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최후...극진한 대접...
무엇이든지 어느 정도 사용하다 보면 수명이 다하게 된다. 그런데 본래 제 수명을 곱게 다하는 반듯한 녀석도 있지만, 주인을 잘못 만나 예상보다 훨씬 쉽게 닳고 헤지고 부러져서 못쓰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되면 참으로 박절한 세상인심이 본색을 드러낸다. 한때는 그걸 갖기 위해서 이리재고 저리재고 때로는 변죽도 부리고 부탁도 마다하지 않다가, 막상 갖게 되면 당초 그 애절했던 초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또 새로운 대상에 눈을 돌리게 된다. 자동차가 그렇고, 휴대폰이 그렇고, 또 각종 액세서리가 그렇다. 아니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공간, 건축물은 더하다.
건축물이 철거될 때 보면 정말 인정사정없다. 마치 한 번에 요절낼 듯이 포클레인이 건축물을 찍고 넘겨버린다.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그 단단하던 콘크리트도 동강동강 떨어져 나간다. 또 벽돌이나 석고보드는 먼지만 자욱이 휘날리며 사정없이 짓이겨진다. 그렇게 건축물은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몇 십 년 동안의 흔적을 뒤로 한 채, 그냥 앉아서 고스란히 해체 당하고 만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 집도 처음엔 어느 무주택서민의 가슴 벅찬 첫 둥지였을 수도 있고, 어느 누구에게는 신혼살림의 살뜰한 보금자리였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재산증식의 아주 요긴한 수단이 되어, 삶의 환희와 기쁨을 한꺼번에 선사해주는 알뜰한 살림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야 어찌되었건, 집이란 그 필요가 다하게 되면 그렇게 가차 없이 처분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옛날에는 사지를 여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육시(六弑)가 최고의 극형이었지만, 그것도 철거되는 건축물에 비하면 요샛말로 「깜」도 안 된다. 잘리고, 털리고, 바숴지다가 급기야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까지 몰리게 되는 것이다. 소음이 진동을 하는가 하면, 석면가루가 날리고, 미세먼지가 하늘을 자욱이 뒤덮는다. 그렇게 건축물은 너나할 것 없이 「잔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도 몇 년 전, 서울 한남동 외인아파트 해체는 실로 장중하였다.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남산을 가리고 서있던 외인아파트는 파괴공학의 첨단기술로 그냥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 또 일제의 잔재가 묻어있다고 해서 호된 질책을 받아왔던 중앙박물관 해체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앙 돔의 상부 첨탑을 해체할 때에는,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보물을 다루는 듯 극진했다. 사라지는 것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준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런 건 사회적인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몇몇 건축물에 한정된 얘기다. 대부분의 철거현장에서는 자욱한 소음진동과 먼지 사이로 포클레인의 굉음만이 요란할 뿐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저런 사연을 뒤로 한 채, 하나의 건축물이 지어졌다가 무심하게 해체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저 덧없이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인생을 떠올리게 된다.
/삼호건축사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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