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2-10-07 01:46 (Fri)
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

image
2022 전주대사습놀이

고종원년 서기 1864년 국가적인 행사로 막을 올렸던 전주대사습놀이는 임오군란(1882년 고종 19년), 동학혁명(1894년 고종 31년), 민비시해사건(1936년 고종 33년) 등 국가적인 대변란으로 인하여 열리지 못했던 다섯 차례를 제외하곤 35회에 걸쳐 대성황을 이루었던 민족의 대축제였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현실에는 그 어떤 것도 명맥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던지라 전주대사습놀이 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일본 초대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의 명령에 의해 강제폐쇄를 당했던 원각사와 때를 같이하여 전주대사습놀이도 서글픈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때가 1905년이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의 제물이 되어버린 전주대사습놀이는 이후 일제 36년 동안 사무친 한을 안고 기약 없는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고하고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지만, 안팎으로 형편은 어려웠고 그러한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자 나라에서는 정치, 문화, 사회의 개편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전통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문화재창조 운동도 활발히 추진하게 되는데 이러한 계기는 때마침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1975년 5월 전라북도 국악협회 총회에서는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추진위원회의 결성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고 박영선, 임종술, 송광섭 등 3인을 부활추진 대표로 선임한다. 선출된 추진대표들은 서울로 상경하여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 유기정에게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에 관한 협력을 당부하였고 당시 문화공보부 이규헌 차관에게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적 의의와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던바 이차관의 호의적인 협력을 약속받기에 이른다. 또한, 국회 이철승 부회장에게도 찾아가 그 뜻을 전했는데 이의장 역시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받음으로써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에 관한 관계기관의 협조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때부터 전주대사습놀이에 관한 확실한 고증을 얻기 위해 홍현식 등 학계 전문가와 관심 있는 학자들을 수차례 만나며 수개월 간의 동분서주하는 노력 끝에 문화공보부에 제출할 서류를 완성하기에 이르고 제출과 함께 역사적인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이 이루어진다. 

1905년 마지막 행사 이후 1975년 9월 22일은 부활 첫 대회이자 현대적인 모습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제1회 대회가 열리게 되는 감격스러운 날로 기록되었다. 70년 만의 부활이라 생소한 대회인 데다가 몇 안 되는 동호인들의 출연기금으로 마련한 순수 민간주도 대회였기 때문에 그 규모란 극히 작아 보였지만 판소리 명창부에만은 전국에서 17명의 대전자가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중단의 한을 곱씹으며 부활의 1975년과 더불어 48년 세월을 지켜낸 오늘. 다시금 코로나19 전염병의 어려운 펜데믹 시대도 이겨내고 꿋꿋하게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는 민족의 혼 전주대사습놀이. 2022년 8월 역사의 현장 전주에서 한민족 예술혼과 역사성을 담은 멋진 축제로 다시금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곧 개최될 전주대사습놀이의 감흥과 지난 부활의 감격을 함께 독자들과 만끽해 본다.

image
2022 전주대사습놀이

고종원년 서기 1864년 국가적인 행사로 막을 올렸던 전주대사습놀이는 임오군란(1882년 고종 19년), 동학혁명(1894년 고종 31년), 민비시해사건(1936년 고종 33년) 등 국가적인 대변란으로 인하여 열리지 못했던 다섯 차례를 제외하곤 35회에 걸쳐 대성황을 이루었던 민족의 대축제였다. 그러나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현실에는 그 어떤 것도 명맥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던지라 전주대사습놀이 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일본 초대 통감 이토오 히로부미의 명령에 의해 강제폐쇄를 당했던 원각사와 때를 같이하여 전주대사습놀이도 서글픈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때가 1905년이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의 제물이 되어버린 전주대사습놀이는 이후 일제 36년 동안 사무친 한을 안고 기약 없는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고하고 우리는 광복의 기쁨을 맞이했지만, 안팎으로 형편은 어려웠고 그러한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자 나라에서는 정치, 문화, 사회의 개편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전통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문화재창조 운동도 활발히 추진하게 되는데 이러한 계기는 때마침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1975년 5월 전라북도 국악협회 총회에서는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추진위원회의 결성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고 박영선, 임종술, 송광섭 등 3인을 부활추진 대표로 선임한다. 선출된 추진대표들은 서울로 상경하여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 유기정에게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에 관한 협력을 당부하였고 당시 문화공보부 이규헌 차관에게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적 의의와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던바 이차관의 호의적인 협력을 약속받기에 이른다. 또한, 국회 이철승 부회장에게도 찾아가 그 뜻을 전했는데 이의장 역시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받음으로써 전주대사습놀이 부활에 관한 관계기관의 협조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때부터 전주대사습놀이에 관한 확실한 고증을 얻기 위해 홍현식 등 학계 전문가와 관심 있는 학자들을 수차례 만나며 수개월 간의 동분서주하는 노력 끝에 문화공보부에 제출할 서류를 완성하기에 이르고 제출과 함께 역사적인 전주대사습놀이의 부활이 이루어진다. 

1905년 마지막 행사 이후 1975년 9월 22일은 부활 첫 대회이자 현대적인 모습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제1회 대회가 열리게 되는 감격스러운 날로 기록되었다. 70년 만의 부활이라 생소한 대회인 데다가 몇 안 되는 동호인들의 출연기금으로 마련한 순수 민간주도 대회였기 때문에 그 규모란 극히 작아 보였지만 판소리 명창부에만은 전국에서 17명의 대전자가 참여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중단의 한을 곱씹으며 부활의 1975년과 더불어 48년 세월을 지켜낸 오늘. 다시금 코로나19 전염병의 어려운 펜데믹 시대도 이겨내고 꿋꿋하게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는 민족의 혼 전주대사습놀이. 2022년 8월 역사의 현장 전주에서 한민족 예술혼과 역사성을 담은 멋진 축제로 다시금 거듭나기를 기대하며 곧 개최될 전주대사습놀이의 감흥과 지난 부활의 감격을 함께 독자들과 만끽해 본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