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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 “새로운 시스템 구축… 수평의 힘 믿어”

시스템 가진 폭력성 벗어나야… 수직적 구조 거부감
지역문협과 활발한 교류… 문인·도민 접경도 늘릴 것

김영(본명 김영자) 시인이 제32대 전북문인협회장에 오르며 또 한 번 ‘유리천장’을 깼다. 전북문인협회 역사 59년 만에 첫 여성 회장이 된 것이다. 김 회장은 김제예총 회장도 역임했는데, 당시에도 시군 여성 예총회장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은 자의든 타의든 지역 문단에서는 큰 ‘변화’로 읽힌다. 이 변화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문화와 관습, 제도 속에서 의미 있는 징검다리를 놓는 일임엔 틀림없다. 이제 후배 여성 문인들은 그가 놓은 징검다리를 밟고 강을 건널 것이다.

1일부터 본격적인 임기를 시작하는 그를 지난달 29일 전북일보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김영 전북문인협회장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전북문인협회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김영 전북문인협회장이 전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전북문인협회 운영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현욱 기자

- 전북문인협회장으로 취임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런 감정이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요?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러나 걱정도 되네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만 막상 내 앞에 그 일이 다가오니 좀 걱정도 돼요. 물리적인 힘의 부족도 있고, 1000여 명이나 되는 문인들의 개성을 과연 조화롭게 엮어낼 수 있을까? 서로 상충하는 의견들의 어디쯤에서 접점을 찾을 것인가? 이런 걱정들도 앞서네요.”

 

- 어떤 마음으로 전북문협 회장직에 출사표를 던지셨나요.

“원래 시스템 구축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문단에 들어와서 활동한 지가 30년이 조금 안 되는데 한 번도 시스템이 바뀐 적이 없죠. 어느 날 생각해보니 제가 대한민국 평균 수명을 누린다면 앞으로도 이런 시스템 안에서 또 30년 가깝게 문단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좀 재미없는 미래였지요. 문학이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문학의 궁극이 인간의 구원이라면, 혹은 삶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되어야 한다면, 시스템이 가진 폭력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 전북문협, 김제예총 등 전북 첫 여성 회장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는 데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단, 시대 상황이 저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은 거지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의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적 상황에 편승한 부분이 많고요. 또 하나는 조그맣고 겁 없는 여성 문인에게 길을 내어주신 문단의 여러 어르신과 선후배 문인들의 배려에 기댄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냉정해요. 사회 어느 곳에서나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발휘해야 비로소 동등하게 보아주는 편이죠. 저를 믿어주신 많은 문인과 특히 후배 여성 문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전북문협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 59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회장이 취임했다는 소식에, 도내 문단이 남성 중심이었다는 걸 재인식하게 됐습니다. 사회적 편견, 차별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주 많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비교적 자유로운 영혼의 집합소인 이 문단에 와서도 여성이어서 들어야 하는 거친 언사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드세다’는 말은 여성에게만 쓰는 말이지요. 똑같은 상황에서 남성에게는 다른 언사를 사용하지요. 이런 말들을 제법 들었습니다. 또 전북문협 회장에 출사표를 내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화장을 해라’였지요. 그럴 때마다 과연 저 언사는 ‘여성은 화장하는 것이 예의다’는 말인지 아니면 ‘여성은 화장이나 하고 다소곳하게 있으라’라는 말인지 헷갈렸지만, 발화 상황에 맞추어서 저 스스로 해석해야 했지요. 어찌 됐든 둘 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들어 있는 말이지요.”

 

-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북문협을 이끌어갈 생각이십니까.

“저는 수직에 대한 유별난 거부감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승진을 꿈꾸지 않은 것도 수직구조를 거부했기 때문인데요. 지금도 누군가가 수직의 힘으로 누르면 쓱~ 빠져나가 버리거나 이탈해 버립니다. 예술과 예술가를 좋아하는 것도, 수직의 폭력성이 상대적으로 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나이가 들다 보니 어떤 단체를 맡아야 하는 때가 종종 오기도 하는데요. 저는 단체를 맡으면 일단 수평적인 시스템을 먼저 구축합니다. 수평의 힘이 제일 단단한 힘이지요. 단단해서 오래 가는 것이지요. 수직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언제고 무너져 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수직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수직을 먼저 배웠지요. 수직을 통해 권력을 얻고, 수직으로 사람을 다루는 구조에 젖어있지요. 누추하고 허름하게 보이지만, 위계질서가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수평의 힘으로 사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현재 전북문협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를 해결할 복안이 있으시다면.

“다행히도 전북문협 내부적인 문제는 없는 편입니다. 굳이 문제점을 들어본다면, 전북문협의 운영이 지금까지는 전주 중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리적 여건이나 문인의 분포도 등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런 운영은 지역문협을 변방으로 내몰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전북문협 스스로 문학적 영토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런 점을 해결하려고 저는 전북문협의 행사를 지역문협과 함께 하려 합니다. 전북의 각 지역에 가서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공부하고 그 지역 문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기회를 한 달에 한 번은 가질 예정입니다. 또 지금은 사회적 형편으로 자주 모이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서로 만나 작품을 이야기하고 안부를 물을 기회마저 강제로 박탈당한 것이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작은 모임을 활성화할 예정입니다. 필요하다면 전북문협의 모든 행사를 작은 행사로 바꾸어서 진행해 볼 계획입니다. 일단 매월 건지산에서 작은 문학 행사를 열 생각인데, 문인들만의 무대가 아니라 도민과 함께 하는 무대입니다. 해서 도민과 문인 사이의 접경을 늘리고 이를 통해 전북 문학의 역량을 키워볼 요량입니다.”

 

- 전북문협 고령화, 즉 젊은 문인들이 쉽게 유입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젠 등단하지 않아도 자신의 글을 쓰고, 표현하는 매체들이 많아졌습니다. 매체의 다변화가 첫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세대는 집단생활을 좋아하지 않죠. 포스트코로나 시국에는 더욱더 소집단으로 움직입니다. 1인당 차지하는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에 밀집, 집단을 싫어하죠. 이러한 세대적 특징으로 인해 젊은 문인들의 유입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앞으로는 문단이 중년 이후 취미 생활로 하는 분들 위주로 굳어지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 끝으로, 코로나19 속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면.

“에포케(epoche)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통을 위한 ‘판단 중지’라고 할까요? 문학의 궁극은 삶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입니다. 사람이 곧 삶이지요. 잃고 또 잃어도 살아야 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삶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문학으로 깊어지고 문학으로 치유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치유라는 것 따로 있나요? 좋은 글을 읽는 일, 말을 줄이고 자신을 응시하는 일, 자신을 가만히 안아주는 일이지요.”

 

△ 김영 회장은

김영(63) 회장은 김제에서 태어나 김제 만경여고, 전북대 사범대학원을 졸업하고 만경여고 교사로 재직하다 2016년 명예퇴직했다. 교사로 재직하던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만경여고 은사였던 고(故) 천이두 문학평론가는 그의 대학 진학, 시인 등단이란 삶의 중요 순간마다 방향을 제시해준 인물이다.

그는 두리문학회장, 전북여류문학회장, 전북시인협회장, 김제예총 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눈 감아서 환한 세상> <다시 길눈 뜨다> <나비 편지> <수평에 들다> <파이디아> 등 시집과 <뜬 돌로 사는 일> <쥐코밥상> <잘 가요 어리광> 등 수필집이 있다.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전북여류문학상, 석운문화상, 두리문학상, 월간문학상, 석정촛불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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