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는 않지만 늘 푸른 소나무처럼"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우리 민족은 소나무와 함께 했다. 소나무엔 맑고 깨끗하나 잘 굽히지 않는 선조들의 지조와 절개가 서려있다.
언제부턴가 서양화가 김두해(54·한국미술협회 전북지회장)씨의 캔버스는 이런 소나무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이젠 그 자신이 소나무가 됐다.
"저만큼 김치를 잘 먹는 사람도 없을 거에요. 정말 타고난 한국인이구나 이런 생각 많이 해요. 소나무에 몰두하는 것도 가장 한국적인 소재이기 때문이죠."
어떤 것은 단단하고 어떤 것은 부드럽다. 또 어떤 것은 의연하고 어떤 것은 끈질기다. 가끔은 얽혀들고 가끔은 외로이 서 있으면서 서로 기대고 북돋아준다.
거친 박토에서도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다. 황토 흙을 직접 바른듯한 질감도 그만의 특징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끝 모를 구도자의 길은 참 오래됐다. 줄곧 그림이 좋아서 내달려온 시간이었다.
고교시절 각종 사생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그는 화가의 꿈을 굳히며 1막을 열었다.
2막의 시작은 군대 제대 후 광주 민주화 항쟁을 통해 시대에 고뇌하는 군상들을 그리면서 시작됐다.
5회 전시때부터 주된 소재가 됐던 원경의 소나무는 그와 함께 3막을 맞이했다.
광주는 그와 인연이 각별한 곳이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역사적 순간들을 마주한 곳이기 때문. 그당시 캔버스엔 시대상황에 무기력한 자신, 희망이 없는 절망의 굴레를 짊어진 불안한 영혼들이 표현돼 있다. 시대와의 소통부재, 소외, 그리고 고독의 표상을 담은 작품 '인간 허상'은 하반영 화백으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물론 남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화려한 명성보단 캔버스 앞에서 차분해지고, 편안해진 자신이 좋다고 말한다. 자신감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을 때 진짜 미술의 길이 열린다는 게 그의 지론. 그것은 작가가 '삶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화가로서 붓을 꺾지 않고, 견뎌내는 힘은 지인들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있다. 때문에 원로화가 박돈(본명 박창돈·80) 선생은 삶의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다.
박돈선생은 작업시간만큼은 철저하게 확보하는 자기 관리 능력, 한국적인 정서에 대한 애정 등을 통해 그에게 늘 모범이 됐다.
전시회 팸플릿 표지 색깔, 까만 정장을 즐겨입는 스타일 등 서로의 취향도 닮아있다.
"올해 전시를 통해 저만의 눈으로 소나무를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서양화가가 아닌 동양화가가 됐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림에서 풍겨나는 담백함이 좋아서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그의 캔버스 하늘은 늘 비어있다. 비워낸 여백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그 여백을 통해 완성되고 있다.
전북여자고등학교에 재직중인 김씨는'전북미술대전 대상(문화공보부 장관상)''중앙미술대전 특선 ' 등 다수 수상했다.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 작은 모임''한일 문화교류전 모임' '전북도립미술관 운영위원'등을 통해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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