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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과 4대문복원] ⑥해외 사례-(1)일본

시민과 함께 한 역사성·진정성…日 미래 동력 되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본떠 만든 헤이조쿄의 정문. 헤이조쿄 유적은 면적 120ha, 동서 1.3㎞, 남북 1㎞에 달하는 거대한 궁이다. (desk@jjan.kr)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 및 사업, 쇼핑도시 오사카(大阪)와 수많은 문화유적과 다양한 관광자원을 갖고 있는 교토(京都)와의 도시경쟁력을 극복하기 위해 나라(奈良)시가 선택한 것은 고대 도읍지라는 것. 일본의 정신문화의 출발이라는 타이틀로 접근하면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최대한 근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나라현에서는 헤이조(平城) 천도 1300년이 되는 2010년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헤이조쿄(平城宮)와 다이고쿠텐(大極殿)을 복원해 과거의 유물을 현재에 조명하고 미래 문화산업의 동력으로 삼는 데 매진하고 있다.

 

▲ 황권으로 형성된 불교문화

 

나라(奈良)는 710년 일본의 도읍지로 정해진 이래 784년 교토 부근의 나가오카 궁(長岡宮)으로 도읍이 옮겨질 때까지 고대 일본의 중심지 역할을 한 도시이다. 수도를 나라로 옮긴 사람은 겐메이(元明) 천황으로,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본떠 만든 헤이조쿄(平城宮)을 거처로 삼았다.

 

복원공사가 한창인 다이고쿠덴(大極殿). 다이고쿠덴은 국가행사 및 외국사절단을 맞이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던 곳이다. (desk@jjan.kr)

이 때를 흔히 나라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일본은 천황과 황족에게 모든 권력과 부가 집중되는 중앙집권적 국가체계를 이룩했다. 이를 기반으로 형성된 융성한 문화를 덴표(天平)문화라고 하며, 도다이지(東大寺), 고후쿠지(興福寺) 등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만한 거대한 불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강력한 불교세력과 결탁한 귀족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간무(桓武) 천황은 교토로 천도하면서 큰 절의 교토 이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써 나라는 교토에 수도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종교적 색채가 강한 도시로 탈바꿈되었다.

 

▲ 나라시대 헤이죠쿄(平城京) 복원

 

헤이조쿄 유적은 면적 120ha, 동서 1.3㎞, 남북 1㎞에 달하는 거대한 궁이다. 궁궐유적지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어서 일본의 특별사적지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유적지는 1951년 유적지 인근에 설립된 나라문화재연구소의 헤이조쿄 유적조사부에서 발굴조사를 전담해오고 있다. 발굴조사가 마무리된 지역은 당시의 건축공법을 사용해 복원공사를 진행했다.

 

대표적인 복원 건축물은 헤이조쿄 북쪽에 자리 잡은 스자쿠몬(朱雀門). 이 주작문은 유구(遺構)를 그대로 놓아두고 그 위를 1m 정도 흙으로 덮은 뒤 건물을 세운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유는 세월이 지나 새로 지어진 건축물은 사라지더라도 원래 건축물이 있던 자리는 남겨두기 위해서란다.

 

이곳의 또 다른 복원 건축물은 헤이죠쿄 동쪽에 있는 도인 테이엔(東院 庭園). 이 정원 역시 주작문 복원과 마찬가지로 정원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다시 묻었고, 그 위에 연못과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새로 복원된 정원은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 설계 원형을 그대로 복원했다. 따라서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은 잠시나마 덴표시대의 귀족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한편 헤이죠쿄 유적지 내에는 국가행사 및 외국사절단을 맞이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던 다이고쿠덴(大極殿)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이 다이고쿠텐은 천도 1300주년 기념식이 진행될 2010년 4월 24일 이전에 복원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 시민에게 돌려주는 정비·복원사업

 

헤이죠쿄 유적지 복원사업은 그 목적이 신선하다. 유적지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을 복원하여 과거 영광을 재현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결국 시민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사업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나라현 지역주민들도 복원사업에 적극적이다.

 

원래 이 유적지는 경작지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개인적 이익보다는 대의적 차원의 이익을 위해 국가에게 무상으로 양도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현재 국내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추진 중인 유적지 정비·복원사업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그간 정비·복원 초기 단계에서는 지역주민의 의사가 배제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적지 않은 희생은 물론 지역주민과 마찰을 일으켜 중간에 중단되거나 철회되는 사태가 발생되기도 했다. 결국 유적지 정비·복원사업은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문화유적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민들의 고통해결 없이는 세계인에게 내놓을 수 있는 역사 문화도시로 자리매김 할 수 없다. 따라서 지자체에서는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역사성과 진정성이라는 실익을 챙겨야 하며, 더불어 시민과 공유하는 시스템 정립도 필요하다.

 

지역주민 역시 유적지정비·복원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며, 때로는 과감한 희생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미래에 투자하는 관심이 절실한 때이다.

 

▲ 역사성이 담긴 전주의 복원사업

 

한 장소에 부여된 특정의 기능과 의미가 시대를 관통하여 지속될 때 이를 그 장소의 역사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라현의 헤이죠쿄 유적지 정비·복원이 이러한 맥락에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헤이죠쿄의 역사성을 찾고, 이를 토대로 역사복원을 시도하여 궁극적으로는 시민을 위한 국영공원화 하는 것. 이를 위해 현(縣)·시(市)·민(民)이 합심해 복원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관에서는 시민을 위한 공간조성이라는 복원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철저한 검증을 통한 복원을 꿈꾸고 있다. 이에 지역주민은 스스로 정비·복원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 유적지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전주시에서는 전라감영과 전주부성 4대문 복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수많은 논의 절차를 거쳤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단기간에 성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잘못된 복원은 전라감영과 전주부성 4대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역사의 단절을 가져올 뿐이다.

 

단순히 조선시대 감영 건축물을 재현해 놓았다고 해서 감영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까지 복원된 것이 아니다. 역사문화적 기억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전주다움을 만들어가야 한다. 따라서 헤이죠쿄 복원사업처럼 미래지향적인 복원 방향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일본 나라=최우중 문화전문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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