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7 10:14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타향에서] '낙후전북'은 누가 살리나? - 김대곤

전북 정무부지사 시절의 얘기. 삼성전자가 백색가전 생산라인을 몽땅 광주로 이전키로 했다. 도청의 한 간부가 삼성의 임원에게 말했다.??생산라인 한개쯤은 전북으로 와도 되지 않겠습니까?. 대답이 일품이었다. 전북에서 대통령 나왔습니까?. 전북사람들에겐 영 입맛 쓴 대답.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한 전북에 당시의 호남대통령도 약효가 없었다는 얘기. 호남대통령이 아니라 전남대통령이라는 푸념이 나왔다.그 전은 따질 필요도 없고, 한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호남대통령 시절을 놓고도 말이 많다. 광주전남과 달리 전북은 그 때도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 전북인의 비원(悲願)으로까지격상된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바로 그 때 2년 동안이나 중지됐었다는 것. 전국최하위 수준의 경제상황과 인구감소는 그 때에도 변함없었다는 것. 이러니 좋아서 나를 찍었나? 이회창씨 찍을 수 없어 찍었지? 하는 영남대통령의 배신은 얘기할 필요조차 못느낀다.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대통령을 두 번이나 내 손으로 뽑았음에도 전북은 항상 뒷전이라니. 내 손으로 만든 10년 동안에 지역발전은 커녕 낙후만 가속화됐다면 억장이 무너져도 열 번은 무너졌겠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니 전북인은 실의와 체념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이해된다. 소극적이고 패배주의에 젖어 발전을 추구할 자세가 돼 있지 않다는 비판이 공허하게 들린다. 감초처럼 끼는 게 책임론, 도대체 누구탓이야? 고향에서는 출향 인사들중 소위 출세했다는 사람들의 책임이 강조된다. 고향이 낙후의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을 때에도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은 특히 호남대통령 시절출세를 했다. 일부 인사들은 이들 출세자들에게 고향를 위해 한 일이 뭐냐고 호통 친다. 자신들의 입신양명에만 신경 썼을 뿐이라는 엄중한 질책. 요직에 앉았던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고향이 이처럼 황폐화되진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 진실 여부는 별개로 결과만 놓고 보면 유구무언(有口無言), 그 시절 기자에서 대통령비서관으로 발탁된 나도 그런 부류에 해당된다. 최근 어느 모임에서의 일. 화제는 대선, 그중에서도 전북의 아들이 고향에서 전폭적 지지를 못받는 데로 모아졌다. 고향에서 온 사람들은 그가 지역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어 크게 기대하지 않는 탓이라고 분석했다. 정권재창출이 안돼도 요즘보다 못하게야 되겠느냐는 놀랄만한 정서도 전했다. 출세자들에 대한 비판도 심하다고 전했다. 전북은 잘 하는데, 서울에서의 노력이 적어 발전 못했다고 그게 맞는 말이야? 반발하는 의견도 나왔다.책임 떠넘기기 식의 대화는 실익이 적다. 이런 식이면 백색가전이고 흑색가전이고 전북에 올 이유는 당분간 없겠다. 지금보다 더 못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라면, 분명히 더 나빠질 미래를 기다리는 수밖에.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신문 칼럼 한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내게 하는 소리 같다. 무슨 혁신을 시도하면 일이 되게끔 돕기보다는 그게 왜 안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천재적인 사람들이 전북엔 너무 많다. 이런 퇴영적인 풍토를 깨지 않고선. 내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누가 내 맘처럼 움직여줄까? 그래도 남보다는 내 새끼가 낫다는 게 정설이다. 불평에 앞서 내 주위 사람을 위해주고 키워주는 게 미래를 대비하는 태도가 아닐까? /김대곤(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7.09.13 23:02

[타향에서] 지방정부와 경영마인드 - 이상직

2006년 중앙일보는 77개 일반시중에서 재정규모와 자립도에서 평균 수준인 전주시와 비슷한 규모의 GS홈쇼핑을 비교 분석한 적이 있다. 공공복리를 중시하는 전주시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GS홈쇼핑을 평면 비교할 수 없지만, 지방정부의 효율성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사였는데,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전주시의 신용등급을 B등급으로 평가했다. 한마디로 주식회사 전주시는 경영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 전주시는 순자산 2조원에 채무가 2천억원으로 부채비율이 10%였고, 유동부채에 대한 현금비율은 620%에 달했다. 사업의 성격상 다른 업종보다 현금비율이 높은 GS홈쇼핑이 51%였던 것과 비교하여, 필요이상으로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였다. 전주시가 대단히 비효율적이라고 진단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였다. 일본 능률협회는 매년 9개의 우수기업을 선정하는데, 1991년에는 작은 지방자치단체인 이즈모出雲시가 여기에 선정된 적이 있다. 이즈모시가 소니, 혼다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사실 그 해답은 금융 전문가인 이와쿠니 데즌岩國哲人도 시장이 가지고 있었다. 이와쿠니는 30년간 닛코日興증권, 모건투자은행, 메릴린치사 등 금융업을 바탕으로 경영인의 길을 걸어왔고, 시장이 되기 직전까지도 그는 미국 메릴닌치사의 수석부회장 겸 일본 담당 책임자였다. 그런 이와쿠니의 경영능력이 이즈모시를 경쟁력 있는 도시로 변모시킨 것이다. (그 후 일본은 기업인 등 민간 전문가에게 지방정부를 맡기는 것이 지역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인식이 높아졌다고 한다.) 카지노로 유명한 강원랜드는 1998년 설립 이래 누적수익률이 1조 2천억원(2005년말 기준)으로, 한국 100대 기업 중 52위에 선정될 정도로 일류기업이 되었다. 현재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이 약 5조원에 달하고 있다. 납입자본금의 51%를 강원도개발공사,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 영월군 등 공공부문에서, 49%를 민간부문에서 담당하였는데, 강원랜드를 통해 1조 7천억원 이상의 재정이 마련되고, 그 외에도 지역경제에 대한 직?간접적인 효과가 대략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고 한다. 직원 3천여명 중 절반 이상이 지역주민들로 고용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카지노의 독점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지만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투자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 대표적인 사례임은 분명하다.필자는 한때 대한통운을 전라북도가 인수하는 구상을 한 바 있다. 대한통운은 법정관리 상태에서도 1조원 이상의 매출과 6백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물류기업이다. 필자의 구상은 전라북도, 전주시, 군산시 등 공공부문과 지방은행, 지역연고 기업 등 민간부문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대한통운을 인수한 후, 물류의 보고인 새만금에 전략적 물류기지를 만들어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고용을 창출하자는 취지였다. 여러 제약과 경영리스크에 대한 반론을 들었는데, 제약을 풀어 가는 것이 행정적?정치적 능력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리스크를 헷징하는 수단은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고 안정장치를 만드는 것은 투자시장에서 일반화 되어있다. 인수가 아니더라도 도내 기업이나 로열티가 있는 연고기업의 경영능력과 지방정부의 여유자금을 활용하여 합작회사를 신규로 설립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강원랜드를 통해 지방정부의 재정이 충실해지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사례를 보지 않았는가. 무엇보다도 필자는 지방정부 내부에 투자 및 경영마인드를 함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을 유치하는 전통적인 방법 외에도 지역을 특화시킬 수 있는 산업에 민관이 합작투자 하여, 고용을 창출함은 물론 증권시장을 통하여 배당 및 자본이득을 취득하는 선진국의 트렌드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비전과 경영마인드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노력하는 지방정부의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이상직(KIC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9.06 23:02

[타향에서] 사람냄새 나는 재래시장 살아 났으면 - 정창덕

언젠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길건너에 하나씩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할인마트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참 편리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어머니를 따라서 시장에 가는 것이 하나의 기쁨이던 필자의 어린시절이 떠오르면서 가슴 한구석이 괜시리 뭉클해 졌다. 옛날의 시장, 즉, 재래시장엔 정이 있었다. 재래시장은 단순히 시장을 넘어서 마을사람들의 만남의 장이였으며 정보의 공유지였다. 예전의 시장은 시장이상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던 것이었다. 산업자원부에서는 재래시장을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고유의 전통적인 시장을 말하는 것으로 통상 근대적 유통시설이 개발되기 이전인 1980년 이전에 개설된 시장이거나 시설이 노후화 하여 재개발을 필요로 하는 공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재래시장은 아직도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현재 재래시장의 활성화는 각 지자체의 큰 사안중에 하나이다. 필자는 재래시장의 활성화 방안을 외국의 사례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우선 현재 재래시장에 문제점은 무엇일까? 시장시설의 낙후와 열악한 환경, 자본의 영세성과 관리 노하우 부족, 전근대적 상거래 질서와 대 고객 서비스 결여, 유통경로상의 문제점, 마켓팅능력의 부족, 개발주체의 모호성등이 현재 재래시장의 가장 큰 문제이다. 이건 부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의 재래시장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골목형 재래시장 구조를 가지고 있다.일본의 재래시장은 각 정문마다 저렴한 공영주차장을 설치하여 이용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또한 관광시설, 복지시설을 재래시장내에 입주시킴으로써 소비자들을 직접적으로 유인하고 있으며 공영시장 운영상인에게 나라에서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해주고 있으며 가격정찰제의 실시로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나고야의 유교중앙수산시장은 대형 슈퍼로 인해 손님들이 줄자 신선함을 자랑하기 위한 새벽시장과유비쿼터스마케팅기법의 첨단시설을 바탕으로 특화시켰다. 또한 영업대상을 소매에서 도매로 바꾸었다. 또한 나고야의 오오키 시장은 재래시장의 고객층은 고령층이 다수라 생각하고 고령층에 맞춘 타켓 마켓팅을 하고 있다.고령자가 안심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장, 노인층과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관음절이라는 사찰과 노인 복지시설을 시장내 입주시켰다. 사찰방문객이 곧 시장의 고객이 되는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령자를 위한 택배서비스, 노인의 재래시장 아르바이트 사업,고령자 의견 수렴을 위한 간담회를 실시하는 등 재래시장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그저 재래시장의 외부만 바꿔주고 있는 실정이다.이를 넘어서 주차공간과 편의성 확충, 문화, 관광 상품 연계, 직거래 및 공급처 지정방식 구축, 특화시장 조성, 시장운영 및 시장관리, 사후관리의 기능까지 갖춘 종합 안내데스크 설립등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뭔가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편의성 향상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우리들의 노력으로 사람냄새가 나고 정이 넘쳐나던 재래시장이 활성화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맺는다./정창덕(고려대교수,한국유비쿼터스학회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8.30 23:02

[타향에서] 전북을 의료ㆍ관광서비스산업 허브로 - 유희열

지난해 우리나라의 서비스수지 적자는 187억 6,300만 달러로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독일과 일본, 한국이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서비스산업 경쟁력이 취약해 서비스수지 적자를 크게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금융·의료·교육·관광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해 이 부문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고 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서비스업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는 서비스 경제화가 심화되고 있고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교육, 의료, 여행 등 고급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증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은 외형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했음에도 제조업에 비해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실이다. 서비스부문의 급속한 고용 확대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는 상당히 부진하며, 소비자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제조업과의 연관 관계가 부족해 제조업의 생산성 확대가 서비스업으로 연결되는 적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부족하다는 것도 커다란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산업의 문제들을 특별히 전북과 관련하여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전북은 3가지 핵심 서비스산업인 금융, 의료, 관광 중에서 의료와 관광분야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서비스업을 집중 육성해 지역의 안정적 성장기반을 구축하고 지역밀착형 고용서비스 제공 등 지방정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일자리 창출을 늘릴 수 있다. 사회 서비스업인 의료분야는 중장기적으로 대규모 종합병원 및 의료시설 등을 유치해 관광, 실버산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태국과 같은 의료허브를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전북의 관광자원과 의료 서비스를 합쳐 의료관광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아시아 의료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지난해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인도·중동지역 등 외국인 환자 15만명이 싱가포르 의료서비스를 찾아 몰려왔고 외국인 환자 유치로 5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민간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각종 규제들을 과감히 없애고 이들 병원은 외국인 환자 유치에 사활을 건다. 환자가 오면 담당 직원이 공항에 마중을 나가고, 치료가 길어지면 체류 허가 기간도 병원이 알아서 연장시킨다. 모든 의료서비스는 ‘Five Star’ 호텔 기준으로 제공되며, 입원은 ‘체크 인’이고, 환자 불편 신고센터가 아니라 ‘고객 서비스’센터다. 관광서비스업은 권역별 관광자원 개발과 신규 관광지(새만금) 개발 등을 통해 전북의 대외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내 자금을 유치하여 해외 관광 수요를 대체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국내로 유인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문제점은 관광객의 수는 증가하고 있으나 그들이 국내에서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높은 물가 때문인데 지방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관광서비스의 물가 안정과 중?저가로 사용할 수 있는 호텔 등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외국 관광객들의 인식을 하루빨리 바꿔주어야만 한다. 특별히 새만금의 접근성과 풍부한 토지를 활용한 관광거점 확보가 중요하고 중국과 일본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전북만의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전라북도의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전북의 강점을 활용하여 태국과 싱가포르의 의료 허브를 뛰어넘는 의료서비스사업과 새만금을 개발하여 관광서비스사업의 중심지로 열 수 있다면 동북아의 하나의 서비스 거점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유희열(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07.08.23 23:02

[타향에서] '청정(淸淨) 부안' 은 누가 지키나? - 김대곤

한 장의 신문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7일 부안군 위도 주민들이 체육행사를 열어 방폐장 유치 갈등 극복을 위한 주민들끼리의 화합의 장을 마련』했다는 것.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방폐장 유치를 놓고 그렇게 까지 싸웠어야 했을까? 모두 고장을 위해서 한 일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부안은, 나아가 전북은 게도 구럭도 다 잃은 격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껏 우리만 속앓이 하고 있지, 다른 사람들에겐 이미 잊혀진 사건이기도 하다. 전북 정무부지사로 있을 때 김종규 당시 부안군수가 방폐장 유치를 선언했다. 양성자가속기와 함께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그리고 3천억원이 부록으로 달려 있었다. 서울에서 만난 청와대 모 수석은 『전북은 이제까지 손가락 하나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이제는 앞으로 달릴 일만 남았다. 누워만 있다 달리다 보면 우드득 소리는 나겠지만』이라고 말했다. 방사선 관련 업체의 한 임원은 『익산의 양성자가속기와 정읍의 방사선과학연구소가 연계돼 RT산업은 전북에서 오지 말래도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방폐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였다.결과는 참담했다. 부안은 격렬한 반대시위에 휩쓸렸고, 민주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원자력발전에 쓰인 폐기물을 보관하는 곳이 그토록 위험한 시설이라면,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이미 죽음의 도시가 됐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 자리도 없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들은 얘기. 부안을 다녀온 교육부총리는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이 저도 이담에 시집가서 애 낳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해 할 말을 잊었다』고 했다.전국에서 모인 전경들은 부안 식당들이 식사제공을 거부하는 바람에 김제 등지에서 밥을 날라다 먹었다. 식사마저 어렵자 이들은 『전북은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웨고 다녔다. 한 재경 인사는 『부안이 그렇다고 하면 됐지, 왜 전라북도까지 도맷금으로 같이 넘어가나』고 한탄했다. 전경들 뿐이 아니었다. 관계 장관회의에서 일부 장관들은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했다.부안군수는 반대자들의 린치로 죽음의 문턱에서 탈출했다. 그것도 사찰 경내에서. 그후 군민들은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반대로 방폐장 유치를 거부했다. 그리고 김종규 군수는 다음 선거에서 낙선, 방폐장 유치 주장에 대한 징벌을 확실히 받았다. 이후 방폐장은 유치 희망지의 주민투표 득표율로 결정됐다. 군산이 노력 했지만, 방폐장은 주민들이 더 높은 지지를 보낸 경주로 넘어갔다. 이후 경주에 투입될 자금이 4조여원, 전라북도 1년 예산을 훨씬 넘는 거금이 인구 10만여명의 경주에 쏟아지게 된 것이다. 부안은 이런 호조건을 거부했다. 눈 앞의 이익을 버리고, 아니 이익은 커녕 온갖 손해를 무릅쓰고 온몸을 던져 「청정(淸淨) 부안」을 지키려 했다.극단은 극단을 부르던가. 이런 군민들의 의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존중돼야 하며,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라도 훼손하는 어떤 시설도 들어가선 안된다는 주장도 들린다. 새만금전시관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그 자리는 원래대로 나무 몇그루 있는 동산으로 복원해줘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부안의 자연을 이제는 외부인이 지켜주겠다는 말인가? 오기 힘든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과 함께 위도 주민체육대회에 유치반대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다는 보도에서 보듯, 아직도 주민들간의 갈등이 풀리지 않았다는 현실 사이에서, 이래저래 재경 전북도민의 한사람은 착잡하다.

  • 오피니언
  • 기타
  • 2007.08.16 23:02

[타향에서] 제주도보다 더 먼 전주 - 이상직

1993년 늦여름 SBS 주병진쇼에 육관도사라 불리는 손석우씨가 나와 북한 김일성이 1994년 9월 14일 이전에 죽게 될 것이라 하였다.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사망하였다. 그 뒤에도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모묘와 DJ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이야기로 일반에 많이 회자된 것으로 기억된다. 풍수지리가 혹은 예언가로 불리던 육관의 1993년 저서 터에는 웅비하는 서해안 시대와 전주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2천 년대에는 서해안 시대가 열릴 것이고, 이러한 서해안 시대의 서막을 여는 곳, 서해의 중심도시로 부상하여 장차 세계적인 규모의 도시로 웅비할 곳으로 전주를 꼽은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전주의 현실은 예언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 지식정보화시대에 웬 풍수, 예언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하나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서해안 시대가 열렸고 그 중심이 전주이다.라는 글귀가 여전히 가슴속에 불씨로 남아 있는 것은 이 명제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이자 소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말했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전북인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꿈이자 비전이기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전주 더 나아가 전라북도의 가치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육관의 예언을 무색하게 한 주요한 이유로 교통과 물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2004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은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할 계획으로 제주 서귀포와 전주를 후보지로 놓고 고심하다 결국 서귀포로 결정했다. 전주보다 서귀포가 서울에서 더 가깝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거리로 보면 분명 서귀포가 훨씬 멀지만 시간 개념으로는 더 가깝다는 것이다. 어느덧 전주는 서울에서 제주나 부산보다 더 먼 도시가 되어버렸다. 전라북도와 전주시가 기업유치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기업인 출신의 행정가를 임명하는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도 교통?물류의 사각지대라는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전라북도는 도로, 공항, 항만 같은 인프라 투자에서 소외당해 왔다. 이제는 새로운 기업이나 산업이 이전하려 해도 인프라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는 이유로 기피당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전라북도와 전주의 경제발전 키워드는 교통?물류 문제의 해결에 있다고 본다. 필자는 특히 하늘길인 공항을 이야기하고 싶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언젠가 땅의 크기에 생각의 크기로 맞서자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공항하나 없는 전라북도주민의 상상력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외기업을 유치하는데도 필수조건이 공항이 아닌가. 참여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한 공항건설은 사업성 부족이라는 이유로 유보상태인데, 전북민항 취항을 통해 항공수요를 확인한 후 공항 착공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수요가 없어 공항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거꾸로 공항이 없기 때문에 발전하지 않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전라북도는 문화, 음식, 스키, 온천, 명산 등 해외관광객 특히 중국인들을 용이하게 유치할 콘텐츠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전주의 연 주민소득이 1만달러를 갖 상회하는데 비해 울산은 3만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육관의 예언이 틀린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연착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상직(KIC 부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8.09 23:02

[타향에서] 유비쿼터스 강국으로 가는 한국 - 정창덕

지난 7월 5일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투표를 앞두고 평창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평창이 내세운 장점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IT(정보기술) 기반의 최초의 유비쿼터스(Ubiquitous) 올림픽이었다. 결과는 많이 아쉬웠지만 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IT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고 샌드위치라는 말들을 자주 한다. 일본을 쫓고 중국에 쫓기는 입장을 놓고 한 재벌총수가 한 말이다. 현재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장점인 IT 기술도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의 우수한 IT인재들은 해외로 나가고 있으며 인도등의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유비쿼터스는 이러한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을뿐만 아니라 전세계리더가 될 수 있는 기술이다. 신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유비크라는 라틴어에서부터 유래된 유비쿼터스는 1988년 제록스에서 근무하던 마크 와이저가 처음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시초가 되었고 1999년 일본에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라는 개념으로 재정립한것이 유비쿼터스 확산의 계기가 되었다. 유비쿼터스라는 단어는, 도처에 널려있다,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비쿼터스는 조용함(Calm),컴퓨팅(Computing),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콘텐츠(Contents),접속(Communication)의 5C와 누구나(Anyone),어디서나(Anywhere), 시간에관계없이(Anytime)의 3A를 지향하고 있다. 즉, 컴퓨터가 인간이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공기처럼 도처에 널려있고 이를 통해 사물의 정보와 인간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 받게 되는 것이다. 유비쿼터스의 5대 핵심기술로는 현재 많은 화두가 되고 있는 전자태그(RFID), 모바일(MOBILE, )센서, 인공지능, 톰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보여준 증강현실(Argument Reality))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유비쿼터스는 아직은 생소하고 낯선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미 유비쿼터스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생활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DMB라는 서비스를 통해 핸드폰으로 TV를 보고 있으며, 영상통화폰으로 많이 알려진 HSDPA/WCDMA 서비스 가입자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인터넷으로 TV를 볼 수 있는 IPTV도 현재 초기단계이지긴 하지만 조금씩 보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서비스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서비스들은 정부의 U-IT839라는 정책을 기반으로 우리의 생활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리더 도약, 유비쿼터스 사회로 가는 원동력이라는 목표하에 정부는 U-IT839 정책을 통해 유비쿼터스 확산에 힘쓰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통해 상용화 촉진과 해외진출의 본격화, 선진국 추격형의 발전모델에서 탈피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IT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부만 노력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뿐만 아니라 많은 연구기관, 교육기관,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뭉친다면 기대에서 현실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IT기술과 온 국민의 관심, 정부의 정책적 지원등을 활용하여 유비쿼터스를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유비쿼터스의 리더가 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맺는다. /정창덕(고려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한국 유비쿼터스학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8.02 23:02

[타향에서] 전북, 제2의 하이닉스가 될 것인가? - 유희열

황금 물결을 꿈꾸는 이천의 들판이 눈앞에 펼쳐지고 여름을 한층 아름답게 하는 녹음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체험의 시간과 함께 주어졌다. 7월 초에 짧은 방문이었지만 7개 정부출연연구소 임직원들과 함께 하이닉스반도체 이천 공장으로 연찬회를 다녀왔다. 최근 우리나라 산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로 기적과 같은 부활의 신화를 쓰고 있는 현장 방문은 필자에게 아직도 큰 여운으로 남아있다. 지난 2001년 세계 반도체 D램 가격의 유례 없는 대폭락으로 반도체 업계는 최악의 불황이 시작되고, IMF로 직격탄을 맞은 한국의 기업은 다시 이어날 힘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1999년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빅딜로 탄생한 하이닉스는 당시 15조 8,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고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그 당시의 하이닉스 주가는 주당 130원으로 커피 한잔도 마실 수 없는 가치였다. 생계를 걱정하는 직원들에게는 눈물겨운 시간이었다. 그 후 길지만 한 기업이 재생하기엔 짧은 시간인 4년여의 회생의 시간을 두고 기적처럼 다시 일어나 2003년 3분기부터 14분기 연속 흑자행진으로 지난해에는 영업이익을 8,580억원까지 올리는 성장을 하였다. 세계 D램 업계 2위, 세계 낸드 플래시메모리 업계순위 3위, 2006년 세계 반도체 업계 점유율 7위라는 참으로 경이로운 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현재 하이닉스의 주가는 40,000원으로 2001년 주가보다 300배이상 증가하였다.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매년 수조원의 투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 당시 하이닉스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회생이 불가능 하기에 매각해야 한다고 진단을 내렸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속에서 위기에 몰렸던 그들이 다시 세계 정상의 대열에 올라서기까지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하이닉스가 부활한 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별히 고향 전북의 발전을 생각하는 필자에게 강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CEO의 강력한 리더쉽을 바탕으로 한 맥의 경영과 구체적인 목표의식그리고 노사의 목표를 향한 완벽한 협력이었다.특히 최진석 부사장 (당시 전무)은 강력한 리더쉽으로 할 수 있다 하는 정신과 투자 없이도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직원들에게 신바람의 열기를 불어 넣어주고 회사를 이끌었다. 맥의 경영으로 문제의 본질을 제조와 연구로 설정하고 제조본부는 그 줄기를 양질의 제품을 최고로 많이 만드는 일로 정하고 연구소는 최고의 제품을 최고로 빨리 만드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였다. 또한, 구체적인 회사의 목표는 반드시 숫자로 표현하고 결과를 숫자로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사활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노사가 일심동체가 되어서 회사에서 목표를 정해주면 근로자들은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하였기에 하이닉스는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빈약한 사회 인프라를 가진 전라북도이지만 필자는 과거의 하이닉스 상황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우선 CEO의 강력한 리더쉽측면에서 현 김완주 도지사는 식품, 부품소재, 관광을 미래성장동력 산업으로 정하고 이를 추진하는등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한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으로 맥의 경영으로서 첫 번째로 뛰어난 기업 인프라 구축이다. 계획된 혁신도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혁신도시와 새만금을 아우를 수 있는 KTX역이 조속히 설정돼야 하고 지역 공항이 건설되어야 한다. 우수한 교육시설과 타국인, 타지인들에게 개방적인 매력적인 지역이 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두 번째로 식품과 소재등 특화분야를 선정하여 우수한 기술과 인력을 양성하고 확보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는 숫자로 표현하여 전라북도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마일스톤을 제시해야 한다. 노사문제에 있어서도 전라북도에서 기업을 하면 노사문제가 거의 없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노사가 화합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준비된다면 전라북도는 하이닉스가 재도약한것처럼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어 21세기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지역으로 성장할 것이다.역사속에서 한 기업이 사라졌다가 다시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단 한번도 화려한 불빛을 받아보지 못한 내 고향의 조용한 자태를 떠올려본다.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맛있는 음식 생각하면 떠올리고, 은둔하는 이들의 낙향지로 그려지는 곳에 편안하게 다가오는 낮은 구릉과 드넓은 벌판의 기개를 담아내 보고 싶은 생각을 해본다. /유희열(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7.26 23:02

[타향에서] 모방할 수 없는 비빔밥 제조비법 - 김대곤

최근 중국쪽 실크로드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우루무치를 기점으로, 가욕관 주천 돈황 투루판을 둘러보는 왕복 2,600km의 여정. 장거리 이동은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 이틀밤을 열차 침대에서 흔들리며 고비(戈壁)사막을 달렸다.투루판(吐魯番)역에서 열차승무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외국인과의 대화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 왔다 하니, 한 승무원이 제주도에 갔었다고 자랑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한국에 가고 싶은 곳이 또 없느냐고 물었다. 한국은 좁아서 볼 게 별로 없다는 의외의 대답. 중국을 다니다 보면 규모면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종종 느끼게 되지만, 중국 서민의 입에서 그런 대답이 나오리라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한국 음식은 매우 좋았다고 말한다. 김치 비빔밥 랭면에 개고기까지 꼽는다. 얘기하고 싶은 건 우리 관광자원에 대한 객관적 평가다. 설악산 금강산에 미쳐 있다가, 계림이나 황산에서 낭패감을 느끼는 한국인은 없을까? 북경 자금성 앞에서 경복궁 자랑이 쉽게 나오나? 현재도 사용되는 돌로 만든 2천년 된 길이나, 사람이 살고 있는 몇백년 된 대리석 집이 즐비한 로마의 거리를 지나면서 우리 건축물 얘기가 쑥 들어가는 경험은 없었나? 높은 수준의 문화감식안을 보통사람들에게 강요하지는 말자. 어쨌건 그들의 입에서 나온 비빔밥이란 단어가 내 귀를 뚫었다. 관광이란 경치나 유적만을 보는 게 아니다.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가 바로 자원이다. 그런 면에서 비빔밥은 경쟁력이 있다. 비빔밥의 원조로서 전주가, 전북이 세계적 관광명소가 될 수 있을까?비빔밥이 모양과 맛, 영양 측면에서 세계 초일류 음식으로 상찬된다 해도, 그 자체가 사람들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비빔밥 말고도 자랑할 게 많은 전북에서 관광산업이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은 사람이다. 한 예로 친절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무엇도 내 지갑과는 상관 없는 아이템이 된다. 친절은 더 이상 서비스가 아니다. 친절 자체가 하드웨어가 되지 않으면, 작은 식당 하나도 성공할 수 없다.전북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북이 멋과 맛과 소리의 고장임을 알고 있다. 그들을 불러오는 것은 비슷한 문물이 즐비한 다른 곳과의 차이가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 모양과 맛이 같은 비빔밥은 어느 곳에서도 만들 수 있다. 누구도 모방하기 어려운 전주비빔밥을 만드는 법, 그것은 사람 냄새 풍기는 전북인의 정(情)이 해답이 아닐까? 찾아오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낙후 전북을 잘 사는 전북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길이 아닐까? /김대곤(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김대곤 이사는 전주 출생. 성균관대 법대 졸. 동아일보 기자. 대통령 공보비서관. 월드컵문화시민운동중앙협의회 사무총장. 전라북도 정무부지사. 국무총리 비서실장.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현)

  • 오피니언
  • 기타
  • 2007.07.19 23:02

[타향에서] 새만금은 무한한 도전 공간 - 이상직

최근에 찾은 전주는 장마철의 잿빛 하늘을 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즈넉한 전주의 분위기와 잿빛하늘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필자의 시선은 자연스레 고향의 풍광을 따라가고 있었다. 수십 년 전부터 느껴온 내 고향 전주의 느낌이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다. 오랜 세월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단지 고향이기 때문인가. 밖으로 나가야 안이 더 잘 보인다는데 고향의 발전에 대한 문제만큼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사실 서울에 살게 되면 지방의 문제를 절실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지방을 그리고 고향을 지역발전이라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옛 추억이 살아 있는 수십 년 전의 흔적이 그대로 간직되기를 바라는 모호한 정서가 지배하기도 한다.이런 점에서 중앙과 지방에 있는 전북출신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는 고향에 대한 로열티를 현실화시키는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국가나 기업에서 리더의 열정과 능력 즉 리더십이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지역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주영이라는 한 기업인에 의해 울산의 역사가 쓰여지지 않았는가. 흔히 울산을 말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이나 입지(對 일본)를 이야기하는데, 과연 정주영의 열정과 리더십이 없었어도 가능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모호한 정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전라북도의 정치적 능력이나 입지(對 중국)는 필자를 비롯한 전북 출신 기업인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찾아 도전해야 하는 기업인으로서 필자 역시 고향인 전라북도의 가치에 대한 고민은 정작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세계의 시장이라 불리는 중국이 점차 세계의 부(副)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이른바 중국의 동해벨트에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서해벨트가 가지는 지정학적, 경제적 역할은 지속적으로 증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서해벨트의 중심축이 될 새만금이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부터라도 전라북도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 미래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새만금이라는 무한한 도전 공간이 있지 않은가. 새만금은 미래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비전과 꿈을 머금게 될 것인데, 이것은 현실적인 난제를 풀어가는 치밀한 리더십과 전라북도민의 확고한 열정을 통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의 고민은 새만금이 품게 될 가치가 전라북도에 머물지 않고 전국적이자 세계적인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향을 생각하는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도전할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이기도 한데, 앞으로 한 올씩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열정의 불씨가 되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필자와 같은 기업인들의 노력으로 전라북도의 경제에 등불이 드리워지기를 소망하면서, 지금까지 어떤 지방자치단체가 이룩한 것 보다 더 큰 가치를 창조한 미래의 전라북도를 가슴에 품어본다. /이상직(KIC 부회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7.12 23:02

[타향에서] '6월의 달력'을 넘기며 - 노경식

엊그제 6월 25일은 한국전쟁 5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어느덧 반세기가 훌쩍 넘어서 60주년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난 20세기에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빼놓고는, 6.25전쟁은 가장 참혹하고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었을 터이다. 가장 참혹하다함은 장장 3년간에 걸쳐 동원된 무기라는 것이 원시적인 죽창과 돌멩이 몽둥이에서부터 최첨단의 전투기와 대포와 총칼, 기관총에 이르기까지 살상무기의 온통 전시장이 됐다는 점이며, 가장 수치스럽고 야만적이었다는 것은 한배새끼로 누천년을 이어온 동족끼리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낮도깨비에 씌어서 막무가내로 서로가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이었다는 점, 그러고 가장 비극적이었다함은 전터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그렇다치고, 일반서민의 수백만 생령들이 무고하게 죽어갔고, 집 떠나서 한데잠 자며 헐벗고 못먹고 길거리를 헤매이고, 정든 가족들이 서로서로 흩어져 1천만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는 비통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처럼 반백 년이 흘러갔는데도, 6.25전쟁의 그 큰 아픔과 비극적 상채기는 상기도 여전히 치유되거나 아물지 못하고 있으니 어느 누구를 탓하고 이를 어찌하랴!6월달 월력을 펴놓고 보니까 눈에 띄는 기념일도 많다. 우선 붉은 글자의 6월 6일은 현충일, 6월 10일은 민주항쟁 20돌, 6월 15일은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 7주년, 그리고 한국전쟁 57년이 되는 6월 25일 등등. 현충일은 익히 알다시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목숨 한 몸뚱이를 초개같이 버리신 영령들을 추념하는 국가기념일이다. 무슨 군더더기 말씀을 더 보태랴. 순국선열의 고귀한 넋과 희생 앞에 깊이 머리 조아리고 그저 묵념할 밖에. 6.10민주항쟁은 긴긴 30여 년에 걸친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마침내 자유와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고귀한 이념을 되찾아 쟁취하고 실현한 날이다. 그동안에 군사독재의 암흑과 폭압 속에서, 5.18광주항쟁을 비롯하여 수많은 대학생과 지식인, 노동자와 농민, 선량한 시민들의 시련과 희생은 얼마나 크고, 억울한 죽음과 고통은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호헌철폐와 민주주의의 쟁취 및 환희의 그날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의 성적표는 반드시 플러스만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6.15공동선언은 남과 북의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서로 끌어안고, 이 땅에서 참혹한 전쟁을 몰아내고 평화와 번영를 다짐한 우리네 한민족사의 기념비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북측에서 표현하고 있는 우리민족끼리의 승리라는 주장을 어느 정도 용인한다 해도 공동선언 7주년의 성적표 역시 아직은 미흡하고 험난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한 숟갈에 배 부를 수가 있으랴. 지난 세월에 반세기 이상 지속된 남과 북의 지독한 불신과 대결의 역사가 바야흐로 화해와 협력의 새역사로 확실히 바뀌어 가고 있으며, 그리하여 한민족끼리 완전한 자주평화통일의 그때 그날이 시나부로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가 믿어도 좋지 않을까! -- 이제 6월이 가고 7월이 오면 하반기에 들어서, 12월달에는 새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게 된다. 대통령이란 국운과 역사를 저울질하는 막중한 자리 아닌가. 부디 민주주의와 복리를 신장시키고, 남북의 평화통일을 한발짝 앞당기며, 나아가 우리나라의 세계화에 진일보할 수 있게, 그만한 신념과 용기와 경륜을 갖춘 멋쟁이 대통령이 제발 선택되기를-- 나는 걷기운동 삼아 아침마다 내가 찾아가는 한 초등학교 운동장의 정문 위에 높이 걸려 있는 큼지막한 플래카드의 글귀를 유심히 바라본다.6월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위한 보훈의 달입니다!/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6.28 23:02

[타향에서] '장소판촉'으로 전북발전을 - 이정식

세계화는 분권화와 자율화, 그리고 시민참여에 의한 지방화 시대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요 국가들이 새로운 행정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기업가적 행정부를 지향하고 있으며, 일본은 기본적으로 분권화와 자율화에 의한 지방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지방화 시대에 걸맞은 지방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지방정부 부문에 기업가 정신과 경쟁요소를 도입하여 지역주민들의 만족을 극대화하고, 지역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여 그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업가형 지방경영 전략이 필요하다. 지방경영 전략의 하나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장소판촉(place marketing)이다. 장소판촉에는 두 가지 측면이 강조된다. 그 하나는 문화적 측면이다. 땅이나 고장은 하나같이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기에 고장마다 고유한 특성에서 지역발전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그러므로 장소판촉은 문화에서 경제적 번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이다. 이는 고장의 제품을 단순한 경제재(經濟財)인 상품이 아니라 개성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가공하여 경쟁력을 축적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판촉 측면이다. 판촉이란 단순한 판매 혹은 광고 이상의 개념으로 마케팅(marketing) 조사를 통해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제품?가격?유통?포장?홍보 등으로 연결시키는 일련의 총체적인 활동을 의미한다.결국 장소판촉은 자기 지역의 볼거리와 먹거리 등 자랑거리를 창출하여 이를 그 지역의 상품으로 판촉하고, 사람과 자본을 끌어들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다께시다(竹下) 내각은 1988년에 고향 창생(創生) 1억 엔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지방의 경제를 촉진시키고자 중앙정부는 3,240개의 시(市)?정(町)?촌(村)에 각각 1억 엔의 현금을 제공하였다. 북해도의 한 마을은 관광지로 가는 도로휴게소에 1억 엔짜리 화장실을 설치하여 그 지역일대의 자랑거리로 삼았다.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휴게소 근처에 특산품 판매코너뿐만 아니라 음식?숙박업 등의 서비스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효고(兵庫) 현의 즈나(津名)마을은 1억 엔어치의 금괴 62㎏을 구입하여 전시함으로써 일본 전국에서 방문객이 쇄도하는 효과를 거두었다.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여러 가지 한계를 안고 있지만 태백시의 카지노 산업을 중심으로 한 복합 관광레저단지 개발이 그렇고, 서울 인사동의 문화지구와 이태원의 상가 등은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에게 더 잘 알려진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오지(奧地)로 불리었던 무진장의 무주에서 지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전주와 함께 치르면서 무주, 진안, 장수의 장소판촉이 성공한 사례에 해당된다. 도내 여러 곳의 적극적인 장소판촉을 통해 전라북도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이정식(안양대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7.06.21 23:02

[타향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 고향 - 남형두

필자의 고향은 부안이다. 읍내에 사셨던 아버지는 새만금 물막이로 육지가 되어 버린 하서 앞바다 갯벌에서 얼마간 조개양식업을 하신 적이 있다. 여름 방학 때면 조개를 먹어치우는 소라를 잡으러 어린 아이 무릎까지 빠지는 개펄에 나가곤 했다. 일본에 수출한다는 잘생긴 어린 대합을 잡아먹는 흉측한 소라에 대하여 어린 마음에 적개심(?)을 품고 열심히 잡아댔다.갯벌에도 강이 있다. 물이 들고 나면서 생긴 길게 패인 곳인데 썰물 때 물이 빠져도 여전히 먼 바다 쪽으로 물이 흐르고 있어 마치 작은 강같이 보인다. 양식장 간의 경계를 위해 쳐 놓은 그물이 이런 강을 가로지르는 곳에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어김없이 어른 키 높이 정도의 그물에 박혀 있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나무에서 과일을 따듯 그물에 박혀 있는 고기를 빼서 자루에 담을 때면 그렇게 옹골찰 수가 없었다. 이런 장면은 지금도 내 고향 부안이 아니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소라 잡으러 갔다가 온갖 잡어들 잡는 재미에 푹 빠져 밀물 드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첨벙대며 뛰어 나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온 가족이 각자 큰 자루에 가득 물고기와 소라를 잡아 나오다가, 앞서 말한 강에 막혀 건너지 못하고 돌아 나오느라 때가 늦어 자루를 버려두고 황급히 나온 적도 있었다. 어둑해질 때 무섭게 밀려드는 그 바다는 어릴 적 내게 두려움을 주었다.초등학교 때 무슨 경시대횐가 하는 일로 군산에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김제와 만경을 거쳐 군산에 가는 시외버스는 1시간 40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멀미약 광고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멀미약을 먹고도 늘 비닐봉지를 준비하였던 그 덜컹거리는 군산 가는 길은 어찌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서울에서 운전하다보면 간혹 교통방송 중에 부안톨게이트 부근 교통상황을 듣게 된다. 무심코 운전하다가 부안이란 소리에 귀를 의심하곤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다보면 2시간 만에 군산에 도착하고 김제평야를 가로질러 시원한 길을 조금 간다 치면 이내 부안이 나온다. 불과 20여분도 걸리지 않는 이 길을 그 옛날 멀미약을 먹고 갔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면서도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 말꼬리를 흐려버린다.부안과 군산 사이를 메운 새만금, 이 광활한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논란이 한창이다. 그곳에 공단이 들어설 지, 골프장이 들어설 지 아무 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 그러나 공단의 어느 지점인가 그 옛날 필자가 물고기를 땄던 곳이 있을 것이고, 골프장이 되어 있을 어딘가는 멀미로 차를 세워 찬바람을 쐬던 그 바닷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갯벌에서 바라본 서해낙조가 더욱 그리워진다.오늘로써 "타향에서" 연재를 마친다. 마지막 글은 내 고향 부안을 위해 남겨둔 것이다. 모두 여섯 번의 글을 쓰면서 그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에 눈자위가 촉촉해진 기억이 있다. 이런 기회를 주신 내 고향과 전북일보에 감사와 함께 큰 절을 올리고 싶다. 감사합니다./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7.06.14 23:02

[타향에서] 고향의 희망을 생각하며 - 오태수

지난 주말 고향에서의 하룻밤은 행복했다. 유난히 투명한 별빛도 좋았지만 검은 적막을 깨는 소쩍새와 논개구리 소리의 묘한 조화는 그동안 잊어버렸던 밤을 정취를 되찾아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새벽닭 소리에 눈을 뜬 아침은 아침대로 엷은 안개 속 온통 초록의 싱그러움이 절로 심호흡을 만들었고 개옻나무 사이를 자유로이 옮겨 앉는 어치 두 마리가 그저 앞만 보고 사는 내 삶의 건조함을 가여워하는 듯 했다. 고향의 본래 모습들이 개발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은 작은 축복이었다. 마악 뽑은 마늘과 부추를 건네는 옆집 할머니의 정은 또 얼마나 너그러운 것인지. 하지만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도 옛날 그 대로의 고향이기를 바라는 것은 손에 흙 안 묻히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못된 이기심이기도 하다. 좀 더 눈을 돌려보면 마당에 잡초가 무성한 빈 집들과 비닐멀칭으로 온통 하얗게 땅을 덮어버린 들녘 모습이 오늘의 고통스런 농촌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동안의 농정 한계와 수입개방 등에 여파에 따라 농업비중이 비교적 큰 고향농촌은 피폐화가 더욱 심각하고 취약한 산업기반 속에 젊은 노동력은 계속 도시로 빠져나가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두들 이제 농촌은 없다고 얘기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싶다. 당장 먹고 살아야한다는 절박함이나 FTA에 대한 절절한 고민 같은 것이 없는 한낮 배부른 자의 신소리에 불과하다는 비아냥거림도 있겠으나 아직은 농심이 건재함을 믿기 때문이다.내가 처음 만든 6시내고향이란 TV프로그램은 오늘의 변모된 농촌상을 취재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보자는 것도 지향했지만 그것보다 우선한 것은 우리 농촌만의 고유한 풍습과 함께 자연 그 안에서 이웃을 나처럼 배려하며 오순도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공유해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지금껏 20년 가까이 방송되고 있으니 시청자들도 그 뜻에 동의하지 않나 싶다. 개발과 변화의 가속화는 앞으로도 계속 농촌을 잠식해 가겠지만 사람의 본성까지 바꿀 수는 없다. 농심은 하늘이 내려 준 천심이라 했지 않은가. 우리의 미풍양속을 소중히 여기고 물욕보다 정신의 가치를 우위에 두며 그리고 그동안 농촌에 투자된 많은 것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줏대 있는 사람들이 농촌 곳곳을 지키고 있으면 결코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사람마저 사라져버린 삭막한 농촌 모습이다. 나 스스로는 가능한대로의 빠른 귀향을 원하나 하지만 그것이 지금 180만 명대까지로 줄어버린 고향의 인구 늘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이미 노후 인력으로 분류되어버릴 형편에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솔직히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런다할지라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차리는 밥상에 숟가락 몇 개 더 놓을 수 있겠다는 마음만으로도 나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명확한 실체가 없지만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가 결국 고향 그곳이기에 내가 추구하는 그 모습이 점점 구체화될 것으로 여기며 다만 아직도 타향에 머무르고 있음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오태수(KBS방송문화연구위원)

  • 오피니언
  • 기타
  • 2007.06.07 23:02

[타향에서] 연극인 박동화선생을 기리는 계절 - 노경식

오늘을 지나 내일이면 초하의 6월이다. 6월 달에는 전북의 연극인들 치고 꼭 기억하고 반드시 기려야 할 어르신이 한 분 계신다. 그것은 왠고하니 지난 날 전북연극의 거인 박동화 선생께서 향년 67세를 일기로 세상 떠난 기일(6월 22일)이 들어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비단 연극인뿐이랴. 전북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인은 물론 각계각층의 지명인사들도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우리네 전북인의 도리라는 생각이다.연극인 박동화(1911-1978) 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29개 성상이다. 흔히 말하기를 선생은 전북연극의 개척자 혹은 전북연극의 산파 등으로 생전에도 불리셨으나, 내 나름으로는 전북연극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것이 보다 적확하고 정감이 가지 않을까? 선생이야말로 불모(?)의 전북 전주 땅에 처음으로 현대 연극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열매 맺게 길러낸 연극거인이다. 선생님은 당신 혼자서 희곡작가이자 연극연출가, 연극제작자로서 일인 다역의 진솔하고도 학같이 고고하며 열정적이고 폭 넓은 연극운동가이다. 고달프고 간고한 지난 60년대 초엽에서부터 창작극회란 이름으로 몇몇 젊은이들과 뜻을 같이하고, 독창적으로 외롭게 시작된 선생의 순수 연극운동이, 오늘날에 와서는 전주시립극단을 비롯하여 황토 명태 등등 극단 숫자만 해도 12개 단체에 이르고, 연극인 숫자 수백 명에다가 해마다 공연작품이 수십 편에, 그 동안 전국연극제에서의 수차례 수상 경력 등등 그야말로 전국의 명문 지역연극예술로서 만화방창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는 셈이다.박 선생의 그 인자하고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싶으면 전주 체련공원에 찾아가면 된다. 연전에 전북 연극인들이 뜻을 모아 선생님의 동상을 건립하고, 좌대에는 그의 대표작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의 작품명이 새겨져 있음이다. 그러고 지난 2006년 가을께는 후배 연극인들이 선생님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 <가인 박동화, 최기우 작-유경호 연출>를 무대에 올렸고, 금년에는 또한 선생의 말년(60~70년대)을 소재로 한 새연극을 준비하고 있노라 듣고 있다. 조금은 때 늦은 감도 없지 않으나 얼마나 대견스럽고 의미있는 일인가. 아마 선생께서도 저세상에서, 그놈들 철들었구나. 싹수가 인제사 보여! 하고 흐뭇하게 미소짓고 계시지나 않을까! 때마침 지금 난, 제25회 전국연극제의 행사 일(심사위원장) 일로 경상도 거제에 내려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박 선생님을 가까이서 뵈온 것은 겨우 한두 차례 정도. 70년대 무렵에 서울의 명동국립극장에서 첫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그러자 선생께선 조금은 작은 키와 하얗게 센 머리에, 두 손을 따뜻이 감싸쥐고 가만가만 다정하게 하시는 말씀--노 선생, <달집> 공연을 내가 여그서 봤어요. 우리들이야 머, 씨 뿌린 역할밖에 더됩니까? 우리 전북, 고향 땅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써요. 허허~세상이 다 아는 박동화 선생의 연극 수제자이자 전북언론의 대기자 문치상씨(풍남제 제전위원장)가 쓴 <선생님! 박동화 선생님!>의 회고 글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이 글을 마치기로 한다.선생님! --이토록 믿음직한 후배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기뻐해 주시고, 그들의 앞날이 더욱 힘차고 풍성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5.31 23:02

[타향에서] 문화산업 국제경쟁력 갖춰야 성공 - 이정식

세계화는 통합성과 다양성의 조화를 통한 문화우위시대이다. 문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자유시간이 늘어나고,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와 문화적 욕구가 확대되면서 문화는 삶의 중심적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화도 이제는 경제영역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와 문화의 상호연관성은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대중매체(mass media)?영상?음악?게임?디자인?지식매체 등을 포함하는 문화산업은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문화기반을 견실히 구축하는 것도 지역발전의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는 자기 문화의 고유성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폐쇄적 태도에 빠지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세계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세계적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형성, 정보화 사회의 가속화, 위성방송의 확대 실시, 고속 교통수단 등의 발달로 세계는 공간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시스템(system)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문화우위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전통문화예술과 관광자원이 세계적 수준의 문화와 교감을 통해 보편적인 의미를 얻을 수 있도록 세계화되어야 하며, 수려한 문화?관광자원의 개발과 홍보를 통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의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는 전략 또한 중요하다.한국문화관광연구소의 오순환 소장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현재 1,176개의 지역축제가 열리고 있는데 이를 지역별로 나누어 보면 수도권이 283개로 전체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경상도(210개)와 전라도(181개), 그리고 강원도(124개) 등이 높은 비중을 나타내고 있다. 성공적인 축제의 사례를 소개하면 강원도 화천군의 산천어축제는 불과 5년 만에 125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여 549억 원의 지역경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한편 인구가 43만 명에 불과한 영국의 에든버러(Edinburgh)시는 20여 종의 축제를 연중 개최하여 1,3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도시 및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맥주축제로 유명한 독일 뮌헨(Mu?nchen)지방의 10월축제(Octoberfest)도 연간 65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남원 춘향제, 김제 지평선축제 등의 문화관광축제도 명확한 목표시장(市場)과 독창성, 연상성(聯想性), 재미, 개최시기, 그리고 활발한 주민참여 등을 토대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문화상품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관광산업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관광에 대한 인식이 문화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 틀에 박힌 민속촌이나 다른 한옥촌(韓屋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전주한옥마을의 재현이 좋은 본보기일 수 있다. 문화와 관광의 접목을 통한 새로운 관광문화의 창출은 관광산업의 활성화와 동시에 우리 문화의 세계화, 그리고 국가이미지(image)와 지역이미지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이정식(안양대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7.05.24 23:02

[타향에서] 소리꾼과 약장수 - 남형두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개봉되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흥행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서 그랬는지 천만 관객 영화가 간혹 있는 영화판에서 백만조차도 올리지 못하고 막을 내리고 말았다. 사실 흥행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전편인 서편제의 그늘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과 달리 단관 개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만 관객을 넘겨 당시로서는 요즘 천만 관객 못지않게 뉴스가 되었던 서편제는 얼마 전 문화부장관직에서 물러난 김명곤과 후편에서 더욱 그 소리와 자태가 무르익은 오정해라는 배우를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무엇보다도 판소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영화였다.영화 서편제에 이런 장면이 있다. 아직 장이 서지 않았는지 한적한 장터에 어린 송화(오정해 분)가 동생 동호의 어설픈 북소리에 춘향가를 부르고, 한쪽에서는 약장수가 그럴듯하게 포장된 약상자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쌓아둔다. 송화의 애끓는 이별가 대목에 사람이 한둘 모이고, 소리가 끝나자 송화는 약병을 들고 구경꾼들 사이에서 팔고 다닌다. 송화의 아버지이자 몰락한 소리꾼 유봉이(김명곤 분)는 멀찌감치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 장면을 보다가 이깟 소리는 혀서 뭐혀라고 외치면서 약상자가 놓여있는 테이블을 쓸어버리고 이내 판은 깨진다.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세월은 흘러 영화 속 시대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이깟 소리는 해서 뭐하냐고 외쳤던 유봉이가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책임지는 문화부 수장이 되었으니 변하긴 많이 변한 것 같다. 한창 활동할 젊은 나이에 연극이나 판소리와 같이 돈 안되는 일만 골라하다가 폐병까지 걸려 죽을 뻔 했다는 그가 문화부장관이 되었을 때 마침 문화산업이 우리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큰 기대가 있었다. 장관이 바뀐 뒤로 문화부 공무원들의 옷차림이 달라지고 각종 문화 관련 행사를 주관하는 이 기관은 정부부처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렁물렁해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도 잠깐, 허기를 달래며 연극대본을 외웠을 그가 그 뜻을 충분히 펴기도 전에 바다이야기 뒤치다꺼리와 몇몇 국제스포츠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더니 이내 경질되고 말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특별히 무슨 잘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장관 재임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년 남짓 재임하였으니 장수(?)하였다고 할 것인지...우리나라의 제조업을 삼켜버린 중국이 최근 인건비가 급상승하여 상당수의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첨단 기술 산업이나 전통적으로 경쟁력이 강한 몇몇 제조업종을 제외하고는 값싼 노동력의 중국을 당해낼 도리가 없는 우리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 협상을 비롯한 각종 정부정책 수립과정에서 약이나 연필 몇 자루 팔기 위해 공짜 소리를 해야 했던 지난 세기처럼 여전히 제조업에 문화산업이 뒷전에 밀리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약 보다 훨씬 비싼 소리를 놔두고 여전히 약만 팔고 있을 건가? /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 오피니언
  • 기타
  • 2007.05.17 23:02

[타향에서] 웃음을 주는 '개그'의 힘 - 오태수

한 웃기는(?) 프로그램을 밤 9시 뉴스가 방송되는 같은 시간대의 바로 옆 채널에 내던지듯 편성했더니 문제가 생겼다. 뉴스의 위세에 눌려 기를 못 펼 줄 알았던 이 프로그램이 뜨기 시작하면서 요지부동의 9시뉴스 시청률을 잠식해 버린 것이다. 방송사가 밤 9시 뉴스에 쏟아 붓는 공력은 절대적이고 그로 인한 영향력 또한 만만치가 않은데 예상 밖의 일이 터지게 되었다. 이 개그 프로그램의 방송시간대를 옮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콘서트 형식을 취한 이 프로그램이 채널이미지와 광고 등에서 뉴스를 상쇄시키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내는 바람에 결국 없던 일로 묻혀 버렸고 시청자들의 반응이 더욱 좋아지고 보니 다른 방송사에서도 비슷한 개그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자신이 망가지거나 남을 비비 꼬아대던 과거 코미디를 유치함이 섞인 구태라고 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요즘의 개그 프로그램들은 상대적으로 아이디어와 독창성이 뛰어나고 수준 이상의 사회풍자가 있어 인기가 넘친다. 거기에 연기자들의 순발력과 관객들의 호응까지 합쳐져 재미를 더하고 있다. 젊은 층이 주된 출연자들인지라 가끔 처음 대하는 신조어나 유행어, 몸짓 같은 것이 튀어나와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앞뒤 분위기를 꿰맞춰보는 경우가 생기곤 하나 그것이 젊은 세대 특유의 풋풋하면서도 건강함을 대하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더욱 흥미가 있다. 그런 개그 프로그램을 젊은 층에서만 선호하는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최근까지의 시청층을 분석해 보면 가장 많이 시청하는 연령층은 30대로 나타나고 있고 남성 여성할 것 없이 1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시청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다. 편차가 거의 없이 모든 연령층을 망라하여 개그 프로그램의 인기몰이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해 웃음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으로 이해가 된다. 반가운 일이다. 그저 앞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변화 없고 건조한 일상을 TV앞에서나마 훌훌 털어내 버리고 싶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웃는 표정이 억지로 만들어 지는 게 아니고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할 때 나타나는 반응이고 보면 이제는 삶의 질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많아졌고 행복지수도 그만큼 높아져 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오월은 가정의 달이라 해서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가정 내부를 들여다보면 특히 휴대전화나 컴퓨터 같은 세대 간의 차단벽 때문에 가족 구성원간의 단절과 자폐증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생각해 볼일이다. 그러나 얼짱이나 지름신같은 말이 이제는 보편화 되었듯이 그때 그때 유행하는 용어 몇 개 정도나마 알고 지내면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고 웃음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과 다르게 웃을 줄을 알고 남을 웃기기도 한다. 웃으면 엔돌핀이 돌아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살짝 던지는 개그 하나가 집안에 생기를 돌게 한다.TV라는 매개체가 대화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가정에 웃음과 행복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오월에는 집집마다 개그가 풍성해졌으면 한다./오태수(KBS방송문화연구위원)

  • 오피니언
  • 기타
  • 2007.05.10 23:02

[타향에서] '춘향제' 구경가세! - 노경식

그 유서 깊은 남원 춘향제가 내일부터 닷새 동안(5월 4일~8일) 광한루원을 중심으로 흥겹게 펼쳐진다. 올해로 77회째라니 가히 역사와 전통을 짐작할 만하다. 1931년 일제 강점기에 남원권번(券番)의 기생들 몇몇이 모여서 열녀춘향의 정절을 기리고자 제향을 모신 것이 그 효시였단다. 나에게 있어 춘향제 하면 1950년대 초 중고교의 10대 소년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는 6.25전쟁의 끔찍한 뒤끝이라 궁핍과 간난시련 속에 살아가기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다. 그래도 해마다 음력 사월 초파일 춘향제 날이 돌아오면- 지금은 5월 5일이지만- 남녀노소 너나 할 것 없이 남원 사람들은 신나게 기분이 좋고 저마다 달뜨기 마련이다. 그 유명한 광한루에서부터 남원극장이 있는 은행 사거리의 동서남북 큰길가 푸른 가로수 끝에는 청사초롱이 매달려서 봄바람에 나부끼고, 풍물 걸궁패들은 귀창이 떨어지게 날라리 소리를 앞세우고 북과 꽹과리 장구 징을 울리면서 길거리 한복판을 미어터지게 흘러간다. 덩실덩실 춤추며 뒤따르는 것은 술주정꾼과 건달뿐 아니라 코흘리개 어린것들도 줄레줄레 한 몫을 놀고--여기 광한루야말로 춘향과 이도령이가 첫눈에 홀딱 서로 반해서 천년사랑을 일궈냈던 바로 그 자리가 아닌가? 남원 군민들은 겨우내 장롱 속에 감춰뒀던 봄나들이 새옷으로 말끔히 갈아입고 꾸역꾸역 광한루 경내로 몰려든다. 비단 남원뿐일까. 인근고을인 순창과 곡성, 임실 전주, 순천 여수, 지리산 연재 너머 경상도 함양과 진주 땅에서도 오고-- 광한루 연못(호수)에서는 황금빛 잉어떼가 한가로이 헤엄쳐 놀고, 누각 안에서는 판소리 명창대회가, 누각 아래의 우람한 느티나무에서는 춘향이 그네뛰기가 하늘을 날아갈 듯 한창이다. 그러고 또 한쪽 구석의 외진 곳에서는 난장판이 텄다. 뺑뺑이판 돌려서 숫자 찍기, 트럼프 넉 장으로 그림 맞추기, 화투놀이의 짓고 땡이나 또는 갑오잡기의 모이 등등-- 광한루 경내와 읍내 길거리, 장터와 시장통은 어느새 인산인해를 이루고, 구경꾼들이 신나는 굿판을 찾아서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서 간다. 그뿐인가. 활쏘기 궁도대회, 장사씨름대회, 곡마단의 써커스 놀이, 신파악극단의 <비 내리는 고모령>의 요란한 프럼펫 소리와 밤마다 용성학교 운동장에서 틀어주는 리버티 뉴스(대한뉴스)의 활동사진 등등. 그러나 역시 하일라이트는 대개 춘향제의 마지막 날 남원극장에서 펼쳐지는 우리나라 명창들의 판소리 발표회-- 그런깨로 명창 임방울 선생이 내레오고, 박초월이도 오고 또 김소희도 서울서 왔다는고만. 워매, 신나고 좋은 거!그날 밤, 남원극장은 입추의 여지 없이 극장 안이 터져나갈 듯 초만원을 이룬다. 임방울 선생의 <쑥대머리>에 객석에서는 추임새와 함께 한숨과 눈물이 절로 나오고,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남원 출신의 강도근씨는 <흥부가> 한 대목을 열창하느라고 온몸의 땀이 얼굴에 비 오듯이 흐른다. ---- 그 시절이야말로 춘향제는 고달프고 따분한 우리들의 세상살이 속에서 한 가닥 위안이자 축복이요 즐거움이었다. 오로지 그날만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그렇고 그런 평범함과 일상성에서 벗어나, 자못 크나큰 파격이고 대담한 일탈이며, 신선한 해방감이자 풍만한 자유가 아닐 수 없었으리라!벗님네야, 남원 춘향제 귀겡 가시제라우, 잉! /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 오피니언
  • 기타
  • 2007.05.03 23:02

[타향에서] 지식정보화로 지역발전을 - 이정식

세계화 시대는 사회의 정보화와 지식화에 의한 지식정보시대이다. 이것은 바로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혁신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시대이다. 정보기술혁명은 과거의 근대산업주의에 토대를 둔 문명에서 이제는 지식과 정보에 기반을 둔 문명으로의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컴퓨터 혁명이 새로운 문명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정보통신혁명은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키고 있으며, 정보의 양과 흐름은 더욱 더 거대해 지고 또 빨라지고 있다. 따라서 지식정보시대에는 컴퓨터와 통신수단의 합작에 의해 이루어진 정보통신기반이 가장 중요한 인프라이다. 지역발전의 새로운 인프라가 등장한 셈이다.지금까지 산업화의 힘이 석탄과 석유 등 동력(動力)에서 비롯되었다면, 정보화의 힘은 컴퓨터, 통신, 소프트웨어(software)가 융합된 정보기술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보기술은 지금까지 인간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공간(空間)의 개념은 사이버(cyber) 공간의 출현으로 우리는 두 개의 우주공간에서 살고 있으며, 시간의 개념은 낮과 밤의 구분이 없어진 채 24시간이 낮이다. 속도의 개념도 이제 누구나 빛의 속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대화의 개념은 1대 1에서 1대 다수(多數), 다수 대 다수의 대화가 가능해 지고 있다. 그리고 매체(媒體)의 개념은 정보전달기술의 통합으로 아날로그(analog)에서 디지털(digital)화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이러한 생활의 기본요소를 기존의 개념에서 변화된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국제적으로 표준화한 정보기술이 바로 인터넷(Internet)이다. 그러므로 21세기는 디지털 사회와 사이버 경제로 특징지어지는 디지토피아(digitopia) 시대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주도하는 지식정보사회는 지식과 정보의 창출, 유통, 활용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국가, 지역, 계층간에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더욱 심화되면서 정보 강자와 약자로 나누어지는 새로운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2000년 7월에 UN 경제사회이사회는 국제간 또는 국내의 디지털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디지털 기회(digital opportunity)를 창출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따라서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초고속 통신망의 구축과 컴퓨터의 보급, 그리고 기초적인 영어구사 능력 등을 갖추지 않으면 지식정보시대에 우리는 낙오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도 농어촌 등 부진지역에 정보통신기반을 우선적으로 구축하고, 도서(島嶼)와 벽지(僻地) 등 유선망을 통한 서비스 제공이 곤란한 지역에는 위성인터넷 플라자의 설치를 포함한 정보접근환경이 제공되어야 하며, 주부?농어민?저소득층 자녀?장애우?노인 등 정보이용 취약계층에게는 중앙과 지방정부 차원에서 무료 컴퓨터교육과 같은 정책적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이정식(안양대 교수)

  • 오피니언
  • 기타
  • 2007.04.26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