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NBC텔레비전의 `투데이'(Today)코너에서 "대 테러전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테러전 승패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1일 "테러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며 정면 공격에 나섰고 이에 놀란 공화당 진영이 서둘러 부시 대통령의 말을 번복, 해명하고 나섰다.
문제는 미국 정치권이 논쟁 아닌 논쟁으로 11월2일 대통령 선거 분위기를 달구는 사이 하루가 멀다하고 테러 사건들이 꼬리를 물면서 인류는 하루하루 테러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24일 러시아 여객기 2대가 동시 추락한 사건이 알-카에다와 연계를 주장하는 한 단체의 테러사건으로 규정되고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시에서는 지하철에 폭탄 설치를 모의하던 미국인 등 2명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 인력 송출 조직에 의해 이라크로 일하러 간 네팔인 12명이 한꺼번에 참수 또는 총살당하는 사건이 발생, 미국인 닉 버그씨와 한국인 김선일씨 사건으로 본격화된 '참수 테러'에 대한 공포가 가중되고 있다. 인질로 잡혀 있는 프랑스인 기자 2명의 생사도 경각에 달려 있다.
러시아에서는 1일 체첸 무장세력이 학생 250여명을 인질로 잡는 사태까지 벌어졋다.
이라크를 비롯해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 비춰보면 미국 정치권의 승패 논쟁과는 아랑곳없이 9.11 사건으로 시작된 테러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확산되고 있고 이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테러 공포가 세계화하는 현상마저 나타나는 양상이다.
▲ 이라크전쟁과 테러의 세계화 = AP통신은 2일 "부시행정부가 이라크전쟁을 테러와의 전쟁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이라크 전쟁은 진짜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이탈이면서 후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클린턴행정부 시절부터 부시행정부 초기까지 백악관에서 테러문제를 전담했던 리처드 클라크는 지난 6월26일 올랜도에서 열린 미국도서관협회(ALA) 연례총회에서 "이라크전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알-카에다의 입지를 강화시키고, 새세대 테러리스트들을 탄생케 했다"고 비난했다.
클라크는 "우리에게 어떠한 위협이 되지 않음에도 원유가 풍부하다는 이유로 아랍권 국가를 침략하고 점령했다"며 "이로 인한 아랍인들의 증오심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알-카에다의 하부 조직임을 자처하는 수많은 단체들이 이라크에서 '참수 테러극'을 계속하면서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한 이탈리아와 폴란드, 불가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들을 공격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호주에서 테러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등 이라크에 파병한 중남미국들에까지 테러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프랑스조차도, 프랑스내 공립학교에서 히잡(이슬람 머리수건) 착용을 금지한 것이 빌미가 돼 이라크 종군기자 2명이 인질로 붙잡혀 살해 위협을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 테러와의 전쟁 언제까지? = 이처럼 테러의 공포가 계속 확산되고 있지만 미국은 정권 교체에 관계 없이 이라크에서 손을 떼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될 것임을 장담하고 있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미국의 공격 개시 20일만인 지난해 4월9일 함락될 무렵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 등 미국내 '매파' 인사들은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은 일종의 '제4차 세계대전'이라고 주장했다.
울시 등는 이 전쟁이 미-소 냉전인 제3차 세계대전보다는 길어지지는 않겠지만 1.2차 세계대전 보다는 길어질 것임을 공언했고 이후 미국 정보관계자들은 이 전쟁이 "수 십 년 계속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은 이렇게 될 경우 초강대국이고 자유주의 국가인 미국을 미워하는 이슬람 극렬주의 세력의 테러 우려는 커질 수도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이 전쟁을 계속해야 함을 역설해 왔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6월5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최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계속될 것"이라며 "미국과 동맹군들은 이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이라크에서 많은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오늘날의 현실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 종료시점이 아닌 출발점에 선 것과 같은 느낌"이라며 테러와의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뜻을 비췄다.
미국내 일부 인사들의 제4차세계대전론 또는 테러와의 전쟁 장기화 전망은 북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 이슬람 국가들을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로 개조한다는 소위 대중동플랜(Great Middle East Initiative)으로 이어지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은 미국이 지목하는 테러범들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닉 버그씨를 칼로 살해한 자라고 지목함으로써 오사마 빈 라덴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테러리스트'가 된 요르단 출신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는 지난달 6일 쿠웨이트 신문 알-시야사에 보낸 CD롬에서 "친구들이여 일어나라. 신이 천국의 문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 또는 이라크 전쟁을 테러의 세계화를 위한 문으로 간주한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연구원은 2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공격은 계속될 것"이라며 "모름지기 2000년 예멘 아덴항에서 발생한 미 구축함 콜호 폭파 사건 수준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 테러와의 전쟁 승패는? = 미국이 주창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일까?
최근 부시 미 대통령과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 사이의 승패 논쟁이 있기 오래 전부터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 왔다.
부시 미 대통령은 9.11 테러의 주모 세력인 알-카에다 조직을 와해시켰고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사실을 들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장하기는 테러범 쪽도 마찬가지였다.
자르카위의 조직이 지난달 6일 쿠웨이트 신문사에 보내 테러와의 전쟁을 천국의 문에 비유하면서 보낸 CD롬의 제목은 '승리의 바람'(The Winds of Victory)이었다.
또 지난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파사건이 터지고 1천300여명의 나자프 주둔 스페인군이 모두 철수했을 때와 필리핀 인질 사태를 계기로 이라크 주둔 필리핀 군 30여명이 철수했을 때 자칭 테러단체들은 승리를 주장했다.
미국인들은 부시행정부가 앞장서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을까?
지난 4월 5∼7일 AP 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성인 1천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절반은 대테러전쟁에서 테러범들이 승리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당시 조사에서 이라크 내 군사행동이 미국에 장기적인 테러 위험을 안겨주었다 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지난해 12월 40%에서 54%로 늘었다.
AP 통신은 2일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지는 승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