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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진양조를 만든 김성옥

가왕 송흥록 친누님의 남편이었던 김성옥(金成玉)은 정조 19년이던 1795년 충남 강경에서 출생하여 전라북도 여산에서 생활하며 활동하던 시대 명창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리에 타고난 신동이었지만 집안이 궁핍한 환경이어서 재능을 펴지 못할 어려운 사정이었다. 김성옥은 그러한 환경에 굴복지 않고 소리에 대한 열정을 높여갔는데 이른 14세에 계룡산으로 들어가 소리 공부를 하게 된다. 하늘도 그의 맘을 알았을까? 피나는 노력과 인내 끝에 입산한 지 10년이 되던 해 그는 득음대성(得音大成)하여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김성옥은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를 잘 불렀다. 하루는 전라감사의 부름을 받고 선화당에서 소리를 하게 되는데 청중은 그의 첫소리만으로도 감동하여 매력에 빠지게 된다. 김성옥의 맑고 아름다운 성음 그리고 풍성한 성량은 듣는 이로 하여금 탄복을 자아냈다. 저마다 “성대 제일인자의 명창”이란 극찬을 하게 되었고 그의 명성은 하늘을 치솟듯 올라갔다. 그러나 김성옥은 계룡산에서 수련할 때 굴속 냉골 방에서 10년 동안 기거하고 오랜 시간을 제대로 먹지 못한 관계로 몸은 쇠약해 있었고 외모는 병에 걸린 사람인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산군수의 생일연에 불려가 소리를 하는데 김성옥은 소리 도중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다리를 주체못해 쓰러지게 된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 내로라하는 명의를 불러 침도 맞고 약을 먹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판명된 병명은 학슬풍(鶴膝風). 마치 학의 다리처럼 가늘면서 무릎만 붉게 부어올라 고통이 심해, 마치 산 송장처럼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고약한 병이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결하려 했으나 애원하는 아내의 눈물과 설득으로 마음을 다시 잡는다. 등을 받쳐 겨우 밥을 먹었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그는 아들인 김정근에게 자신의 기량을 전승하며 소리에 대한 애정을 쏟는다. 이때 장단에 대해 특별한 고민도 하게 되는데 <진양조>라는 장단을 창안하여 사용하기에 이른다.

순조 22년이던 1822년 어느 날, 김성옥의 처남 송흥록과 송광록은 병문안 차 왔다가 고마움의 화답으로 부른 <진양조> 소리를 듣게 된다. 이때만 하더라도 판소리 중 가장 느린 장단은 <느린 중모리>로 한계가 있었다. 이보다 더 느리고 애처로운 장단인 <진양조>를 그 자리에서 듣게 된 송흥록은 흥분하여 감탄을 자아냈고 이에 김성옥은 송흥록에게 <진양조>를 더 다듬어 완성케하여 세상에 전해달라는 소원을 청한다.

그 후 가왕 송흥록에 의해 <진양조>의 완성은 최고에 이르렀고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가 어우러져 소리의 극치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김성옥은 천재의 빛을 다하지 못하고 순조 25년인 1825년 31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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