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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소망이 현실로 치환되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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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씨

강당에 들어선 학생들은 모두 들뜬 분위기였다. 2019년 10월의 첫날, 김제 지평선고등학교에서 펼쳐진 폴란드 밴드 야누스 프루시놉스키 콤파니아의 ‘찾아가는 소리축제’. 늦더위보다 더 뜨겁고 수준 높은 연주, 관객들의 활짝 열린 마음, 그리고 공연을 유치한 학교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원. 이건, 공연의 성공을 위한 최적의 요건들이었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2015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음악을 학생들에게 전해주려는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교육청의 도움도 큰 몫을 했던 것으로 안다. ‘공연’이란 티켓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문화 콘텐츠이지만, 공공 재정의 지원을 받는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언제나 문화 복지 차원의 기획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탄탄해졌다. 종종 일반인들을 위한 무대도 마련하며 새로운 음악을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자임했다.

축제 측이 월드 뮤직에 점점 더 관심을 기울인 것도 기획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힘이 됐다. 오늘날 월드 뮤직은 확고한 세계적 흐름이다. 제도권에서 군림해온 음악들에 비해 월드 뮤직은 삶을 날것 그대로 담아낼 때가 많다. 이는, 제3세계의 문화적 가치를 조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한다. ‘찾아가는 소리축제’가 낯선 음악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음악에도 우리와 같은 서사와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했다.

대다수의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해설이 있는 콘서트’의 형식을 취했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는 문화의 음악이었기에, 그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흐름에 대한 인식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됐을 것이다. 아울러, 영미권에서 탄생해 세계화된 경우보다 융복합적인 음악을 자주 담아냈다. 그래서 제작진은 통시적이고도 수평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했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만큼 준비 단계부터 많은 이들의 노력이 요구되는 공연도 드물었다. 상당수는 연주를 위해 마련되지 않은 공간을 새롭게 무대로 꾸며 진행됐다. 이젠 전국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공연이 종종 벌어지지만,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접근의 공연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선구자적 가치를 지닌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하드웨어의 탄탄한 운영 능력과 소신 있는 프로그래밍이 병행되지 않으면 좋은 연출을 꾀할 수 없다.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수백 년의 세월을 응축한 변방의 어느 음악이 문득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그 가치와 의미가 직관적으로 전해지는 독특한 대화의 장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감동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서두에서 언급한 공연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진행자로 힘을 보태며 소중한 추억을 하나 얻었다. 공연이 끝난 뒤, 음악의 꿈을 꾸던 한 학생이 찾아와 예정에 없던 진로상담을 하게 됐다. 햇살이 반쯤 들어오던 강당 한구석, 그 햇살보다 더 화사했던 학생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에서 위로와 공감을 얻을 것이다. 

2023년에는 칠레에서 온 민속 앙상블 트란스아틀란티코와 함께 전북 고창을 찾았다. 해학의 음악으로 충만한 이들이 오랜 세월 쌓인 고난과 애환, 환희와 기쁨을 우리 학생들 앞에 ‘실체화’된 모습으로 와르르 쏟아냈다. 학생들은 뜨거운 갈채와 춤사위로, 어쩌면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이국의 벗들을 환대했다. 희미하고 막연했던 소망이 눈앞의 현실로 치환되는 소통과 체험의 현장. ‘찾아가는 소리축제’는, 그렇게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

김현준 음악평론가는 

1997년부터 음악 관련 방송, 공연, 워크숍 등을 기획 및 제작했다. 『김현준의 재즈파일』(1997), 『김현준의 재즈노트』(2004), 『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2022)』를 출간했고, 지난 수년간 ‘찾아가는 소리축제’의 진행을 맡았다. 현재 음악평론가, 공연기획자,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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