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 수필가는 1943년 10월 5일, 전북 임실군 삼계면 삼계리 박사마을에서 아버지 김옥기와 어머니 이복남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나, 형의 유아 사망으로 일찌감치 집안의 장남이 되었다. 삼계초등학교, 오수중학교, 전주제일고등학교를 거처 전북대학교 사학과에서 공부하였다. ROTC 4기로 임관하여 전방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였고, 제대 후에는 해성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69년 서해방송 공채에 수석으로 합격하여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1980년 방송 통폐합으로 KBS로 옮겨 전주방송총국 편성부장을 역임했다.
선생의 본격적인 수필 쓰기는 서해방송 입사 후, 『밤의 여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다. 방송수필집 《밥의 여로》를 비롯하여 『호호 부인』, 『아름다운 도전』(2003),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2006), 『하여가 & 단심가』(2015), 『쌈지에서 지갑까지』(2017), 『하루살이의 꿈』(2019), 『지구촌 여행기』(2019) 등 16권의 수필집을 냈다.
특히, 1980년 《월간문학》에 「전화번호」라는 수필로 등단한 후, 선생은 수필에 대한 애정과 필력을 왕성하게 보여주었다. KBS에서 정년퇴직한 후에는 전북대 평생교육원,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등에서 수필 창작지도에 열정을 쏟았다. 많은 제자의 수필 첨삭지도와 각종 문예지의 수필 평(評)과 해설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온전히 수필 속에서 활짝 피어났다.
올해 1월, 김학 수필가의 부음은 큰 슬픔과 충격을 주었다. 망망대해에서 선장을 잃어버린 것처럼 동료와 제자들은 망연자실했다. 후학들은 그 슬픈 마음을 가다듬고 『전북수필』 92호(2021.4)와 『수필 세계』 (2021년 봄호)에 ‘김학 선생 추모 특집’을 마련하여 선생의 삶과 문학을 기렸다. 영호남수필문학협회 김정길 회장은 ‘낙락장송에 살포시 내려앉은 고고한 학의 모습으로 맞아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으며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자세로 정진하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겠다고 했다. 전북문인협회 박귀덕 감사는 ‘선생은 전북이 수필의 메카가 되도록 저변 확대에 이바지한 공이 크며, 문하생들에게 항상 칭찬과 격려로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자신만의 수필의 안경을 지닐 것을 강조하였다‘고 회고했다. 온글문학회 백봉기 회장은 ‘직장의 선배이고, 문단의 선배이기도 했던 선생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수필의 소재로 삼아 누에가 명주실을 뽑아내듯 쉽고, 읽게 좋게 글을 쓰셨다’라고 했다.
김학 선생은 곁눈질하지 않고 수필에만 전념하였다. 선생이 얼마나 수필에 애정을 가지고 생활했는가는 『수필아, 고맙다』라는 수필집에 잘 나와 있다.
“수필은 다정한 나의 친구요, 정신적 동반자다. 수필이 있기에 나는 늘 행복하다. 수필은 나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었다. 아둔한 내가 열한 권의 수필집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수필이 베풀어준 시혜다. 또 수필집을 출간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여러 가지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KBS에서 정년퇴직한 내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과 전주안골노인복지관에서 후배들을 모아 유능한 수필가를 양성할 수 있게 된 것도 수필이 마련해준 혜택이다. 수필은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나에게 기쁜 일만 제공해주고 있다.”
-「수필아, 고맙다」의 일부
오경옥 시인은 ‘선생의 수필 세계는 한 가정의 어른으로서의 자세, 사학자로서의 역사의식과 전통에 대한 온고지신, 방송인으로서의 다양한 매체를 통한 건강한 사회의 미담과 인간학, 여행에서 깨달은 높은 식견과 창의적인 발상과 비유로 승화된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라고 정리했다. 윤재천 중앙대 명예교수는 현실에 충실한 김학의 수필 감상 소회를 ‘떠돌며 추슬러 곧게 세우는 수도(修道)’라고 밝힌 바 있다. 항상 성찰하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일깨우면서 좋은 에너지를 쏟아놓은 선생의 수필을 그렇게 평가한 것이다.
선생이 갑작스럽게 영면(永眠)에 든 점은 문인들과 후배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지만, 선생의 주옥같은 글들은 그대로 남아 지혜와 영감, 성찰의 기쁨을 줄 것이다. 선생께서 자신과 후학들의 글을 소개했던 블로그 《김학-두루미 사랑방》은 지금도 선생을 뵙는 듯 온기가 있다. 특히, 「인생, 그 행복과 불행의 교차로」라는 수필은 긴 여운을 준다. 선생의 고희 때 자신에게 쓴 편지 형식의 수필인데, 삶의 전반을 회고하면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선생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등에 금불상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지. 그러나 그 금불상을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이들이 많아서 탈이긴 하지만 밀일세. 세상으로 눈을 돌려볼까? 면장, 군수, 도지사, 대통령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할 금불상이야. 지위의 높고 낮은 것은 불상의 크고 작은 것과 비유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 금불상을 평생 자신의 등에 싣고 다닐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아 걱정일세. 그 불상을 언젠가 내려놓아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면 좋으련만……. 부자에게는 돈이 금불상일 것이고, 문인에게는 문학이 금불상이 아닌가?“
-「인생, 그 행복과 불행의 교차로」의 일부
참고 : 안도(前 전북문인협회 회장)의 〈김학 수필가 자료〉
/송일섭 전북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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