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서식지·이동통로 역할생태 숲 개념 적용…옮겨심기·간벌등 꾸준한 관리 필요
전나무가 터널을 이룬 내소사 숲길은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 길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그런데 그 아름다운 숲길이 조성된 것은 불과 70여 년 전. 누군가는 전나무를 심었고, 스님들은 그 나무를 지켰기 때문에 숲은 이리도 푸르게 하늘로 닿아 있는 것이다.
자연의 복원력은 더디지 않고 생명의 역동성은 경이롭다. 전주천을 보라, 쉬리가 사는 도심하천으로 되살아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년 남짓, 인간의 손에 훼손된 자연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어찌 보면 일제강점기 식량수탈의 전진기지로 만들어지면서 근대 문명에 의해 가장 먼저 자연의 모습을 잃어갔던 만경강, 그 강둑에 한 세대를 내다보고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다시 그 강가에 섰다.
지난 7일, 말복을 하루 앞둔 태양 아래 길봉섭 교수(만경강협의회 상임대표) 이명우 교수(전북대 조경학과), 오문태(만경강협의회 운영위원장), 김진태 박사(전북환경연합 사무처장), 반유길 대표(김제시 주민대표), 김성주의원(전북도의회), 이윤영(현대엔지니어링 상무) 김재승 대표(하천사랑) 등이 참여한 조사단은 만경강의 명물로 떠오른 장장 52km나 되는 그린웨이(제방 숲)의 상태를 모니터링 하기 시작했다.
제방 바깥 비탈면의 생태 숲과 제방 상단에 심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 자라는 과정에서 옮겨줘야 할 나무는 있는지,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이 밀식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대안을 모색했다.
조사는 고산천 세심정 제방 숲 아래 구간부터 시작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366호 담양의 관방제림과 임실 관촌의 장제무림처럼 느티나무, 팽나무 등 200백년 이상 된 아름드리 노거수들이 강둑을 따라 길게 띠처럼 숲을 이룬 곳이다. (본보 2007. 9.생태보고서)
우리 선조들은 하천의 물길을 다스리기 위해 제방을 쌓고 둑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물론 예나지금이나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공간이다. 형편이 되면 정자를 세우고 넉넉하지 않아도 강가의 바위라도 옮겨서 쉴 곳을 만들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하천 숲은 제방을 넓히고 직강화 하는 과정에서 사라져 갔고, 지진이 많은 일본의 하천법을 모태로 하는 까다로운 하천 나무심기 기준 때문에 심을 수도 없다. 제방의 안전을 위협하고 홍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렇다보니 버드나무가 우거진 자연스런 하천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제방만 덩그렇게 남아 있게 되었다.
이제 4년 남짓 지났지만 식재된 나무들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강 쪽으로는 벚나무가 열을 맞췄고, 바깥 비탈에는 굴참나무, 단풍나무, 상수리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팥배나무 등이 이열, 삼열로 식재되어 있었다. 삼열 중 가운데 식재된 나무들은 햇빛을 받는데 어려움이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작아보였다. 일반인이 얼핏 보면 왜 이리 나무를 빽빽하게 심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도 있겠구나 싶다. 남봉교까지 약 1.5km 구간은 앞서 언급한 수종들이 마치 나무 전시장처럼 다양하게 식재되어 있다. 한 종류의 나무를 길게 심는 가로수 식재 방식과 많이 다르다.
"당시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한 결과,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이동통로 역할을 하는 생태 숲의 개념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서 교목과 관목을 섞어 심게 되었어요." 당시 도청에서 실무를 총괄했던 오문태 위원장의 말이다.
봉동에서 삼례 하리 구간을 지나면서 그래도 너무 밀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자 당시 자문을 했던 이명우 교수는 "어린 나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 자라게 하는 조경 방식을 적용한 것이라며, 물론 자라면서 일부 옮겨심기나 간벌 등 꾸준한 관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지만요"라며 저간의 상황과 함께 생태 숲 조성사업이 당시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인 사업이었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차후 관리 방안으로 생태 숲과 마을 숲을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진 곳은 자연의 천이에 맡겨 두되, 마을 주변의 숲은 간벌이나 이식을 통해서 수목간격을 3-5미터 정도를 유지하게 하고 마을 주민들이 관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길봉섭 교수는 수종이 동일하고 수령(크기)이 비슷한 나무들이 2열 3열로 나열 식재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생태 숲이라 부르기 어렵다며 나무를 솎거나 이식한 자리에 지피식물, 관목, 아교목, 관목으로 이어지는 층상 구조를 갖춰서 생태적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보완할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들의 눈에 비친 제방 숲은 어떤 느낌일까?
"이제 겨우 3년에서 7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나무가 우거지기 시작했잖아요. 아마 10년만 더 지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생태적인 기능을 하는 제방 숲이 될 겁니다."
아울러 생태경관지구로 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신천습지 일대는 만경강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곳인데 제방 한쪽에 나무 한그루가 없으니 너무 삭막해 아쉽다고 반유길 대표가 덧붙인다.
/이정현(NGO객원기자·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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