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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500년 심장에 파일 박은 느낌"

지건길 문화재위원, "서울신청사 공사현장 유적 보존해야"

옛 청사 바로 뒤편 서울시 신청사 건설 현장은 두 구역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한 곳은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다른 한 곳은 문화재 발굴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눈대중으로 그 면적 대비를 보면 전자가 9할, 후자가 1할 정도를 차지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발굴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예정지 중 9%라고 말했다.

 

하지만 발굴 현장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대형 철제 H-빔이 곳곳에 박혀 있다. 나아가 이들 빔은 필연적으로 발굴현장에 노출된 유적을 군데군데 이미 파괴했다.

 

통상 고고학 발굴현장은 발굴조사가 완료되기까지는 어떠한 새로운 건축행위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왜 유독 서울시 신청사 건설현장만큼은 H-빔이 박혀 있을까?

 

1일 오전 발굴현장에서 발굴조사단인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이 개최한 발굴지도위원회에 참가한 서울시와 발굴단 관계자들의 전언으로 쉽사리 그 의문은 풀린다.

 

애초에 신청사 예정 부지는 발굴이 예정돼 있지 않았다. 발굴조사 없이 바로 공사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이 일대 지하는 이전에 있던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문화재청에서는 입회 조사를 명령했다. 이는 고고학 발굴 전문가가 공사 현장에 상주하면서 혹시 모를 유적이나 유물이 확인될 때는 즉시 공사를 중지하고, 발굴조사를 벌이게끔 하는 제도다.

 

이렇게 해서 입회 조사를 한강문화재연구원이 맡게 됐다. 이에 의해 서울시는 우선 신청사 건설 예정지 곳곳에 H-빔을 박고서 터파기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조선왕도 500년이 남긴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완전히 망가지고 사라진 줄 알았던 조선왕조 500년 수도 한양은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 6월, 유물과 유적이 확인된 곳을 중심으로 공사는 중지되고 본격 발굴로 들어갔다.

 

그 성과는 놀라웠다. 조선초기 이래 근현대에 이르는 각종 건물 유적은 물론이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귀중한 유물이 쏟아진 것이다. 특히 불랑기자포와 승자총통을 비롯한 조선 중기 때 무기류는 그 전체가 당장 보물로 지정돼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귀중한 성과로 기록됐다.

 

이날 공개된 발굴현장과 출토 유물들을 둘러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지도위원인 지건길 문화재위원회 매장분과 위원장이 당장 목소리를 높였다. 지 위원장은 특히 발굴현장 곳곳에 박힌 H-빔들을 지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서울시가 대형 재개발 공사를 추진하는) 동대문운동장이니 청진지구 현장을 둘러볼 때마다 한양 500년의 역사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기 파일(H-빔)을 박아 놓은 것이 한양 500년, 아니 600년 심장을 박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서 지 위원장은 현장에 배석한 서울시 관계자들을 향해 "현장 유구(遺構)를 어떻게 할지는 문화재위원회가 최종 결정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현장에 그대로 유구를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마침 서울시도 (발굴현장에) 서울역사를 전시하는 시설을 세운다고 하니, 그 취지에 맞춰 발굴현장을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발굴 완료 뒤 공사 진행이라는 식으로 서울 사대문 안 개발을 추진하다가는 한양 500년 역사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지 위원장은 "서울은 비단 500년 조선 도읍일 뿐만 아니라 백제 500년 도읍이기 때문에 천년 고도(古都)라는 점에서 경주와 다를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지도위원이자 문화재위원인 건축학 전공 김동욱 경기대 교수는 유적의 이전 복원을 제안하긴 했지만, 문화재위 매장분과 위원장이 현장 보존 방침을 공식 천명함에 따라 서울시의 서울시 신청사 건립 계획은 적어도 이번 발굴현장에 대해서만큼은 일정 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조만간 문화재위원회를 소집해 이 유적에 대한 처리 방침을 확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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