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의 원천은 금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하나라고 불리는 '변신'의 소설가 카프가가 당대에 나올 수 없는 소설이라 극찬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로부터 나왔다고 여긴다. 이 소설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고, 이 소설이 무엇을 지향했는지 다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배제하겠다.
한때는 시대의 아픔을 '워커 속에 핀 꽃다발' 같은 작업으로 작가의 가슴에서 들끓는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간장을 조리는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것 등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작가는 많이 성숙해진 것인지 설명적인 분노보다는 분노를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삶이 있으면 죽음도 꼭 동행해야만 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창작에 임하는 자세가 조금은 참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좋다. 이 모두 돈키호테와 산쵸, 그리고 로시난테를 깊어서 진지했던 마음으로 만난 덕분이리라.
조각이라는 인공물과 나뭇가지라는 자연물을 배치시키는 퍼포먼스적 작품도 그럴듯하고 삶과 죽음의 관계를 스스로 설정해 작품화시키는 것마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즉 여느 작가들처럼 '어떻게'라는 방법부터가 아니고 먼저 '무엇을'부터 심사숙고하고 뒤에 '어떻게'를 이어가는 태도가 바람직한 예술가의 길이라는 것을 그가 알아챈 것으로 여겨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깎아내려가는 조각가가 아니고 붙여 올라가는 소조가이기 때문에 작품마다 동으로 환치시켜 보관하는 것이 최상일 테지만, 아직 FRP와 혼합재료, 드라이 플라워 등을 사용해 표현 작업을 한다. 지금 그는 그리 젊은 나이가 아님에도 보존성보다는 실험정신에 더 충문한 것도 바람직하다. 나뭇가지나 말린 꽃 등 약품 처리로 보존성을 높였지만 그러면서도 기능면에서도 하자가 없으니 금상첨화다.
그러나 여기에서 작가 본인에게 쓸데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혹 있을까 봐 꼭 한 마디는 해야겠다. "창조는 항상 서툴다"는 피카소의 말이다. 물론 피카소의 말이 모두 금과옥조는 아니지만 이론으로 학습한 것이 아니라 쉴 틈 없는 작업의 연속에서 나온 말이니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세상에 존재한 일이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야말로 어디서도 본 듯하지 않으니 서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능, 흔히 말하는 기술은 그것을 연마하는 반복 과정에서 차차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전전긍긍한다거나 좌절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는 Big God이 아니고 다만 그분이 미처 못 만든 것을 찾아서 만드는 Small God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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