리가 죽이라도 같이 먹고 살자’고 했던 따뜻한 마음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스승의 가르침대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제자들을 위해 도움을 주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난이 선물한 소리’ 김일구 명창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일구 명창이 소리를 시작한 직접적 동기는 ‘가난’이었다. 소리를 좋아하는 어른들로부터 소리꾼들이 용돈을 받는 등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본 그는 “소리만 배우면 대우를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김 명창은 평소 소리를 즐겨하신 아버지를 통해 소리에 입문한다. 지독하고 혹독했던 가난이 그를 소리의 길로 인도한 셈이다.
20살이 된 김 명창은 1960년 광주 호남국악원에 활동하고 있던 공대일 명창을 찾아가 흥보가를 배웠다. 이후 박봉술 전 보유자에게 적벽가 등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변성기가 찾아왔다. “무리해서 소리를 하다간 목이 꺾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그는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22살이 되던 해인 1962년 목포 유달국악원에서 활동하고 있던 장월중선 명창을 찾아가 아쟁산조를 배웠고, 1968년에는 부산에서 활동 중이던 원옥화 명인으로부터 가야금을 배우며 전통악기의 대가로 성장하게 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공연을 한 그는 예향의 도시 전주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특히 판소리의 고장인 전북에 있는 전주대사습놀이와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펼쳐진다는 점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서울 생활을 청산한 그는 2001년부터 예향의 도시 전주에 정착해 한옥마을에 ‘온고을 소리청’을 개관했다. 그의 목소리에 반한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은 전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명창은 “청년 시절부터 전주에서 언젠가는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면서 “생각만으로 쉽지 않았지만 당시 김완주 시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주는 명예를 안겨주고 제자 양성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세우도록 한 도시”라면서 “앞으로 전통 판소리를 전승·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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