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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세계에 배인 전통 한국화법

 

잠깐동안의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낯선 땅에서의 생활. 1년은 10년이 되고, 그렇게 세번의 세월이 또 갔다. 30대 청년은 60대 중반의 초로가 되었다. 한국화가 현림 정승섭씨(64, 원광대 교수). 원광대 재직 30년의 의미를 담은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 화업 40년을 기념해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가졌던 초대전 이후 5년만의 개인전이다.

 

11일부터 22일까지 원광대 문화센터 4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현림 정승섭의 그림세계'는 오직 한길, 세속적인 유행에 눈길 돌리지 않고 전통한국화의 세계를 천착해온 중진작가의 아름다운 궤적이다. 전시 작품은 소품과 대작을 합해 100여점. 시기적으로는 60년대의 인물화부터 지난 4월 완성한 1백호 대작까지 40년을 관통한다.

 

워낙 작업에만 정진해온 터여서 꺼내보이지 못한 작품이 적지 않지만 대학 강단의 연구 성과 의미를 담아 한국화를 공부하는 후학들에게도 교육적 효과를 전할 수 있게 했다.

 

불교 선사상에 오랫동안 심취해온 그의 화재(畵材)는 관념속 산수화가 대부분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관념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화두가 된다.

 

그의 그림은 전통 한국화의 화법과 정신을 실현하는 교과서와도 같다. 기발한 기법과 일상적 소재들이 화폭으로 들어와 '현대적 탐색'이란 이름으로 화단을 제압하고 있는 사이에도 굿굿하게 전통화법의 세계를 지켜온 덕분이다.

 

그는 지난해 중국의 천진미술학원 교환교수로 6개월을 지냈다. 홀로 훌쩍 떠났던 중국에서의 생활은 그의 예술관을 큰 폭으로 변화시켰다. 그림 그리는 일 밖에 다른 할일이 없어 도서관과 미술관을 오고가며 작업에만 전념했던 그는 귀국을 앞두고 한달동안 황하문명권을 답사했다. 종교세계에 깊이 천착해있던 그는 달마대사가 9년동안 지내며 면벽했다는 동굴에서 고행의 처절한 흔적을 만났고, 황해와 발해만으로 이어지는 요동과 산둥의 거대한 풍광을 보면서 자연과 우주의 섭리 앞에 미미하기만한 인간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미 여러해전 돈황을 답사하면서 줄곧 '전생에 내 자신 중국의 화공이 아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낯익은 벽화들을 통해 신비한 체험을 했다는 그는 어느날 문득 다가온 노년기의 길목, 자신의 작업 방향은 더 명료해졌다고 소개했다.

 

"동양미술사의 거대한 흐름속에서 한국 미술사는 미미합니다. 당대의 빼어난 화가들도 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소박한 흔적이지요. 최근 한국화의 흐름속에서 미미해진 전통화법의 전통은 더욱 아쉽습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예술세계보다는 깊이와 연륜을 담는 작업에 천착해온 그는 동양예술의 진수는 종교와 철학적 깊이에 있다고 말한다. 서양 미술처럼 분석적이고 부분적이지 않고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사유의 세계라는 이야기다.

 

그는 이제 새로운 화업 20년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정년퇴임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이 시기를 그는 '좋은 그림'을 내기 위한 노년의 정진이라고 표현했다.

 

'閉戶畵畵多幾年 種松皆作老龍鱗' (문걸어 잠그고 화필생활 30년, 뜰에 소나무, 노룡의 비늘처럼 변했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화가 자신이다. '인고의 세월'이란 표제가 붙은 이 작품은 그가 열어갈 예술세계의 지평을 예감하게 한다. 은둔의 세계는 곧 정신적 세계를 갈망하는 화가의 꿈이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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