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는 끝났다. 그러나 잼버리 불똥은 새만금으로 옮겨붙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여권의 '새만금 공개 화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잼버리와 새만금,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유치 전후 과정, 역대 정권 모두 연관
전북도가 처음으로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은 2012년 3월이다. 당시 김완주 전북도지사는 2014년 한국잼버리를 치른 뒤 2023 세계잼버리를 유치한다는 구상이었다.
2015년 9월 한국스카우트연맹은 2023 세계잼버리 국내 후보지로 새만금을 선정했다. 당시 국내 경쟁지는 강원도 고성이었다.
이듬해인 2016년 7월 기획재정부는 국제행사심의위원회를 열고 2023 세계잼버리를 국제행사로 승인했다. 이는 올림픽, 월드컵처럼 세계잼버리도 국제행사로 '정부가 주도해 치르겠다'는 의미다. 특히 세계잼버리가 국제행사로 승인됨에 따라 한국스카우트연맹 산하 유치위원회는 해체되고, 외교부·법무부 등 정부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유치위원회가 출범해 국가 차원의 활동에 나섰다.
새만금이 세계잼버리 국내 후보지로 선정되고 국제행사로 승인받은 건 박근혜 정부(2013년 2월 25일부터 2017년 3월 10일) 때의 일이다.
그리고 2017년 8월 새만금은 폴란드 그단스크를 제치고 2023 세계잼버리 개최지로 최종 선정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3개월 후의 일이다.
2018년 11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른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2020년 7월 출범했다.
2023년 3월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 김윤덕 국회의원 공동위원장 체제에서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박보균 문체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추가 선임해 5인 체제로 개편됐다. 같은 달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 추대식에서 "새만금 잼버리를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새만금 잼버리 유치 과정부터 준비 과정까지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권과 김완주·송하진·김관영 전북도지사가 모두 연관돼 있다. 어느 한 부분을 딱 잘라,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른 한편으론 그 누구도 (파행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대회 전 경고음 수차례 무시
잼버리 부지는 매립 계획 수립과 사업비 협의 등 행정 절차가 수반되며 매립에만 4년(2018∼2022년)이 걸렸다. 2020년 1월 시작된 매립 공사는 2022년 4월이 돼서야 완료됐다. 매립 공사가 늦어진 탓에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공사와 화장실, 샤워실 등 상부시설 공사도 줄줄이 밀려 있었다. 대회 일주일 전까지도 잼버리 조직위는 공사 중이었다.
그렇다면 매립 후 1년 4개월 동안 정부와 자치단체는 무엇을 한 걸까. 대회 전 경고음은 여러 차례 울렸다.
"두고 보십쇼. 이 책임은 장관님께 나중에 역사가 물을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국회의원)
대회를 열 달 앞둔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원택 의원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에게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먼지 대책, 해충 방역 대책, 감염 대책 그리고 관광객 편의시설 대책을 점검해야 한다"며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이 대회가 정말 어려운 역경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3년 5월 국회 본회의에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나왔다.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인 김윤덕 의원은 5분 자유발언에서 "잼버리의 안전 문제 해결이 매우 시급하다. 대비가 완벽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8월 1일을 맞이한다면 잼버리가 공포와 트라우마로 남는 대회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경고에도 달라진 건 없었다. 현장을 등한시한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결과였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폭우에 따른 침수 대책에 대해 "배수로를 만들어 물 빠짐이 잘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폭염 대책에 대해서도 "영내 그늘시설 조성을 완료했고 체온을 낮출 수 있도록 안개 분사 시설을 설치했다"며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 지난달 25일까지도 야영지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있었고 덩굴 터널도 다 자라지 않은 상태였다.
잼버리 파행 '네 탓만'⋯새만금 족쇄 채우기
잼버리가 끝나자 여야는 잼버리 파행의 책임 소재를 가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잼버리 파행에 대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여야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여야 모두 진상 규명보다는 '정치적 희생양'을 찾는 데 급급하다.
특히 여권 일부 의원들은 '전북도가 잼버리를 핑계로 새만금 SOC 예산 빼먹기에 집중했다'는 식의 무분별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그리고 보수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쓰며 '전북도 악마화'에 가세했다. 온라인상에는 지역 비하, 혐오 댓글이 넘쳐났다.
전북도민들은 분노했다. 전북도의회와 14개 시군의회 등 정치계를 비롯해 의료계, 노인계, 종교계, 사회복지계 등 도내 기관·단체들은 '잼버리 파행 책임을 전북에 전가하지 말라'며 성명서를 줄지어 발표했다.
전북도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건 잼버리와 무관한 내년도 새만금 SOC 국가예산 무더기 삭감이었다. 내년도 정부예산안 가운데 새만금 SOC 예산의 부처 반영액은 6626억 원이었으나, 기획재정부 심사 과정에서 78% 삭감돼 1479억 원만 반영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새만금 빅피처를 명분으로 새만금 기본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국토교통부와 새만금개발청에 지시했다.
한술 더 떠 국토부는 예타를 통과한 새만금 SOC 사업에 대한 적정성을 재검토하겠다며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사업 등을 올 스톱 시켰다. 국토부는 지난달 29일 "새만금 잼버리 이후 새만금 SOC 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공항, 철도, 도로 등 새만금 SOC 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 균형발전정책 효과성 등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자체 점검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새만금 SOC 예산 삭감에 이은 '명분 없는' 정치적 조치였다.
잼버리 파행에 대한 정부의 새만금 SOC 예산 삭감, 새만금 기본계획 재수립 계획 발표 이후 전북도민들은 머리에 띠를 둘렀고 정치인들은 머리를 깎았다. 대외 투쟁도 본격화됐다.
전북도의원, 전북 국회의원들은 삭발 투쟁에 나섰다. 일부는 단식 투쟁도 병행했다. 지난 7일에는 전북도민 2000여 명이 여의도에서 윤석열 정권의 새만금 SOC 예산 삭감을 규탄하는 대규모 상경 집회를 벌였다. 전북도민 수천 명이 국회 본관에 집결해 지역 차별 행태에 저항한 것은 2011년 4월 LH 사태 이후 12년 만이었다.
지난 18일부터는 감사원의 잼버리 파행 현장감사가 시작됐다. 감사는 두 달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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