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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의 건축이야기] 갈모산방

한옥의 곡선 살려주는 빛나는 조연

흔히들 한옥은 그 멋을 지붕곡선에서 찾곤 한다. 사실, 허공으로 날렵하게 버선코처럼 들어 올려진 지붕의 추녀마루 곡선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더구나 마을 뒷산의 나지막한 산 능선과 어울려져 있는 풍경이라면 더 더욱 자연스럽다. 그렇게 우리한옥은 온통 지붕에 그 멋과 맛이 서려있는 듯하다.

 

그래서 기와지붕을 단순히 눈비바람을 막기 위한 시설로 보면 안 된다. 오뉴월 따가운 햇살을 가리기 위한 장치도 아니다. 붉고 밝은 알매흙을 지붕 위에 곱게 펴서 바르고, 그 위에 기왓골을 따라 다소곳이 덮어놓은 암수 기왓장 하나하나가 서로 음양의 힘을 합쳐서 지붕에 연출해놓은 곡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해대교의 현수구조와 비슷하다. 양쪽에서 팽팽하게 잡고 있던 실을 살짝 늘여 놓으면, 실은 곧장 밑으로 처지면서 자연스러운 곡선을 이루게 되는데, 그런 이미지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가 그렇고, 부산 광안대교의 난간 곡선이 그렇다. 아마 기와지붕의 처마곡선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러한 자연의 곡선을 차용해온 것 같다.

 

이렇게 밑으로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현수(懸垂)의 곡선도 아름답지만, 사실 한옥의 기와지붕 곡선에서는 조금 더 색다른 맛이 우러나온다. 밑으로 그냥 축 쳐져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서 힘껏 치솟아 있다. 마치 수컷의 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지붕곡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팽팽한 긴장감이 전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지붕곡선을 만드는 것은 대들보도 아니고, 서까래도 아니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갈모산방’이라고 하는 작은 부재다. 비록 그리 크지도 않고 우아하게 생기지도 않았지만, 지붕곡선을 매끄럽게 처리하는데 있어서, 갈모산방은 절대적인 존재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그저 밋밋하게 수평으로 덮였을지도 모르는 지붕을, 갈모산방은 처마 끝에서 그렇게 정성껏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걸을 때마다 신발에 서걱서걱 밟히는 한복치마솔기를 슬쩍 들어 올리고 서있는 여인네의 자태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갈모산방은 삼각형의 형태로 깎아서 도리(道里)위에 직접 얹어놓게 된다. 어떻게 보면 건축물의 몸체와 지붕 사이에 끼워진 채, 육중한 지붕을 들어 올리고 있는 폼이 마치 쐐기 같기도 하다. 갈모산방의 그 힘겨운 역할로 서까래와 부연은 사뿐히 치켜 올려지게 되고, 지붕은 그렇게 아름다운 곡선을 연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찰이나 고궁에 찾아가게 되면, 처마 끝에 다소곳이 숨어있는 그 갈모산방을 한번 올려다 볼일이다. 모두들 주연으로 스포트라이트만 받으려고 하는 이 조급한 현대사회에서, 갈모산방은 언제나 그렇게 빛나는 조연으로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호건축사사무소 건축사 최 상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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