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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혁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 (32)한국서예사 서술의 기본입장

우리의 삶과 미의식을 통해 문화를 바라봐야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 5세기 전반 (desk@jjan.kr)

중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서예가 태동한 시기는 한대(漢代)이다. 한대는 다시 전한과 후한, 또는 서한과 동한으로 지칭되는데 특히 후한시대에 이르러 서예미가 극에 달한다. 역사시대 이래로 많은 문자자료가 산재한다. 주술적 의미의 갑골문과 왕조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금문(金文), 그리고 진시황제가 전국(戰國)을 통일하고 문자통일을 단행하면서 승상 이사(李斯)가 제시했다고 전해지는 소전(小篆)이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기물이나 벽화에서 나오는 부호들 역시 문자로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그 자료의 다양성은 실로 방대하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들이 예술적 행위의 소산이냐 하는 점에서 본다면 입장이 달라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술적 행위란 쉽게 말하여 심미적 의식이 그것에 가미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즉 문자라는 것에 개인의 미의식을 가미하여 서예미를 발현시켰느냐 하는 것인바, 속된 비유를 빌리자면 어떤 재료를 가져다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리하여 음식을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단순히 문자가 의사를 전달하는 고유의 기능이 강조되었으나 한대에 들어서면서 여기에 서예미가 가미되어 비로소 예술성을 띠게 된다.

 

한대를 서예의 기점으로 산정하는 데에는 몇 가지 문화적 사실이 뒤따른다. 우선 일상에서 문자를 서사하는 과정에서 획일적인 서사를 벗어나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이른바 오체(五體)가 나타난다. 종래와는 달리 일상생활의 간이함을 좇아 자연적 발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문자정책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전파력이 강하였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한자의 서체는 이미 한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되었다. 문자생활의 보편화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며 이미 상당한 수준의 문화활동이 동시다발로 이루어졌음을 짐작케 한다. 둘째는 개인의 심미의식을 가미하여 문자를 표현하는 전문적인 서가가 출현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문자를 심미적으로 체득한 서가가 서(書)의 미적 가치를 논하는 서론(書論)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넷째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부응하여 문자의 발생과 변화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문자학이 태동하여 근거에 입각한 서의 표현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부수적인 사실이 있으나 이것만으로도 한대를 서예적 기점으로 꼽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다.

 

종래에 우리나라 서예의 출발점은 대략 중국에서 한자가 보급된 시점으로 산정하였다.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한사군이 설치된 이후 한반도에 한자가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따른다면 우리나라의 서예는 한대의 영향권 아래에서 출발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문화의 동전설(東傳說)이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이후 우리의 문화에서 나타나는 고대 서예자료들은 중국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그것들을 굳이 중국에 예속시켜 논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가 전래된 이래 그것을 생활상에 반영하는 것은 수용자의 몫이다. 문화의 전래가 그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변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초기의 문자자료들은 한자를 어떻게 활용하고 또 어떻게 미적으로 표현하였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역사적 근거이자 서예사적 자료이다.

 

이제 한국서예사를 일별하는 시점에서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관점에서 외래문화의 수용과 토착문화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를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에 예속된 문화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미의식 속에서 우리 문화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서예문화의 독자성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생활과 의식을 반영한 것이며 크게는 민족성으로 비춰진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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