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평 시의 밭을 경작하고 있는 농부, 최재선 시인이 8번째 시집<낮잠 들기 좋은 날>(인간과문학사)을 펴냈다.
본디 시인에게는 삶 속에서의 경험과 사유가 중요하지만, 최 시인의 <낮잠 들기 좋은 날>은 시인 본인이 직접 체험한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시인 본인의 이성(理性)과 가치관, 윤리 등이 시적 화자의 체험을 확장하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최 시인의 판단 때문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105편의 시가 담겨있다.
시집에서 작가는 본인만의 고유한 시선을 통해 일상의 만남을 유희와 황홀경으로 바꿔, 그만의 단단한 시어를 구축하고 있다.
“뱃길 없는 섬/ 이마 벗어진 무덤가 할미꽃/ 바닷바람에 허리 괜찮을까요?/ 신호등 없는 마을의 카페/ 문 여닫는 그림자 없어/ 오늘 불 꺼지지 않을까요?/ 어느 시인의 외딴 골방/ 쓰다 만 원고지 빈칸에/ 봄볕 발자국 남기고 갈까요?”(시 ‘문안하다’ 부분)
“붕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붕어를 낚는 낚시꾼도 낚이는 붕어도/ 운암호에 떠 있는 붕어섬도 아니다/ 추위의 강에서 대물은 아니지만/ 그저 그런 크기의 붕어를 건져 올린/ 전주노동청 앞 붕어빵 장수이다”(시 ‘봄이 되면 붕어빵 장수는 무얼 할까’ 부분)
“밥은 끼니 이전에 인사다/ 밥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건/ 그의 한 끼 미지근하지 않은지/ 삶의 온도를 문안하는 거다/ 삶 깨지락깨지락하지 않고/ 밥심으로 차지게 뜸 들어/ 바람에 끈끈하게 버티는지/ 안녕에 관해 안부하는 거다”(시 ‘밥’ 부분)
가볍게 들여다본 시상 속에도 느껴지 듯, 최 시인의 시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체험에 포개져 정서와 사상의 깊이와 진정성을 견인하고 있음이 전해진다.
권대근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시평을 통해 이번 시집을 ‘타인의 고통에 대한 위로, 내시경으로 본 객체의 내부’라고 정의했다.
권 교수는 “최재선의 시는 늘 변화의 도정에 있고 자신의 존재론적 위치를 타자의 환경에 맞춰 이동시키고 있어 시 정신이 빛난다”며 “그는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진화되지 않고, 개선되지 않는 불편한 현실을 잘 조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하찮은 것에서 고귀한 것에 이르기까지 시인 나름의 방식으로 각각이 지닌 아픔의 언어를 잘 듣고자 한다”며 “최재선은 타인의 고통에 위로를 보내면서, 인도주의를 그의 시에 구축하는 구원의 시인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재선 시인은 수필가 활동을 비롯해 한일장신대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저서로는 <잠의 뿌리>, <마른 풀잎>, <내 맘 어딘가의 그대에게>, <첫눈의 끝말>, <그대 강같이 흘러줄 이 있는가>, <문안하라>, <단 하나만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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