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맛 지키며 새로운 메뉴 개발"…천연재료 고집·조리과정 위생 철저
"어머니가 고수하던 전통방식을 최대한 따르려고 노력한 덕분에 우리 떡은 시중의 다른 제품보다 색깔도 진하고 쫄깃한데 굳는 시간은 길어요. 처음 접한 사람들은 첨가물을 넣었냐고 반문하죠. 저희 떡이 최고 제품이라고 여기진 않지만 조금 낫다는 점이 경쟁력이죠."
딸 부부와 떡을 만드는 안복순씨(65) 가족. 안씨가 하던 떡집을 사위 임복래씨(42)가 맡으면서 한국떡집은 한국전통식품이 됐다. 임씨는 학교 급식 판로를 개척하고 각종 식품전에서 떡 전시를 하는 등 전통과 현대를 잇고 있다. 떡을 진화시키는 이 가족의 대화 내용 중 90% 이상은 떡 이야기다.
하루 생산량 1t. 원칙은 당일 제조·판매. 오후 2시부터 임씨가 쌀을 씻고 오후 8시부터는 방아기계가 쌀을 빻는다. 임씨의 부인인 이은정씨(38)와 안씨 등이 밤새 떡을 만들면 오전 2~3시에 비로소 떡이 나온다. 뜨는 해를 따라 떡을 거래처로 배달한다.
자색고구마는 해남에서, 호박은 정읍 쌍치에서 공수하는 등 천연재료를 이용해 야채떡샌드·오색떡국·단호박편 등 모두 50여 가지 떡을 만든다.
떡 가족의 이야기는 지난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씨는 당시 익산 중앙시장에서 남편과 떡집을 시작했다. 사위 임씨는 1997년 외환위기로 분당에서 운영하던 학원을 접고 평소 일손을 거들던 장모님의 떡집을 부인과 함께 맡았다. 임씨의 적극적인 떡집 운영으로 시장의 42㎡ 점포가 330㎡ 공장이 됐다.
임씨는 "시장에서는 찾아오는 손님만 상대해 소득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어 학교 급식의 판로를 뚫기 시작해 현재는 도내·대전·광주 등 300여개 학교에 납품한다"면서 "학부모와 영양사를 설득하기 위해 청결을 무기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29일 찾은 완주군 이서면 전북대창업보육센터에 있는 공장에는 말끔히 청소된 스테인레스 작업대가 눈에 띄었다. 바닥에 채 마르지 않은 물기만 남아 있을 뿐 하얀 쌀가루 하나 볼 수 없었다. 청소가 생존전략인 셈이다.
초기에는 안씨가 위생복이 어색하다며 입기를 거부, 임씨는 꾀를 내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떡속에 넣어 "어머님이 위생복을 입지 않아 애들이 먹는 음식에 이물질이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안씨가 딸 부부에게 하는 말은 입버릇처럼 "지금은 편한 줄 알아"다. 기계의 힘을 빌리면 손쉽지만 사람 손이 내는 맛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철학이다. 그의 직함은 고문이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은 직접한다. 약 40년 동안 쓴 그의 칼은 무지개떡을 자로 잰듯이 자른다.
임씨는 "소중한 음식 문화인 떡도 소비자들이 먹지 않으면 잊히는 만큼 이를 지키기 위해 체계화된 자료를 구축하는데 힘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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