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영터 확보 안돼 완전 복원 어려워
<< 전라감영 복원과 관련해 살펴볼 수 있는 국내 사례는 대구의 경상감영, 원주의 강원감영, 공주의 충청감영 정도다. 그러나 충청감영의 경우 1994년 기존의 감영터를 학교 부지로 활용하고 도심부 외각에 이전복원하면서 감영의 공간구조와는 차이가 생기게 됐다. 선화당과 동헌을 활용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국악 교육을 실시하는 등 시민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이전복원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정통성 문제에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다. 충청감영을 원래 감영부지였던 곳에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적으로 제기되고는 있지만, 실현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공원으로 정비해 '도심 속 시민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경상감영과 국가사적지로 지정해 '문화재 복원 형태'를 띄고 있는 강원감영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
대구 경상감영을 찾아간 지난 11월 13일에는 경상감영 관광자원화 사업 일환으로 징청각에 대한 유구 조사가 실시되고 있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상감영 복원 사업은 벽체 없이 기둥만 남아있던 선화당과 징청각의 벽체와 창호를 복원하는 것.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의 주도로 징청각의 기단이 확인된 상태였다.
경상감영 선화당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었다. 대구지역 전문가들은 "용이 임금을 상징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순종이 경부선 철도를 만들었을 때 경상감영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1601년 대구로 이전한 경상감영(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21번지 일대)은 각각 지방유형문화재 1호와 2호로 지정된 선화당과 징청각이 남아있다. 관찰사가 공무를 보던 선화당은 1730년 두차례의 화재가 있었으나 순조 7년(1807)에 재건됐다. 선화당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징청각은 감사 처소로 쓰였던 곳으로 역시 1730년 두차례의 화재가 있었지만 정조 13년(1789)에 재건됐다. 선화당 뒤 왼편에 위치하고 있는 징청각은 감영 건물이 남아있는 강원감영이나 충청감영에도 없으며 경상감영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경상감영의 대지면적은 총 1만4800여㎡. 선화당은 184㎡, 징청각은 254㎡다. 경상감영터는 원래 경북도청사로 활용됐지만 1966년 도청사가 이전하고 난 후 1970년 중앙공원으로 조성됐다. 이후 1997년 아예 '경상감영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경상감영 복원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여론 형성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감영 건물이 있는 공원을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면서도 정작 시민들은 감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수문장 교대식이나 경상감사 도임순력 행차 등이 경상감영에서 재연되기도 하지만, 그 때 뿐 공원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감영 주변에는 환갑 지난 마담이 아직도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는 다방이나 일본식 정종을 파는 술집 등 노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소들이 많았다. 감영을 관리하는 대구 중구청은 소비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경제효과를 누리고 싶어하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감영을 공원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문제도 있다. 행정적으로 문화재 관리와 공원 관리, 즉 두군데의 관리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두가지 법이 적용된다는 의미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도 제약이 많아 결국 현상유지밖에 안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경상감영 복원은 시민단체의 요구와 정치인의 공약 사업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향토사학자와 교수, 언론인 등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이진현 학예연구사는 "결국은 예산문제였고, 문화재를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문화관광 명소로 육성하겠다는 '경상감영 관광자원화사업'을 통해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광자원화사업은 대구근대역사관 조성과 함께 진행되는 것으로, 감영 복원 보다는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됐던 대구산업은행 건물을 대구근대역사관으로 바꾸는 사업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 학예연구사는 "왜세 수탈의 현장에 대구 정체성을 담을 수 있냐는 부정적 의견도 있지만, 대구의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총괄할 만한 구심점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경상감영 복원은 실질적으로는 복원이 아니라 보수 개념의 제한적 복원이었다. 일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완전복원이라는 오해도 받고 있지만, 장기과제일 뿐 세부적으로 계획된 것은 없다. 대구광역시 역시 완전복원이라는 표현에 대해 부담스러워 했으며, 실제로 경상감영을 완전복원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부지인 병무청이 돌연 이전하겠다는 의사를 바꾸면서 감영터 확보는 더욱 어려워 졌다.
그러나 경상감영과 관련된 자료 수집만큼은 철저하게 하고 있다. 1998년 「경상감영 사백년사」를 발간하면서 경상감영 관련 자료가 1차적으로 정리됐으며, 이후 2004년 조선시대 경상감사의 부임 과정과 연중 활동 내역을 담은 「영영일기(嶺營日記)」와 경상감사가 조정에 올려보낸 각종 공문서의 내역을 담은 「영영장계등록(嶺營狀啓謄錄)」을 국역했다. 경상북도에서 발간한 「경상감영의 종합적 연구」에는 감영 관련 자료 283건의 목록 및 해제가 수록됐으며, 2008년 「경상감영공원비석 자료집」이 별도로 발간됐다.
경상감영 복원과 관련해서는 경상감영이 최초로 설치됐던 상주도 관심이 많다. 도시가 낙후되면서 경상감영을 통해 오래된 도시로서의 역사성을 내세우고 이를 도시 발전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상주 경상감영 테마파크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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