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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31)한국서예 순례를 떠나며

문헌과 작품으로 본 서예문화의 장구한 역사…학자들의 연구 자료·금석탁본 등 소개로

秋史 金正喜, 墨蘭 (desk@jjan.kr)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12월 29일부터 이듬해 2월 11일까지 한국서예사특별전(19)이라는 제하에 '韓國書藝二千年'이라는 전시가 예술의 전당의 기획 주최로 열린 적이 있다. 지금 필자의 손에는 그때 발간된 사진자료집과 해설집이 있는데, 돌이켜 아직껏 우리나라 서예 관련 전시 중에서 가장 대규모의 기획전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도 엄연한 서예문화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역사가 2000년이라 하니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동안 우리의 서예문화가 중국문화에 예속되어 있다는 사대적 관념에 사로잡혀 그 영향관계만을 논하면서, 우리의 정체성과 독창성 등을 탐색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점이다. 이 전시가 기획된 이후, 학계에서 우리 서예문화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탐색하는 학술대회가 연이어 열리면서 새로운 입장과 시각을 달리한 연구성과들이 집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통론이 거론되고 각론들이 집적되어 하루빨리 조화와 균형을 갖춘 총론이 구성되기를 고대한다.

 

한국서예사를 논하고자 할 때 가장 우선하는 것은 그에 대한 문헌적 자료를 갖추는 일이다. 뛰어난 감식안을 지닌 구안자가 문헌과 작품의 상관관계를 면밀하게 고증하여 논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역대 문헌을 탐색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과 작품을 분석할 수 있는 직관과 심안이 전제되어야 한다. 필자가 선뜻 한국서예에 대한 순례를 떠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마냥 혜안을 갖춘 군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재에서 그동안 홀시되었던 한국서예에 대한 자료들을 추려보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드는 것이 김기승의 「신고 한국서예사」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서예가가 집필한 단행본 서예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와 더불어 뛰어난 감식안을 지닌 김응현의 논고들이 산견되는데 하나의 완정본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것들은 해방 이후 체계적으로 한국서예사를 정리하기 위해 집필된 최초의 시도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금석학자로 이름이 높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을 꼽을 수 있다. 역시 우리나라의 서화사 연구를 위해 역대 문헌자료를 채록한 편저인데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문헌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1998년에 동양고전학회에서 이를 국역하여 시공사에서 발행하였다.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도판자료는 금석탁본과 진적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체계적인 금석탁본집으로는 조선후기 낭선군 이우(1637-1693)가 편집한 「대동금석서」(1938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영인간행)와 1979년부터 원광대학교 출판국에서 연차적으로 발행한 「한국금석문대계」, 한국국학진흥원과 청명문화재단에서 발행한 「한국금석문집성」 등의 금석탁본집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진적 자료집으로는 최근 칼라영인된 「근묵」을 비롯하여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한 「서예」가 비교적 풍부한 자료를 선명하게 게재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역대 문인들을 필적을 판각하여 엮은 「해동역대 명가필보」도 있으며, 도처의 박물관 자료와 각종 기획전 등에 부수된 문헌들이 즐비하다.

 

모두에서 밝혔듯이 우리의 서예문화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금석문이든 필적이든 그것들은 기록물로서 한결같이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함유하고 있다. 이제 시대에 따라 한국서예를 순례하면서 혹 역사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예술적 가치에 경탄할 것이다. 창작의 주체자인 인물됨을 통해 작품을 들여다보고, 작품을 통해서 시대의 문화를 가늠하며, 또 이를 역으로 탐색하며 추론하기도 할 것이다. 이번을 기회로 필자 역시 학문의 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서예사에 다소 공부가 되었으면 한다. 독자제현의 따뜻한 질정을 기대한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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