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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서거 지구촌 애도물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소식에 3일 전세계는 바티칸에서 아프리카까지 종교, 인종, 대륙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애도의 물결을 이뤘다.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요한 바오로 2세를 20세기의 핵심 인물이자 자유와 평화의 옹호자였다고 추모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가톨릭 교회가 지도자를 잃었다"면서 "세계가 인간자유의 옹호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하느님이 그런 분을 보내주신데 대해 감사한다"면서 "그는 폴란드의 아들로 시대의 영웅이 됐다"고 말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교황의 서거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평화의 옹호자였으며, 종교간 대화의 선구자였고, 교회 자체의비판적인 자기 분석을 추진한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신앙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을 종교 지도자를 세계가 잃었다"고 아쉬워했고,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역사를 썼다"면서 "그는 우리 세계를 바꾸었다"고 추모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인 폴란드는 교황의 선종(善終) 소식이 전해진 뒤 전역이 국상(國喪)에 가까운 슬픔에 잠겼다. 고향마을인 바도비체의 교회는 조종을 울리며 슬픔을 함께 했고, 주민들도 성당을 찾아 기도를 이어갔다.

 

폴란드 정부는 자국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추모를 위한 구체적인 국민 애도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긴급 각의를 개최키로 했다.

 

종교가 다른 중동에서도 교황 추모 물결은 이어져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은 "모든 이들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생애를 헌신한 매우 중요한 종교적 인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도 "전세계 교인들에게 애도를 표한다"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유와 독립의 합법적 권한을 줘야 한다는 교황의 성명을 기억한다.

 

차기 교황도 같은 입장을 취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교황 선종 소식이 전해진 이후 3일 새벽(현지시간) 경찰추산 최소 10만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이는 등 세계 각국에서는 교황의 서거를추모하는 특별 미사가 열렸다.

 

전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필리핀도 전역이 슬픔에 잠겼고,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은 한밤 중 교황을 기리는 84차례의 조종을 쳤으며, 미국 뉴욕의 성 패트릭 성당을 비롯한 각국의 성당도 교황을 위한 특별미사를 집전했다.

 

요한 바오르 2세는

 

3일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금세기뿐아니라 로마 가톨릭 역사상 진기한 기록을 다수 남겼다. 그는 기록에 그치는 게 아니고 딱딱한 교회전통을 깨고 변화를 시도한 주인공이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랫동안 이탈리아 출신이 맡아오던 교황 자리에 오른 비이탈리아인이라는 점이다. 비이탈리아인이 교황이 된 것은 456년 만의 일이었다.

 

당연히 공산주의 국가 출신으로는 최초의 교황이었으며 폴란드인으로서도 처음으로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 돼 고국에 영예를 안겼다. 슬라브 민족 전체를 놓고 봐도 그가 그 민족 출신의 첫 교황이었다.

 

재위 기간도 무척 길었다. 그는 1978년 제264대 교황에 선출돼 무려 27년 동안가톨릭을 이끌었다. 역대 교황의 평균재위기간인 7.3년의 4배에 가까운 금세기 최장수 교황이었으며 가톨릭교회를 통틀어서는 성 베드로, 비오 6세에 이어 세 번째로긴 기록을 갖고 있다. 전임자였던 요한 바오로 1세는 재임기간이 고작에 지나지 않아 대비를 이룬다.

 

교황에 오른 나이도 보기 드물게 이르다. 그는 58세로 교황이 돼 지난 130여 년만에 최초로 60세 이전에 가톨릭계의 정점에 올랐다.

 

성 베드로좌에서 폴란드어로 설교한 최초의 교황이었고, 이탈리아식 대신 베이컨과 계란으로 아침식사를 한 첫 가톨릭 수장이었다. 또한 스키와 등산, 카누를 즐긴 멋쟁이 교황이기도 했다. 제의도 파리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것으로 입었다고한다.

 

한국에도 두 번이나 온 그는 여행을 가장 많이 한 교황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군중 앞에서 저격당한 첫 교황이라는 불운의 기록을 갖고 있으나 다행히 목숨을 구해 저격자를 용서한 관용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그는 총상을 입을 당시 교황으로는처음으로 일반 병원의 신세를 져야 했다.

 

이와 함께 요한 바오로 2세는 공부하는 교황이었다. 대학 교수 출신인 그는 네권의 단행본을 비롯해 모두 500여 편의 논문과 수필을 썼다. 연극은 물론 시에도 관심이 깊은 문학도이기도 했다.

 

1960년에는 `안드레이 자비엔'이라는 필명으로 '보석 가게' 제목의 희곡을 발표했다. 결혼을 소재로 한 3부작인 이 작품은 여러 나라에서 라디오극으로 방송되었고,런던에서는 연극 무대에 올려졌으며, 배우 버트랑카스타가 출연하는 텔레비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모국어인 폴란드어 외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이탈리아어,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 있었다. 라틴어수준이 완벽할 정도로 유창했으며, 이밖에 일본어와 타갈로그어를 구사하고, 아프리카 방언 몇 가지에도 정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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