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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족의 실체는?..학술회의에서 조명

'고대 동북아의 종족과 문화' 학술회의

한국 역사학계에서 말갈(靺鞨)족의 실체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아직 이렇다 할만한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말갈'이라는 명칭은 중국 역사서에 563년에 처음 등장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삼국의 건국 무렵부터 말갈 관련 기록이 나온다.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말갈을 진말갈이라 하고 그 이전인 삼국사기에 등장한 말갈을 위말갈이라고 구분한 정약용의 견해를 비롯해 낙랑과 고구려의 변방 주민 또는 피지배민을 칭하는 것이란 설 등 다양한 견해가 그동안 제시됐다.

 

고구려발해학회와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주최로 7일 부산 경성대에서 열리는 '고대 동북아의 종족과 문화' 학술회의는 이례적으로 말갈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발표자 중 김진광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4일 미리 배포한 자료를 통해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갈은 임진강ㆍ한강 상류와 신라 북쪽에서 출몰하며 백제ㆍ신라와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말갈로 불린 이들은 임진강과 한강 상류의 강변을 생활 근거지로 삼아 적석총을 조영한 집단"이라고 '삼국사기' 본기에 나오는 말갈의 실체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또 그는 "이들이 고분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필요에 따라 이동하는 세력이 아니라 일정한 지역에 정착했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문화적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으며 국가단계로 성장하지 못한 독립된 집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경영실장은 '6-7세기 말갈 제부(諸部)와 고구려' 발표문에서 "말갈은 특정 시기의 만주지역 거주 종족을 일괄하는 명칭으로, 원류를 따지면 하나의 종족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며 "만주지역에서 산과 강을 따라 소집단별로 살아가던 고대 종족인데 그중에서 수와 당 초기에 대략 6-7개 큰 부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말갈 7부' 아래에 각각의 추장이 다스리는 수십 개의 부락이 있었으며 각 부의 인구는 대략 3만명 전후였다"고 덧붙였다.

 

권은주 경북대 강사는 "발해와 말갈 제부(諸部)는 건국 초기부터 연합을 이루며 당에 대항해 성장했으며 이후 발해는 말갈 제부의 대외활동을 철저히 통제해 나가면서 점차 통합해 나갔다"면서 "발해의 말갈 지배는 시기가 짧았으므로 발해 멸망 이후 발해 유민과 여진으로 분리돼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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