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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의 집자리

최완규 (원광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마한 집자리
마한 집자리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구간내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마한 분묘유적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한 사람들의 집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고고학 연구에서 죽음의 공간인 분묘와 삶의 공간인 집자리는 매우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분묘를 통해서 축조 집단의 계통을 살필 수 있고, 집자리를 통해서는 당시의 자연환경이나 기후, 그리고 생업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골의 자연부락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마한 사람들도 삶의 터전인 취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단적으로 분묘를 축조하고 있어 삶과 죽음의 끈끈한 연결 고리 속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아마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농업을 주 생업으로 삼았던 마한 사람들의 혈연 중심적인 사회적 현상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마한 사람들이 선호했던 집자리의 위치는 낮은 구릉의 남동쪽의 사면을 선택하여 취락을 형성하고 있었고, 유구의 중첩이 이루어진 곳도 많아 오랜 기간 동안 정착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는 대부분 나지막하게 기반토를 판 소위 움집형태인데, 청동기시대 집자리에 비해 현저히 낮게 파서 축조하고 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릉의 사면을 파서 집자리를 축조하고 있기 때문에 발굴조사에서는 높은 쪽의 벽면은 잘 남아 있는 반면에 낮은 쪽의 벽면은 유실된 경우가 많았다.

마한 집자리의 평면형태는 방형이 대부분이며 한쪽 벽에 입구처럼 돌출된 예도 있다. 그 규모는 소형에서 대형까지 다양하지만, 평균적으로 각 변이 5×7m 정도로서 4∼5인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한편 한 변이 11m이상 되는 대형도 발견되는데 이는 공동의 집회장소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부시설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은 네 벽의 하부를 따라서 도랑을 두르고 밖으로 출구를 두고 있는데, 이는 집 내부의 습기를 배출하기 위한 시설이다. 또한 지붕을 결구하기 위해서 내부에는 기둥을 세웠던 구덩이가 노출되기도 하는데, 방형을 이루고 설치된 네 개의 기둥을 세웠던 방식은 마한 특유의 구조로서 알려져 있다. 취사시설과 관련된 부엌자리는 한쪽 벽에 붙여 시설되어 있고, 솥을 받칠 수 있도록 장란형토기를 뒤엎어서 두 개를 세운 받침이 발견되고 있다. 때로는 부엌 아궁이 턱받침 토제품이 발견되기도 한다.

출토 토기
출토 토기

마한 집자리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주로 생활용 토기로서 귀때토기나 장란형토기, 시루, 단경호, 이중구연토기 등 다양한 기종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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