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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24)학식 높았던 명창 김연수(3)-판소리 수업

유성준·송만갑·정정렬 등에게 배웠지만…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배운 것은 아녀

김연수 기념비. (desk@jjan.kr)

명창 김연수는 1967년 국악예술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한 「창본 춘향가」라는 책 뒷부분에 '저자 연보'를 싣고 있다. 이는 김연수가 자신의 이력을 기록한 것이므로 일단은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김연수는 14세까지 9년간 한학을 수업하다가, 서울 중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귀향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창악에 뜻이 생겨 7년간 축음기를 통하여 독습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 번에 밝힌 것처럼 이 시기에 김연수는 고흥 지방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이 시기에 김연수가 독습을 했다고 한 것은 아마도 내세울 만한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김연수는 1935년(29세) 창악 전공의 뜻을 품고 당시 순천 군수 성정수씨 댁에 머물던 5명창의 한 사람인 유성준 선생을 찾아가 입문하고 <수궁가> 전편을 배웠으며, 그 해 7월 상경하여 '조성성악연구회'에 입회하고, 송만갑 문하에 들어가 <흥보가> 및 <심청가> 전편을 배웠다고 하였다. 김연수의 말을 따른다면, 김연수는 1935년 한 해 동안에 <수궁가> <흥보가> <심청가> 등 세 편을 다 배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까? 물론 소리의 기초가 잘 닦여 있고, 또 오로지 판소리 학습만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연수의 경우는 아무래도 과장이 섞인 것으로 보인다.

 

김연수가 순천에 머물던 유성준을 찾아가 <수궁가> 를 배운 것은 분명하다. 작고한 정광수 명창도 김연수가 유성준으로부터 <수궁가> 를 배운 것이 분명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런데 문제는 김연수가 <수궁가> 를 끝까지 배우지 못하고 나왔다는 데 있다. 유성준은 성질이 괴팍하기로 수문난 소리꾼이었다. 그런데 김연수 또한 성격이 두리뭉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김연수는 한학에 신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유성준은 학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판소리 사설에 오류가 많았다. 김연수는 틀린 사설이 나올 때마다 늘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기분이 상한 유성준은 크게 화를 내고 김연수를 목침으로 내리쳐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김연수는 유성준에게 <수궁가> 를 끝까지 배우지 못하고 유성준 곁을 떠났다고 한다. 실제로 김연수의 <수궁가> 를 보면 유성준의 <수궁가> 를 오롯이 전승하고 있는 임방울, 정광수, 강도근의 <수궁가> 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부분들은 대부분 신재효의 <토별가> 에서 차용하였다. 신재효의 사설은 정확하기는 하지만 음악이 딸려 있는 사설이 아니다. 따라서 만약 김연수가 유성준으로부터 <수궁가> 를 다 배웠다면 구태여 음악도 없는 신재효 사설을 가져다가 음악을 만들어 넣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송만갑으로부터 배웠다는 <흥보가> 와 <심청가>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김연수가 스스로 밝힌 스승은 정정렬이 또 있다. 김연수는 1936년 정정렬 문하에 입문하여, 제1차는 1월에 충청북도에 있는 현암사에서 <적벽가> 전편을, 제2차는 7월에 내금강 표훈사에서 <춘향가> 전편을 배웠다고 하였다. 이 또한 한 달에 한 편씩을 배웠다는 것이니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특히 <적벽가> 의 경우에는 절반 가량이 정권진이 부른 <적벽가> 와 같다. 보성소리를 이어받은 것이다. 만약 정정렬로부터 <적벽가> 전편을 다 배웠다면, 앞 부분 절반을 <보성소리 적벽가> 로 메꿀 이유가 없다. 명고수 김명환은 <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어요> >라는 책에서, 김연수가 정응민에게 와서 판소리를 배웠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소리를 열심히 배우지는 않고, 사냥에만 열심이었다고 했다. 판소리는 소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사설만을 베꼈다고 하였다.

 

이런저런 사실로 보면 김연수가 연보에 쓴 내용은 다소 과장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김연수는 유성준, 송만갑, 정정렬 등에게 판소리를 배웠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배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김연수의 판소리 스승은 이들 말고도 더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김연수가 이를 스스로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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