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한글학계의 거목인 한갑수박사(10회)는 일제치하 일본어를 강요하던 학교에서 퇴학맞은 뒤 유일하게 그에게 입학을 허가해준 고창고보에서 받은 감동을 지금도 이야기한다. 한박사는 “처음 학교를 찾아 교무실을 들어갔는데, 선생님들이 일본말이 아닌 우리말로 이야기하고 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면서 그때를 돌이킨다.
고창고보는 3.1독립운동직후인 1919년 4월 10여만 군민들이 푼돈을 모아 창립했다. 일제의 탄압아래서도 멀리 이북의 함흥에서까지 뜻있는 학생들이 모여들어 입시경쟁을 치열하게 벌였을 정도로 명성을 자랑했다.
‘북에는 오산학교, 남에는 고창고보’라는 말이 있듯이 민족사학(民族私學)으로 이름높았던 고창고의 재경동창회도 80년이 넘는 학교의 역사만큼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지금도 백발이 성성한 대선배들부터, 왕성히 활동하는 30대 후배들까지 끈끈한 애향과 애교정신으로 모임을 이루고 있다.
재경 고창중고 동창회는 8.15해방을 맞아 지하에서, 나라밖에서 돌아온 지사들과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동문들이 서울에 모이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너나 할 것없이 그때 마침 함흥감옥에서 풀려난 정인승선생(작고.전북대총장역임)이 주관하던 조선어학회를 찾게 됐다. 더구나 조선어학회에는 신태수교장(작고.건국대명예총장역임)과 이병학, 유찬식, 홍순복, 신효선선생이 함께 있었고 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겪었던 권승립(12회), 신한철(5회), 한갑수(10회)동문이 포진하고 있어 고창고동문회나 다름없었다. 조선어학회는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된 고창고보출신들의 활약무대가 됐고, 곧 재경동창회의 요람이었다.
이처럼 조국의 해방과 함께 시작됐던 동문들의 우국충정은 마침내 57년 5월 재경고창중고 동창회의 공식 출범으로 이어진다.
재경고창중고 동창회는 색다를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한다. 정기총회나 장학회는 물론이고, 바둑동호인들의 모임인 기우회, 기수 협의회, 산을 좋아하는 동문들의 산우회, 신년교례회, 송년회, 모교 방문행사 등 다양한 사업들을 펼친다. 특히 기우회는 영호남 화합을 위해 영남 학교와 친선 바둑대회를 개최하기까지 한다.
동창회가 이같은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송성우회장(34회)과 박우정부회장(40회) 등 현 임원진의 헌신적인 노력때문이지만, 80여 성상동안 배출된 4천5백여 재경동문들의 끈끈한 정이 뒷받침된 것도 물론이다. 또 이들의 민족정신을 길러주고 학교의 전통을 세워준 교사들의 정신이 함께 하는 것도 물론이다.
오랜 역사만큼 재경 동문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작고한 동문들중에는 영어구문론으로 유명하고 국회의원을 지낸 유진(2회), 항일운동가 이내범(3회), 전북대 공대학장을 지낸 조정만(4회), 종교학계의 거목인 신사훈(7회),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홍영기동문 등이 있다.
지금도 동문회 모임때면 꼭 참석하는 김옥성동문(6회)은 한국기독교 신도연맹 이사장과 ‘다락방’발행인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고 한글학자인 한갑수동문(10회)은 한글학회 이사와 대한일보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창이 낳은 한국의 위대한 시인으로 긴 설명이 필요없는 서정주시인(11회)도 고창고 동문회를 빛내는 얼굴이고 오희탁동문(11회)은 지금도 동창회 일이라면 만사 제칠 정도로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정성태동문(12회)은 6선의원으로 민정당 원내총무와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 유승석동문(28회)은 서울관광호텔 대표로 동창회 일과 재경전북도민회 등 전북과 관계된 일에 많은 협조를 하고 있다.
재경고창군민회장인 백한기동문(29회)은 건민개발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박규태동문(29회)은 연세대 총무처장, 공과대학장과 대한전자공학회장을 거쳐 지금 장관급인 총리실 산하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초대 민선 관악구청장을 지낸 진진형동문(29회)은 세무회계사로 활동하고 있고, 수필가인 방원석동문(30회)은 영림전설부회장을 맡고 있다. 관세청장을 역임한 김경태동문(32회)은 삼성자동차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고 심경모동문(32회)은 (주)파라다이스 사장을 맡고 있다.
이도범동문(32회)은 서울의학연구소 전무로 활동하고 있고 송언기동문(33회)은 (주)태창프랜트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국제아마추어레스링연맹 명예 특급심판인 최규철동문(33회)은 동국대 경주캠퍼스 부총장을 맡고 있다.
김용성동문(34회)은 (주)맨하탄항공여행사 회장과 국제라이온스협회 354-D지구 총재로 활약하고 있고 경인지방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한 송인정동문(34회)은 경인약화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서대문세무서장을 역임한 김상수동문(34회)은 대한주류공업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고 연세대 재무처장과 상경대학장을 역임한 김황조박사(34회)는 장관급인 노사정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영등포병원 이사장인 유태전동문(34회)은 최근 ‘세계를 움직이는 999인의 명언’이란 책을 출판해 눈길을 모으고 있고,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한 조강환동문(중5회)은 은광학원 이사장으로 활약하고 있고 최근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됐다.
울산일보 발행인겸 회장을 맡고 있는 김양일동문과 전북지역 농협본부장과 중앙회 상무이사 등을 역임한 김상규동문은 35회이고, 충북대 교수로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중진조각가로 이름높은 김수현동문(36회)은 모교 개교 80주년 기념 작품을 모교에 기증해 동문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종호동문(37회)은 서울 중구청 건설교통국장을 맡고 있고 강국희동문(37회)은 신원종합건설 등 4개 회사의 대표이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규현동문(37회)은 서울은행 상무이사로 일하고 있고 연합뉴스 논설위원 실장을 역임한 정남기동문(38회)은 민족뉴스 취재본부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성수동문(39회)은 서울대 생명과학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고 서차현동문(39회)은 성덕무역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40회의 대표주자인 정균환국회의원은 현재 민주당 총재특보단장을 맡고 있고 16대 총선을 통해 4선의 고지에 올라, 전북 정치계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강진섭동문(40회)은 유니코메탈 대표이사로, 김성주동문(40회)은 대한의산 대표이사로, 류만상동문(40회)은 정우특수섬유 대표이사로 알찬 기업을 이끌고 있다.
재경고창군민회 부회장과 재경동창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우정동문(40회)은 동창회 활성화와 장학금 모금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발로 뛰고 있고, 장기환동문(40회)은 한국공항터미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을 역임한 박동화동문(41회)은 건설교통부 도로국장으로 일하고 있고 공군 준장인 박귀복동문(41회)은 5전술 공수비행단장에서 최근 복지근무 지원단장으로 영전했다.
김용대동문(41회)은 정읍 세무서장을 맡고 있고 박문규동문(41회)은 피혁제품 수출사업 등으로 코스닥에 유망기업으로 주목받은 P.M.K그룹을 이끌고 있다.
유도봉동문(42회)은 동아제약 달성공장장(상무이사)으로 일하고 있고 권순직동문(42회)은 동아일보 편집부 국장을 맡고 있다. 김만수동문(42회)은 (주)프람소와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육사 26기로 합참 작전기획부장을 맡고 있던 김필수동문(42회)은 중장진급과 함께 기무사령관의 요직을 맡고 있다.
재경부 부이사관으로 소문난 아이디어맨인 유덕상동문(44회)은 재경부에서 예산총괄과장으로 일하고 있고, 문상구동문(44회)은 육군 준장으로 승진했다.
오종남동문(46회)은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일하다 지난해 IMF(국제통화기금)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정학수동문(48회)은 농림부 공보관(이사관)으로 일하고 있으며 김길성동문(53회)은 청와대 민정비서실 국장으로, 김영목동문(53회)은 청와대 경호과장을 맡고 있다.
◇ 송성우회장 인터뷰
송성우재경동창회장(정우건축사사무소 대표)은 동창회 말만 나오면 ‘관심과 참여’를 강조한다. 회장이나 임원 등 몇사람의 힘으로 동창회가 잘 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전 동문의 관심과 참여가 관건이라는 것.
98년에 회장에 취임한 송회장은 10대. 초대 이내범, 2대 한갑수, 3대 유진, 4대 김옥성, 5대 윤재신, 6대 박준택, 7대 박광종, 8대 조의환, 9대 이종혁회장의 뒤를 이었다. 5대 윤회장이 10여년동안 회장을 역임하며 재경동창회의 재건했다면 10대 송회장은 중흥을 위해 뛰고 있다.
송회장은 “지난 2년동안 동창회 활성화를 위해, 동창회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주력해왔다”면서 “실제로 이런 모임을 통해 선배와 후배의 벽이 허물어졌고, 서로 돕는 분위기가 조성됏을뿐만 아니라 동호회를 통한 동창회 참여가 날로 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회장이 벌인 사업은 우선 각 기별 모임의 활성화. 선배와 후배의 격차가 워낙 크다보니 후배들이 느낄 수 밖에 없는 위축감을 없애기 위해 생각해낸 것으로 지금은 장년층들이 기수모임을 바탕으로 활발한 동창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50회에서 60회까지 빠짐없이 기별모임을 만들고 협의체를 만들고 나니 동창회를 60, 70대 선배들의 모임으로만 여겼던 40대 전후 동문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동창회가 젊고 활기찬 모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등산모임과 바둑모임 등 동호인 모임도 송회장의 아이디어.지난해에는 장학회를 설립해 박우정부회장과 기금 마련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송회장은 “재경 동창회는 옛날 고창고보 시절의 화려했던 명성과 영광에만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재설계하는 새로운 도전의 견인차가 되고자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 동창회가 앞장서서 동문들의 뜻과 정성을 모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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